나프탈렌. 나프탈렌 냄새. 아주 오래된 공중 화장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우리 할머니 장롱에서 피어나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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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할머니댁을 찾는 날이면 할머니는 아휴 집이 좀 작지? 불편하지? 영 덥지? 하면서도 내가 하룻밤 자고 가지 않으면 표정에서 서운한 티가 났다. 내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건 할머니를 닮아서였을거다.
내가 자고 간다고 하면 할머니는 장롱 한편에 있던 알록달록한 이불과 원통형 베개를 꺼내주곤 했는데 거기엔 항상 섬유유연제 냄새와 함께 나프탈렌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나쁘지 않아 코끝까지 이불을 덮고 잠에 들었다. 매번 꺼내주는 이불이 달라졌지만, 다른 모양으로 알록달록했고 냄새는 똑같았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못 버리는 병이다. 우리 할머니는 1인가구임에도 이불이 장롱 한 칸을 꽉 채우고도 남았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그릇과 컵 따위들이 차곡차곡 쌓여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되었다.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코끼리 조각상이 두 개 있었고 내가 초등학교 때 접어 둔 종이학과 학알들은 담금주병에 담겨있었으며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이나 약도 버리지 않고 두었다. 그 모든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처럼 한번 놓인 곳에서 세월을 보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슬픔 위로 장례식의 준비된 절차를 차근차근 수행했다. 가장 문제는 영정사진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할머니의 독사진을 찾아오라는 미션을 받고 할머니 집으로 출발했다.
더 이상 할머니가 없는 집, 불과 6시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곳, 더 이상 할머니가 없는 집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할머니가 누워있던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는 정돈되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재빠르게 사진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집에 있는 모든 수납장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사진 좀 자주 찍어둘걸, 자주 찍어드릴걸, 후회하면서 영정사진이 없는 장례식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 순간 발견했다. 작은방 자개장 세 번째 칸, 자주색 보자기로 곱게 싼 액자, 할머니의 영정사진이었다. 조금 젊은 할머니의 모습 위로 나프탈렌 냄새가 피어올랐다. 우리에게 말 한마디 않고 혼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은 나프탈렌을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탈취와 살충을 위해 흔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모으고 간직하고 소장하고 그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사이, 그것들이 온전히 있기를 기원하며 나프탈렌 한 조각을 함께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프탈렌 냄새가 난다는 건 할머니가 무언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글을 쓰는 건 할머니를, 할머니와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이다. 더 잊히지 않도록,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오랫동안 꺼내 볼 수 있게. 할머니가 서랍 안에 나프탈렌 한 조각을 넣어 놓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