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커피라는 것은 어른의 상징이었다. 커피는 어른이 되어서야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봤을 때 나는 순진하게 말 잘 듣는 '모범생' 부류여서 커피를 어릴 때부터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말을 곧잘 믿었고, 커피의 맛에 굳이 호기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같은 반 친구가 자판기에서 레쓰비 캔커피를 뽑아먹는 걸 보면서 커피를 저렇게 쉽게 먹어도 되는 건가, 걱정이 되는 한편 자판기에서 커피를 결제하는 행위만으로도 어른이 된 것 같아 그게 좀 부럽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로 인해 믹스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다. 오후 10시,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독서실로 이동하면 우리는 휴게실에서 만나 믹스커피 한잔을 타고 잠깐의 수다를 떤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공부를 했다. 6개의 책상만이 놓인 작은 독서실 공간에 우리가 탄 믹스커피 향이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독서실 운영이 끝나는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는 날이면 무언가 성취한 것 같은 기분과, 차갑고 고요한 새벽의 공기를 오직 나만이 느끼고 있다는 외로움, 그게 어른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고 착각을 하곤 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어른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당시 유행하던 스모키메이크업으로 아이라인을 더 두껍고 길게 칠했고, 앞코가 뾰족한 7CM 굽의 힐을 신었다. 다리가 아파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더 높은 굽의 구두를 사 신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 한학번 위의 선배였던 그는 해외에서 몇 년을 살다 영어특기자로 합격했다고 했다. 영어 실력 때문이었는지,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나 역시 그랬으며 우리가 사귄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 가십을 만들었다. 그는 점심을 먹은 후 꼭 카페에 가 아메리카노를 사 마셨는데 나의 커피 취향은 믹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 세포 하나하나에 카페인이 공급되는 기분이야. 이제야 살겠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가 주문한 캐러멜마키아또를 마셨다.
- 아직 애기구만.
장난기 섞인 '애기'라는 말이 괜히 싫었지만,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같은 커피는 너무 써서 먹을 수 없었다. 나도 더 나이가 들면 아메리카노나 소주 같은 게 맛있게 될까, 아직은 어른이 아닌 걸까 생각해 보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괜한 조바심이 들었다.
나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떠나는 쪽이 내가 아니었으므로 헤어지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나는 다만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나를 뿌리치고 돌아서는 그를 쫓아가려다 높은 힐 탓에 삐끗하고 넘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한참을 울다 당시 내 모든 걸 공유하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빠랑 헤어졌어. 매달렸는데 날 뿌리치곤 떠나버렸어.
-너 지금 어디야.
-간호대 앞 벤치.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를 보자마자 멎었던 울음이 또 터졌다. 친구는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고,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라든가 괜찮을 거야, 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친구는 간호대 맞은편 카페에서 음료를 사 왔다. 익숙한 커피 향, 캐러멜마키아또였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 울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세포 하나하나로 카페인이 흡수되는 기분을 이제는 안다. 소주가 간혹 달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듦과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차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끔, 캐러멜마키아또를 먹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몇 달을 평생처럼 좋아했던 남자친구가 아닌, 빠른 걸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사다 준 친구를 떠올린다. 그러면 너와 내가 여전히 간호대 앞 벤치에 앉아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