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자신의 것을 조금씩 떼어다가 켜켜이 쌓은
일요일 밤을 책임지던 개그콘서트. 그중 고음불가라는 코너가 있다. 노래 중 고음 파트만 음이탈이 나듯 웃기게 부르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 단조로운 포맷으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었던 건 대체로 그런 경험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노래를 못 부른다는, 일명 '고음불가'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어릴 적 노래방에서였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와 엄마의 친구와 함께 셋이서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여자 아이돌의 노래들을 신나게 불렀다. 엄마와 엄마친구도 웃으며 좋아했고, 내가 부르는 노래를 동영상으로 찍어 놓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같이 봤다. 엄마와 엄마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딸 노래 진짜 못 부른다.
-그러게. 고음이 안 올라가네.
창피했다. 수치스러웠다. 내성적인 나는 한마디도 못한 채 속으로 그 마음을 삼켰다. 삼킨 마음은 커가는 내내 소화되지 못한 채 얹혀버렸다. 초등학생인 그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노래방을 가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부끄러웠으니까. 간혹 음악 수행평가 중 가창시험이 있는 날에는 수행 점수를 포기하고 음악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노래방포비아가 되어 커가던 나는 고3이 되어 수능을 끝으로 성년의 시작 직전까지 다다랐다.
당시에 조금 친하게 지내던 남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남녀공학이어도 남녀가 분반이라 남학생과 여학생이 친하게 지낼 일이 잘 없었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친해져 자습이 끝난 후 종종 메신저로 수다를 떨었고, 서로의 앞날을 응원을 해주기도 했던 친구였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 나는 친구와 처음으로 학교 바깥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서로 하고 싶은 것 한 가지씩을 같이 하기로 했다. 나는 영화를 골랐고, 당시 관객수 1위를 달리던 영화를 함께 봤다. 그 후 친구가 원하는 걸 하는 차례가 되었다.
-노래방 가자.
이럴 수가, 노래방이라니. 예상치 못했고, 당황스러웠다. 가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친구는 이미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해주었으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그렇다고 노래를 못 부른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근데 여기 주변에는 노래방이 없지 않아?
-내가 아는 곳이 있어.
그렇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회유는 거절당했고, 끌려가는 심정으로 노래방으로 향했다. 10년이 훌쩍 지나 찾은 노래방은 조금 무서웠다. 어두운 지하계단을 들어간 끝에 놓인 허름한 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지하실 특유의 냄새, 모흐는 사람들의 땀냄새가 한데 섞인, '낯섦'을 냄새로 만든 것 같은, 그런 냄새들이 피어났다. 긴장한 나와 달리 친구는 자연스럽게 들어가 앉았다. 마이크에 일회용 커버를 씌우고, 노래방 리모컨을 나에게 주며 말했다.
-먼저 불러.
-내가 노래를 잘 몰라서...
나는 괜히 가수버튼과 제목버튼을 번갈아 가며 눌렀다. 아무 노래도 나오지 않는 정적의 노래방에서 나 혼자 속이 시끄러웠다. 더 이상 지체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던 나는 고르고 고른 끝에 여자 가수가 부른 노래를 남자 가수가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틀었다.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도, 남자 음정 정도라면 도전해 볼 만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첫 음을 뱉었다. 동시에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친구는 나에겐 전혀 관심 없는 듯 리모컨으로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예약하기 바빴다. 나의 노래가 끝난 후 친구가 물었다.
-이 노래 원래 이렇게 낮았나?
-아, 리메이크버전이라 그런가 봐.
-아, 너 고음불가야?
-어?
-나도 고음불가거든.
그 사이, 친구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미간에 온 감정을 담아 부르는 친구의 모습이 웃기고 귀여웠다. 동시에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 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통쾌함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 친구를 좋아했던 이유가 나와 달라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수학 개 못하잖아. 이 문제 좀 알려줘. 이런 기본적인 것도 잘 모르겠다니까?
친구는 모든 것에 숨김이 없었다. 못하는 것이든, 잘하는 것이든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열어두었다. 반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소극적인 데다가 못하는 걸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자물쇠로 꾹 잠가두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노래를 하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노래 못하는 거, 귀엽네.'
나는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조금씩 떼어다가 켜켜이 쌓아 놓은 결과물이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마음, 다정함과 솔직함, 배려심과 자존감,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눈과 귀와 육체와 정신이 되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술을 먹고 기분 좋게 취했다. 3차는 당연히 노래방이다. 나는 내 음정과 흥에 딱 맞는 빅뱅의 판타스틱베이비를 불렀다. 춤도 포기할 수 없다. 마이크가 마구 흔들리며 음정이 나가고 박자를 놓친다. 그래도 상관없다. 보너스 10분이 추가된다. 친구들과 마지막 1분까지 끊임없이 뛰고, 소리를 지르고, 웃었다. 노래방 그 작은 방 하나가 우리의 땀 냄새와, 우리만의 추억들로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