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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갈비

나는 언제나 바깥이었고, 바깥의 나는 모든 게 참 부러웠다

by 미리 Dec 17. 2024

부영갈비 아줌마. 엄마는 아줌마를 그렇게 지칭했다. 부영갈비 아줌마는 엄마의 친한 친구로 갈빗집을 운영하며 돈을 꽤 벌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 당시 아주 어렸어서 부영갈비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몇 없다. 그곳의 상호가 정말 부영갈비였는지, 그곳의 갈비맛은 어땠는지, 아니 갈비를 먹어보긴 한 것인지,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엄마에 의해 종종 끌려갔던 곳으로 아줌마 아저씨들은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지만, 나는 그 자리가 불편했고 심심했다. 생각나는 것은 밑반찬으로 있었던 꼬막무침인데, 꼬막을 잘 삶아 껍데기를 한쪽만 제거한 후 조갯살 위로 양념장을 올려 내는 형태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꼬막 껍데기로 잡고 앞니로 조갯살을 긁어먹었다. 엄마가 해준 적 없는 반찬이라 눈치를 보면서도 그건 꼭 두 접시를 먹었다.


어른들의 술자리가 길어지면 나는 부영갈비 아줌마네 집으로 옮겨졌다. 집의 구조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 집에 비해서는 아주 컸고 피아노도 있어서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집에는 나보다는 훨씬 큰 딸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두 딸이 같이 쓰는 방에 내가 얹혀졌다. 나를 환대하지 않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때 나는 그 언니들이 너무나도 커 보였고, 조금은 무서웠던 것도 같다. 


당시에는 '마이마이'에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듣는 경우가 많았다. 두 언니는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서로 듣겠다고 다퉜고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조마조마해했다. 그 다툼이 끝나갈 때 즈음 술에 취한 부영갈비 아저씨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언니의 아버지이자 우리 엄마 친구의 남편. 아저씨는 나에게 와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다.

"너희 엄마가 그러는데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며? 어디 한번 쳐봐."

"아빠,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침에 치던가 해."

"아잇 왜~~~ 지금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

"아니 우리 잘 거라고!"

아저씨는 딸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피아노 앞으로 데리고 갔다. 쳐보고 싶었던 피아노와 무서운 언니들 사이에 있는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피아노 커버를 열고 건반을 조심히 눌러보았다. 좋고, 싫고, 행복하고, 불편한 모든 감정들이 피아노 건반을 타고 흘렀다.

"... 다음을 까먹었어요."

나는 눈치껏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언니들도 이제 됐다고 동조했고 아저씨는 아쉬워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모두는 굳게 닫힌 갈빗집 안에 앉아 아침을 차려먹었다. 노릇하게 익은 완숙 계란후라이 위로 빨간 케챱이 뿌려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케챱 뿌린 계란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때 부영갈비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 딸은 이래야 밥 먹어."


부영갈비에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이 가득했다. 맛있는 꼬막무침, 큰 집, 마이마이와 피아노, 케챱 뿌린 계란후라이와 딸에게 밥을 먹이겠다는 마음, 그리고 아빠. 가족마다의 속 사정이야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나는 언제나 바깥이었고 바깥의 나는 모든 게 참 부러웠다.


너와 처음으로 돼지갈빗집을 찾았다. 정성 들여 굽지 않으면 갈비 양념 탓에 금방 타버리고 만다며 너는 고기에만 집중한다. 나는 입을 주욱 내밀고 돼지갈비를 뒤집는 너를 바라보다가 무심코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가족이다. 고기를 굽는 아빠와 고기를 잘라 자식의 입에 넣어주는 엄마, 태블릿에 시선을 두고 갈빗살을 받아먹는 아이. 그리고 부영갈비를 떠올린다. 그곳의 돼지갈비 맛이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 달큰한 간장이 불에 그을어 내는 맛 좋은 냄새에 아줌마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아저씨의 눈치 없는 다정한 마음들이 피어오른다. 


"돼지갈비는 가족음식인 거 같아."

".........어? 어..."


너는 어느새 구워진 고기를 한입 크기로 잘라 내 앞접시에 놔주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네가 좋아하는 상추에 고기한점과 마늘 한 점을 넣고 너의 입에 넣어준다. 너와 나는 고요히 웃는다. 너와 내가 가족이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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