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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Oct 22. 2024

델리만쥬


델리만쥬. 지하철 환승통로 끝자락에서 냄새로 날 반겨주는 달고 촉촉한 냄새. 어쩐지 냄새가 더 맛있는 것 같은 약간의 사기. 그리고 그 사기를 내 입에 넣어준 너의 손.

너는 참 함부로 무얼 하는 사람이었다. 함부로 사랑에 빠지고, 함부로 마음을 주고, 함부로 상처를 받고, 함부로 상처를 주는 사람. 어느 날 밤 너는 나에게 대뜸 전화를 걸었다.

 - 어디야?

 - 집이야. 빨래 널고 있어.

 - 나 지금 너네 집으로 가는 중. 거의 도착했어, 얼른 나와.

 - 지금?

 - 웅. 지금.

 - 나 지금 잠옷 입고 있는데?

너는 이유도 없이,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나의 집 앞에 무작정 찾아왔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대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했을 때, 멀리서 네가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반가워서 짧은 거리를 뛰어가 네 앞에 섰다. 시원한 밤공기가 얼굴에 부딪혔다.

 - 그렇게 뛰어올 거면 안겨야지. 다시 가서 뛰어!

너는 굳이 내 등을 떠밀어 다시 뛰어오게 만들고 너에게 안기게 만들었다. 나는 너를 못 말린다는 듯 쳐다봤고, 너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속에서 몰래 설렜다.

우리는 근처 호숫가를 돌며 산책을 했다. 호숫가 벤치에 앉은 커플이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벤치 옆에 앉아 조용히 그 불꽃놀이를 몰래 탐닉했다. 근처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집어 대충 접은 종이배를 호숫가에 띄웠다. 종이배에는 각자의 비밀스러운 소원을 담았다. 너는 종이배가 멀리멀리 항해하라고 나뭇가지로 휘휘 파도를 만들었다.

다른 날 밤, 너와 나는 대결하듯 먹은 술에 취기가 오르고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도중 어디선가 냄새가 풍겼다.

 - 델리만쥬냄새다. 맛있겠다.

 - 나 델리만쥬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 뭐?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해? 이 냄새를 맡고도?

너는 오늘 나에게 꼭 델리만쥬를 맛 보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냄새에 의지해 델리만쥬가게를 찾아 나섰다. 지하철 구석에 자리한 간식코너. 그 위에 잘 구워 갈색빛이 도는 따끈한 델리만쥬 삼천 원어치, 일곱 알이 주황색 종이봉투에 담겨 너의 손에 건네졌다. 너는 델리만쥬 하나를 꺼내 내 입에 넣어주었다.

  - 어때, 맛있지?

네 손으로 내 입에 넣어준 델리만쥬는 달고, 말랑하고, 뜨거웠다. 기대에 가득 찬 눈과 미소로 대답을 채근하던 너에게 나는 너무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냄새로 상상했던 맛보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맛이었다. 그래도 그게 참 좋았다. 그날 나는 몰래 결심했다. 너와 오래 좋아하기로. 아주 오랫동안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잘도 받아먹고 행복하겠다고.

가끔씩 델리만쥬 냄새를 맡게 되면 내 입에 넣어준 너의 손과 기대에 찬 눈빛들이 떠오른다. 여전히 잘 먹지 않는 음식이지만, 델리만쥬는 언제나 달고, 말랑하고, 뜨거울 것이다. 냄새만큼 맛있을 거라 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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