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 <싯다르타>-헤르만 헤세

by Wealthy 웰씨킴

저자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목사였고, 어머니 역시 독실한 신학자 가문 출신이라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학교의 속박된 생활을 못 견디고 뛰쳐나와 한때 자살을 시도했다. 시인이 되기를 꿈꾼 뒤 시계 공장에서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며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해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출간했다.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여 문학적 지위를 얻었다. 그해에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며, 스위스로 이주해 시작에 몰두했다. 그 후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으며, 아내의 정신병, 헤세 자신의 신병 등 가정적 위기를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의 광적인 폭정에 저항하는 등 파란 많은 세월을 겪었다. 주요 작품으로 《수레바퀴 밑에서》, 《게르트루트》,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유리알 유희》(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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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Siddhārtha Gautama)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태자 때의 이름.


1922년에 발표된 《싯다르타》는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둔 성장소설로,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잇는 헤르만 헤세 성장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인 싯다르타는 고타마 부처의 출가 전 이름으로, 인도 최고 계급 바라문(브라만)의 아들인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체험과 수행을 그리고 있다.


평생에 걸쳐 내면의 자아와 삶의 본질을 탐구해 가는 구도자 싯다르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아버지와 선교사이자 이름난 인도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인도 문화를 접했던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불안정한 소년 시절 불교와 동양 사상에서 위로를 받았듯, 《싯다르타》를 통해 불안하고 위태로운 수많은 젊은 영혼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다.


오늘의 1일 1독 성장의 시간은 <싯다르타>와 함께한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무엇이 명상이지? 몸을 떠난다는 게 뭐지?

단식이란 무엇이며, 또 숨을 참는다는 건 뭐지?

그건 자아에서 도망치는 것에 불과해.

자아라는 고통에서 잠깐 도피해

고통과 인생무상에

잠시 무감각해지는 것뿐이라고.

그런 거라면 소달구지 운전자들이 여인숙에서 막걸리를 마시거나 발효된 야자유를 마시면서 느끼는 것도 똑같은 거 아닐까? 그들도 그런 순간에 자아에서 벗어나 잠시지만 삶의 고통을 잊고 감각이 마비되는 걸 느끼잖나. 그렇게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잠이 드는 것과 이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오랜 수행을 통해 배운 육신을 벗어나 자아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이 뭐가 다를까?


고빈다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술이 깨어 다시 돌아오면

그가 발견하는 건 뭘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고, 더 현명해지지도 않아.

깨달음은 더더군다나 얻지 못하지.

단 몇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뿐이란 말이네.

<싯다르타> 중에서



<인사이트>

술이나 약 효과를 이용하여 일시적이나마 정신적 해방감을 느끼는 것,

그 당시에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이 들지만 지나고 나면 몸과 정신이 상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일시의 해방감 뒤에 더욱 무기력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 그전보다 더 큰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싯다르타는 음주를 하지 않고서 명상과 호흡법, 그리고 단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지만, 그것들을 통해서도 완전한 만족을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상당한 수준의 자아 성찰 경지에 이른 싯다르타조차도 정신 수양을 통해 완전한 만족에 도달할 수 없었다면, 얼마나 수양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수양을 중단해야 할까?

인간의 감정은 상시적으로 요동치는 특성이 있으므로 수시로 알아차리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수양한다는 것은 '평생' 해나가야 할 자기계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양을 중단하게 되면 수양을 통해 길러온 자기 통제력이 느슨해지면서 순간적인 감정에 더 쉽게 휘둘릴 수 있다. 또한 인격적 성숙과 지혜의 축적이 멈추게 된다. 이는 마치 운동을 중단했을 때 체력이 저하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한 결과로 정신적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외부 환경에 흔들리며 '나'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속세로 돌아간 싯다르타의 삶에서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속세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쉽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사문이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고 궁극적으로는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말라가 내게 주는 입맞춤의 가르침처럼 모든 것이 쉽다. 나는 옷과 돈,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들은 하찮은 것이고, 얻기 힘든 것들이 아니며, 사람을 잠 못 자게 하지는 않는다.’

<싯다르타> 중에서



<인사이트>

순례자의 삶에서 속세의 삶으로 들어서면서 싯다르타는 누구보다 자신 있어하는 모습이었다.

수행을 거쳐 배운 것들을 활용할 수 있기에 세속적인 것들이 자신의 영혼을 희석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얼마 동안은 그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수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스며들기 나름이다. 가장 쉽게 여겼던 속세의 삶이 현실로 밀접하게 다가오자 그는 영혼을 잃어갔다.


그 과정을 읽다 보면 마치 직접 경험하고 있는 듯 감정이 이입되어 자신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과 반성의 마음이 들게 할 것이다. 이것이 <싯다르타>를 읽어야 할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라고 느껴질 만큼.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직접 맛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속세의 욕망과 부자의 삶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나는 어렸을 때 이미 배웠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건만 나는 이제야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안다.

기억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을 통해, 마음을 통해, 내 배를 통해 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좋은 일이다!’

<싯다르타> 중에서



<인사이트>

수많은 책들을 통해 내 안의 깨달음을 일깨운다고 생각했지만, 궁극적으로 지식으로서의 앎에서 행동과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깨달음은 무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깨달음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경험', 즉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우는 과정에서 뼛속 깊이 새기며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수도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고서도 높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실전주의'와 '경험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싯다르타의 생각에 더욱 공감하게 될 것이다.






모든 고통도,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는가.

사람이 시간을 극복하면, 시간에 그 존재가 없음을 깨달으면, 세상의 모든 힘든 일들, 모든 적대적인 것들은 사라지고 극복되지 않겠는가!

황홀한 기쁨 속에서 싯다르타는 말했다.

<싯다르타> 중에서



<인사이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과거도 미래도,

그 어 떤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번뇌도 없을 것이라는 말.

시간이 문제라면 시간을 극복하라는 말이

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무언가를 구할 때 그 사람의 눈에는

여전히 그가 찾는 것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깨달을 수가 없고,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찾는 대상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목표가 없습니다.

<싯다르타> 중에서



<인사이트>

싯다르타가 속세를 떠나고 운명처럼 다시 만난 뱃사공 바수데바를 통해 경청과 더불어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가 강에서 사색하며 배운 조용한 마음, 열정을 드러내지 않는 자세,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경청하는 법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상상을 통해 느끼고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의도를 상대에게 전가하기 위한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교감과 소통이 아닌, 목표 완수에만 초점이 되는 대화 속에서 과연 말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 만으로 좋은 시간, 좋은 대화였다고 느낄 수는 없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기다림과 열린 영혼으로 듣는 자세.

'경청'이 있어야 '소통'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책 한 권으로 자아성찰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종교인들의 책을 읽었지만, 이토록 깊은 참회와 공감 그리고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기에 설명하기에도 어려운 벅찬 감정이 인다.


작가로서 어찌도 이리 깊은 성찰의 책을 쓸 수 있었는지, 헤르만 헤세의 필력과 통찰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아성찰과 삶의 본질을 탐구해 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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