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나태주
대표 시 <풀꽃>처럼 작고 여린 존재를 향한 시를 쓴다. 1971년 <대숲 아래서>로 등단한 후 현재까지 40여 권의 창작시집을 포함해서 1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40년이 넘는 교직 생활 후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으며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풀꽃문학관에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가깝고 조그마한, 손 뻗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은 13권을 읽어 보았고, 가장 애정하는 시인으로 자리했다.
50년 이상 시를 써오신 분의 필력에는 순수함이 묻어나고,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주기 때문에 더 선호하게 된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베스트 시들을 모아서 필사본으로 묶어 둔 것으로 사랑 시들을 읽다 보면 메마른 마음에도 유연제를 뿌리는 듯 향기가 흩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그때의 기분과 애틋함이 좋아서 사랑을 다시 찾고, 누군가는 사랑이 지난 후의 기분과 헛헛함이 싫어서 사랑을 놓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할 때도 이별 후에도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 사랑을 멀리한다.
각자의 사랑에 대한 생각에 따라 자기 방식의 사랑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든 선택은 옳다.
사랑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서 하는 것이니 그 어떤 선택도 옳다.
오늘의 1일 1독 성장의 시간은 나태주 시인의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과 함께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손을 잡았다
한 젊은 우주가
또 한 젊은 우주의 손을 잡은 것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한 젊은 우주가 또 한 젊은 우주의
어깨에 몸을 기댄 것이다
그것은 푸르른 5월 한낮
능금꽃 꽃등을 밝힌
능금나무 아래서였다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에서
<인사이트>
이 시에서 끌렸던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람을 우주라고 표현한 점이다.
인간의 뇌와 신체구조나 살아 숨 쉴 수 있는
원리를 생각해 보자면 어느 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우주라고 일컫는 인간,
두 사람이 만나 조금 더 큰 우주를 만들어가는
그러한 것이 '사랑'이라는 의미일까?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에서
<인사이트>
흔히 하는 남 탓들 중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탓'이라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지만,
이 시에서 만큼은 긍정의 탓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좋은 것에는 '덕분'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래,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도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라는
유쾌한 남 탓을 들어 본다.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에서
<인사이트>
목련을 보면 아련한 느낌이 있다.
새하얀 목련이 움을 트고 만개하기까지
혹독한 겨울을 나면 봄에 그 자태를 드러낸다.
활짝 핀 꽃송이를 바라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한 송이씩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면
더 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시를 읽다 보면 그 아련함이 시에 더해져
이별의 서글픔이 더 짙어지는 듯하다.
이 시에서의 이별은 이성 간의 이별을 넘어
살면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을 떠나는 날,
아픈 마음 누르고 잠시 여행 떠난다 생각하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다는 느낌도 든다.
각자의 스타일로 상황에 대입하며 해석하는 것,
이것이 시를 사유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에서
<인사이트>
마음을 과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아껴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항상 마음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을 보면
부담감이 드는 한 편 고맙기도 했다.
내가 주는 것보다 많은 것을 주어 부담스럽고,
내가 주는 것보다 많은 것을 주어 고맙다.
그렇게 받은 마음이 더해지면서
내 안에 담아두기에는 넘쳐나서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게 된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이 주는 법을 안다'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니
지난날의 묵힌 마음이 아쉽기도 하다.
이제라도 조금씩, 과하지 않게
마음을 하나씩 건네보려 한다.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에서
<인사이트>
좋을 때는 바라만 봐도 좋고,
부족한 점마저 좋아 보인다.
이별하는 날이 오면
좋았던 것들을 부정하고,
그런 마음이 미워 또 눈물이 나는.
자신에 대한 눈물과 상대에 대한 눈물이
함께 뒤섞여 고개도 들지 못한다.
이 시를 읽으면,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처럼
애써 외면하려는 먹먹함 느껴진다.
세월이 가면 빛바래지는 사랑과 슬픔,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는
마치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한 듯 전해진다.
오늘도 시 한 폭에 마음을 적시는 시간,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