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뉴이재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구태죠.-사설에 대한 입장-85
안녕하세요 겨울방주입니다.
오늘 공유드릴 사설은 주간한국의 칼럼입니다. 뉴이재명을 거부하면 역사의 뒷전으로 갈 뿐이라며 뉴이재명은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제기하는 문제
“21세기는 인류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뿌리부터 바뀌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이다. 정치영역 역시 과거의 이념 중심이나 의회주의의 국민적 대표성 한계에 벗어나 AI 등의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미래형 권력지형으로 이동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지형은 아직도 진영과 이념을 앞세우며 편 가르기를 하고 자신들을 옹호하는 진영 속에서 누려온 기득권을 옹호하고 있다.”
주장하는 내용
1.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단지 허위의식뿐만 아니라 특수한 이익을 은폐시킨다고 하면서 지금 국내외적으로 직면한 문제는 좌우익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낡은 관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에 이어서 6.25 전쟁 이후 남북대립이 아직도 이어져있다. 정치권에서 벌어진 뉴이재명 논란은 한국정치인들이 얼마나 낙후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국민주권정치, 민생정치가 아닌 이념지향적 진영정치에 갇혀있는지 알 수 있다. 민주 진보 진영을 거론하는 이들은 ‘이재명 지지층’으로 유입된 새로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들에게는 정치가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갈라치기이며 ‘386 운동권’적 시각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정책화하고 있는 탈진영, 탈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 대통합 정책에 반역을 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거 이승만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역사적 재단하는 짓은 꼴불견이며 역사적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퇴행적 행태다.
2. 한국 현대 정치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바람, 새로운 흐름의 공통점은 사회변화와 함께 정치변화를 동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기성 정치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왔다. 1970년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김영삼이 정치지도자로 등극한 40대 기수론 역시 신민당에서의 주류 교체 결과다. 이들은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우리가 직접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들고일어난 것이다. 2000년대 16대 총선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젊은 피를 수혈한 것도 마찬가지다. 2002년 노무현 돌풍도 마찬가지다. 주류정당의 아웃사이더였던 2008년 버락 오바마와 버니샌더스도 마찬가지다.
3. 2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은 12.3 내란을 진압하고 탄생한 역사적 대통령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좌우, 진보와 보수로 갈라치기 된 현실에서 국민통합을 강조한 대통령이다. 새로운 성장시대는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어느 정권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정권은 없었다. 속칭 진보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능했다. 이와 대비적으로 이재명 정부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며 한미, 한일, 한중 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통합이 이뤄져야, 국민 그 자체의 정체성이 정립되어야 국가발전이 이뤄짐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념과 진영의 대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대결을 통해 기득권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뉴이재명은 단순히 유권자들의 이동현상으로만 보면 안 된다. 이념과 진영 속에 갇혀 정치를 국민들로부터 분리시킨 이들에 대한 거센 움직임이다. 정치는 국민이고 국가다. 국민과 대화하는 것이란 말이다. 정치를 당파와 정파의 수단으로 삼던 시대는 정치극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 선봉이다. 올드든 뉴든 그들은 이재명으로 나타나면서 과거 진영과 이념 정치에 갇혀있는 허위 주류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최근 이재명 지지율이 67%가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이에 불복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국민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고 있다.”
P1: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저서를 통해 과거 정치가 이데올로기 분쟁의 연속이었고, 우리나라 역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심한 정치대결만 일삼고 있으며, 소위 민주 진보 진영을 거론하는 이들이 ‘이재명 지지층’으로 유입된 새로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펼치고 있는 탈진영, 탈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 대통합 정책에 반역을 꾀하고 있으며 과거에 이승만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역사적 재단하고 역사적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역적 행위다. 이러한 역적들은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할 반역자요 암적 존재나 마찬가지다.
P2: 한국 현대 정치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바람, 새로운 흐름의 공통점은 사회변화와 함께 정치변화를 동반했는데,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이 그러했고, 미국의 아웃사이더였던 오바마와 버니 샌더스도 그러했다. 그러니 정치변화에 역행하는 반역은 하지 말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P3: 이재명 대통령은 12.3 내란을 진압하고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한국사회가 좌우, 진보와 보수로 갈라치기 된 현실에서 국민통합을 강조한 역사적인 대통령이다.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어느 정권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정권은 없었으며, 속칭 진보를 부르짖는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할 정도로 무능했다. 이와 대비적으로 이재명 정부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며 한미, 한일, 한중 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통합이 이뤄져야, 국민 그 자체의 정체성이 정립되어야 국가발전이 이뤄짐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탈진영, 탈이념, 중도 실용주의를 통해 과거 김문수, 이준석을 찍었던 유권자들로 하여금 이 대통령을 지지하게 만드는 젊은 유권자들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념과 진영의 대결을 지속하며 기득권을 누려온 병폐를 지속하고 있다. 정치적 기득권을 누려왔던 정치세력은 젊은 층들을 방해요소이자 적대적 세력으로 악마화하고 있다.
C: 뉴이재명은 유권자들의 일시적인 이동 현상으로만 간주하지 말 것. 진영과 이념에 갇혀서 당파와 정파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봐야 한다. 67%의 지지율이 바로 뉴이재명 현상의 방증이다. 정치권은 정신 차리고 뉴이재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이는 반역죄로 처단당하여 역사적인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P1: 어느 사회학자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과거 진영 싸움의 폐해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정치권이 정치 진영 논리에 매몰된 채 정치싸움만 일삼고 있다며 한심한 작태라고 맹비난합니다. 겉으로 보면 양비론을 취하고 있는데, 민주 진보 진영을 거론하는 이들을 향해 ‘이재명 지지층’으로 유입된 새로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는 이재명 정부가 펼치고 있는 탈진영, 탈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 대통합 정책에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 이승만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역사적으로 재단하고 역사적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역적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역적들은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할 반역자요 암적 존재나 마찬가지라는 뉘앙스의 맹비난을 퍼부으며 악마화를 일삼고 있습니다. 지금은 진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억강부양을 위한 진보적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이에 따른 정책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기득권은 뉴이재명의 탈을 쓰고 기득권을 유지할 생각으로 트로이의 목마처럼 잠복하고 빛의 혁명을 전복시킬 반역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박구용 교수가 우려한 대로 혁명 이후 반혁명이 발생하고 있는데, 거대담론이 아닌 먹고사는 민생문제만 매달리며 중도 실용주의에 매몰된 채 모두가 잘 사는 억강부양, 대동세상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습니다. 또한 해당 사설은 진보진영에 대해 정치가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갈라치기이며 ‘386 운동권’적 시각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데, 양두구육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머리인데, 속은 개고기죠. 뉴이재명을 반대하는 이유를 여전히 모르시겠어요? 기득권층들은 뉴이재명의 탈을 쓰고서라도 살고 싶은 것입니까? 왜 우려를 하는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역적으로 규정하며 1순위척결대상으로 삼는 것입니까? 기성언론이 뉴이재명을 찬양하면서 뉴이재명을 도입하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그 의도가 무엇입니까?
P2: 과거 사례를 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사설을 쓰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겠지요.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협박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사설을 볼 때 과거의 사례(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버락 오바마, 버니 샌더스 등)를 예로 들면서 변화를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 수단이 협박이라면 이는 읽은 이로 하여금 반발감을 가지게 할 겁니다. 해당 사설을 읽은 저 역시 반발심이 먼저 들 정도입니다.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기성 정치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왔다고 했던 그 저의가 몹시 궁금합니다.
P3: 물론 이재명 대통령은 12.3 내란을 딛고 당선된 역사적 대통령입니다. 내란을 진.압.하.고 당선된 대통령이 아니라요. 상황을 오독하거나 왜곡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압이라니요? 과거 김문수 또는 이준석을 지지했던 젊은(특히 2030 남성들) 층은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을 챙겨줄 것 같자 뉴이재명의 탈을 쓰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더욱 극대화할 생각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들은 자신들이 내란정국(탄핵정국) 때 저질렀던 폭력에 대해 반성도 안 했을 텐데 말입니다. 더군다나 진보진영의 젊은 층은 뉴이재명으로 유입되는 그런 청년들(전부가 아닙니다. 극우화된 일부이거나 보수진영 측 젊은 층과 중도 측 젊은 층 중 일부입니다.)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요? 그리고 탄핵집회 때 극우 청년에게 멱살을 잡힌 그 대학생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요? 저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보정부를 악마화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보수가 경제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면 보수정권은 유능하게 정치를 잘 해왔답니까? 경제적으로 등따숩고 배부르게만 해준다면 부정부패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라고요? 당연히 지향해야지요. 하지만 먼저 내란의 잔재와 우파 기득권을 전부 청산해야지요. 빛의 혁명 때 많이 언급되었던 어젠다는 진보적 어젠다, 즉 개헌과 기후환경, 기본사회, 시민의회(저는 처음에 우려를 담아 반대했지만 뉴이재명의 등장으로 인해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돌봄, 차별금지,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 등 수많은 진보적 어젠다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진보냐 보수냐의 낡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정치를 하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는데, 돈 있는 욕심쟁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더욱 극대화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뉴이재명을 가장하여 빛의 혁명을 전복시키려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도 듭니다.
C: 해당 사설은 뉴이재명을 받아들이라고 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반역이라고 협박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언제 이재명을 찬양하였습니까? 오히려 악마화하기에 바빴지요.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행태를 감탄고토라고 합니다. 그런 행태를 통해 오히려 진보진영을 악마화하는 반혁명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단순히 개인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잘 사는 대동세상,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지 않도록 하는 억강부약의 정책을 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이재명 대통령의 뒷받침을 하려면 무조건 뉴이재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경계를 하면서 진보적 어젠다를 하나씩 관철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뉴이재명을 거부하는 자가 반역자가 아니라 뉴이재명을 밀어붙이는 이가 반역자이자 반혁명분자입니다.
이상 겨울방주입니다. 한 주 잘 보내십시오.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우리 자신의 집단지성은 늘 의심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뉴이재명에 대해 늘 경계하는 마음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만약에 오염된 뉴이재명이 진보진영의 본체인 민주당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전보다 더욱 엄혹한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유용화 칼럼] '뉴 이재명' 거부하면 역사의 뒷전으로 갈 뿐 -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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