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기억만이 얼어붙은 채-
시간은 잔혹합니다.
절대로 거꾸로 가지도, 옆으로 새지도 않지요.
사람의 마음은 망설이고, 돌아보기도 하지만 시간은 급류처럼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기억이란, 어쩌면 이 멈추지 않는 시간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지만, 대신 얼려진 과거를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되새기며
아름다웠던 날들을 회상하지요.
이렇게 현재를 잠깐 잊고 한숨 돌리며 위안을 갖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살아갈 동기를 부여합니다.
잊어버리기 싫을 정도로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기억도 있지만
마치 흉악범의 얼굴이 드러난 CCTV의 영상처럼
무섭거나 괴롭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도 있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마치 조금씩 녹아버리듯 희미해지곤 하지만,
아픈 기억은 하나같이 얼마나 꽝꽝 얼려졌는지 잘 희미해지지도 않지요.
언제 접해도 괴롭지만, 이런 기억을 통해
더는 괴로운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스스로에게 되새깁니다.
어쩌면 인간을 현명하게 하는 기억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어쨌거나 머릿속 깊숙이 남아있는 기억은
본디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진한 감정이 녹아든 경험일 것입니다.
그 감정이 좋았던 나빴던 간에 말이지요.
따라서 그 나름의 여운이 있는데, 간혹 거기에 너무 심취한 채 현재를 잊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나 때는~"하면서 무조건 현재를 깎아내리거나, 과거의 상처에 헤어 나오지 못해
오늘마저 불우한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가끔 한겨울의 살얼음 낀 강물 위를 맨발 위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겨우 찾은 조그마한 온기 같아서인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같아서인지
머릿속에 강렬히 남은 기억 때문에 나아가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계속 한자리에 머무를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