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없이 연을 만들었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댓살과 얇은 종이를 가지고 초등학교 때도 잘 만들지 않은 연을 만들었다.
내가 하늘을 날고 싶은 거였는지..
나는 완성된 연을 가지고 갈대습지공원 넓은 공터에서 날리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렇게 회사를 출근했고, 한창 더 배워야 하고 갓 사원에서 일을 배워 진급을 앞둔 때였다.
선임자였던 이 과장님은 동료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었다. 일 처리도 깔끔하여 군더더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부분이 없는 나에게 바로 윗 사람인 이 과장님은 나의 모델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도 배 대리나 술자리에서 소문난 여사원 김 00씨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1차 벤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아니 나라도 그런 사람이라면 회사에 스카우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소문이 돈 며칠 후 이 과장님은 나를 차 한잔하자면서 휴게실로 불렀다. 어차피 거래하고 있는 회사는 알고 있었고, 더 좋은 처우로 회사를 옮기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나에게도 좋은 자릴 찾아보겠다는 그 말이 나로서는 보험을 하나 더 계약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이 과장님은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떠났다. 몇 주 동안 나는 선임 없이 개발영업팀책임자 역할을 했지만 인사 과장님은 곧 새로운 사람이 뽑힐 거라며 긴장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주말이면 이직한 이 과장님은 외발자전거를 타셨다. 한 번은 회사 주차장에서 차 트렁크에서 외발자전거를 꺼내 보이며 시범을 보이는데 참 여러 가지 능력자라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그 외발자전거 탈 여유가 생긴다면 타보리라 결심했다.
2주 뒤 인사과장과 면접을 보러 오는 나의 사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사장/부사장과의 면담 후 가전 회사에서 품질 관리를 맡아 담당했던 신 00과장이 나의 사수가 되었다. 키도 작고 살짝 촌스러운 모습에 또한 이 분야에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 나의 사수라 하는데 좀 마음이 무거웠다. 오히려 내가 그 일을 가르치고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있었다. 술을 안 먹는 나에게 그는 마음 열기를 시작하려는지 술 한잔하자며 친해지려 노력하였다. 그런 술자리를 못 이기는 척 가서 난 그 사람의 하소연과 과거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난 앞으로의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잘 나갔던 그의 과거가 초라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몇 번의 의견 다툼으로 싸늘해진 감정과 길들여진 타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 서운했는지 그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갔었다.
사표를 썼다. 정든 동료들과 헤어짐은 참 슬펐다. 인사과장은 어디서 제의가 들어왔냐 했지만 아무런 제의가 없었기에 멋있게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정을 들이는 만큼 내 마음을 남기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또 내 마음을 남기고 사직했다.
몇 년 뒤 회사 근처로 볼 일이 있어 지나가며 쳐다보는데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이 과장님의 외발자전거가 생각났다. 이후 나는 자동차 분야 쪽에 일을 하지 않았다. 업계가 실제로 좁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 내가 근무했던 ds 회사는 내가 퇴사하고 무리한 문어발 경영으로 2년 뒤 부도 처리되었다. 그렇게 건실했던 회사가, 오히려 더 확장되리라는 기대가 되었는데...잠시 지나가는 길에 들르면 차 한잔 얻어마실 수 있겠다 생각했던 회사였는데 그렇게 쉽게 사라질지 몰랐다.
연을 날리면 나는 내가 연이 되어 나는 듯했다. 더 높게 더 높게 올라가면 한정된 실타래의 끝을 만난다. 끝을 만나고 실에서 전해져 오는 높이의 무게와 바람의 힘을 느낀다. 오히려 높이 오를수록 고요하다. 흔들림이 없다. 낮으면 낮을수록 아래에서 비상하기 위해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숨 막히게 뛰어야 한다. 그러나 안정권에 들고나면 그다지 할 것이 없다. 그저 높은 곳에서 멀리만 보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과장님도 외발자전거의 스릴을 느끼며 그런 여유를 즐겼겠지 이제는 나도 연을 날린다. 더 잘 나는 기술 없이도 그저 바람에 맡긴다. 어릴 땐 왜 그렇게 허둥지둥 실수하며 하늘을 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