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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씅쭌모 Nov 05. 2024

가을, 나무

나무를 닮은 인생

아침에 공원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채식주의자 표지 그림, 에곤실레의 '네 그루 나무' 덕분에 요즘, 유난히 나무에 눈길이 갑니다.


에곤실레의 작품처럼 나무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해질녘, 실레의 '네 그루 나무'는 온화한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쓸쓸하고 고요한, 그리고 묵직한 느낌의 고독을 느끼게 합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온통 빨간 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나무가 있는가하면, 또 어떤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가늘고 긴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겨울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렇다고 잎이 없어서 가지만 남은 나무의 모습이 볼쌍사납거나 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며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거 같습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나무들이 우리네 인생을 말해주는 듯 했거든요.

같은 종류의 가로수도 저마다 속도가 있는 거 같습니다. 붉게 물든 나무, 아직 초록을 유지하는 나무, 물들어가는 나무, 잎이 다 떨어져 눈에 띄게 가지만 드러나는 나무같이 인생도 각기 다른  속도로 익어갑니다.


나무들이 한결같이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변해간다면 아름다워보이지 않을 거 같습니다. 다양성에 의한 조화로움이 아름다움을 한층 더하는 것처럼 인생들의 각기 다른 재능, 개성, 능력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사회가 극히 자연스런 것이고, 그 공동체가 자아내는 하모니를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전에는, 완연한 붉은 빛으로 물든 나무에만 나의 시선이 머물렀는데, 오늘은 앙상한 가지가 많이 드러난, 불그스름한 잎이 듬성듬성 달려 있는 나무에 눈길이 갔습니다. 뽐낼만한 영롱한 색의 잎도 없고, 가진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나마 달려있는 불그스름한 잎 마저 떨어트려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나무가 중년의 저를 보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추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제 역할을 다한 후의 모습고, 겨우내 에너지를 축적해서 새 잎을 돋아나게 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본 나무가 잎사귀가 풍성한 나무가 아니었을지라도 봄에 새 잎이 돋아나지 않을 지라도 인생을 생각케한 그 나무는, 적어도 제게는 '아름다움' 을 깨치게 해주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치넝쿨지지대 사이로 활짝 핀 빨간 장미를 봤습니다. 한 번 피었다 지고 다시 꽃을 피운 것인지, 첫 개화인지 알 순 없지만, 그 장미를 보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대기만성형 같다는 생각에......

이미 화려하게 꽃을 피운 후, 가시와 잎만 남기고 있는 장미들 사이로 그동안 응축된 에너지로 뒤늦게나마 힘겹게 피어난 그 빨간 장미는 단연 돋보입니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 그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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