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ărturești Carusel (꺼르뚜레쉬띠 까루셀)
나는 대전인이다. 지인들이 대전에 올 때마다 반드시 데리고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성심당'이다. 성심당을 들르지 않으면 대전에 왔다고 할 수 없으니. 그럼, 부쿠레슈티에 오면 꼭 가야 할 곳이 어디일까. '인민궁전'을 꼽는 이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Cărturești Carusel (꺼르뚜레쉬띠 까루셀)'라는 서점을 추천하고 싶다.
사실 이 서점은 부쿠레슈티에 오기 전에 검색하면서, 꼭 가고 싶은 곳으로 '찜'해 두었던 곳이었다. 평소에도 서점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부쿠레슈티 여행객들이 찍은 사진엔 모두 이 서점이 있었으니까.
'Cărturești Carusel'은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예쁜 올드타운에 위치한다. 2015년에 문을 열었고, 'Cărturești'라는 대형 서점의 체인점이다. Cărtureşti는 2008년 최초의 서점을 열었고, 그 후 온라인 사업으로 확장했다. 지금까지 루마니아를 비롯해서 몰도바까지 체인점을 열고 있는데, 쇼핑몰에서 이 서점을 쉽게 볼 수 있다.
'Cărturești'가 무슨 뜻인지는, 루마니아어를 조금 배운 후에야 알 수 있었다. 'carte(까르떼)'가 '책'의 단수형 명사이고, 복수형이 'cărţi(꺼르취)'이다. 이 복수형 명사에 부쿠레슈티를 합해서, 'Cărturești(꺼르뚜쉬띠)'가 탄생한 것이다. 의역하자면, '부쿠레슈티의 도서들'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다.
'Cărturești' 서점 가운데에서, 루마니아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히는 'Cărturești Carusel'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곳을 왜 아름답다고 칭송하는지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정문을 여는 순간 깨닫게 된다.
186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20세기 초 부유한 은행가 크리소벨로니 (Chrissoveloni) 가문이 구입했고, 수십 년 동안 은행 본사로 사용되었다. (부쿠레슈티의 아름다운 건물은 은행인 경우가 많다.) 2차 세계 대전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이 건물은 1950년 공산주의 정권에 인수되어 잡화점으로 바뀌었지만, 재정난으로 결국 버려진다. 그리고 1980년대에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건물은 폐허가 되었다.
19990년대 초, 건물의 원래 소유주의 손자인 장 크리스소벨로니는 정부에게 이런 요청을 한다. 자신을 이 건물의 합법적 상속인으로 인정해 주는 동시에 반환해 달라고. 법적 다툼은 무려 20년이 넘게 이어졌고, (소송은 한국이나 유럽이나 참 지난한 싸움인가 보다.) 크리스소벨로니 가족은 2007년에 건물을 되찾는다.
건물을 되찾음과 동시에, 그는 100만 유로를 투자해서 건물을 대대적으로 손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손만 놓고 있던 정부보다 5,000배 낫다. 그리고 루마니아 최대 서점 체인인 Carturesti에 건물을 임대하고, 2015년 아름다운 'Cărturești Carusel'이 문을 열게 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이뤄져 있는데, 지하 1층과 1층은 음반, 잡화 등을 팔고, 2~3층은 책, 4층은 카페와 식당이다. 최근 몇 년동안 K-POP 음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 번역서도 가끔 볼 수 있는데, '한강' 작가의 책도 있다.
그리고 분기별로, 이상한 조형물을 설치하곤 한다. 정기적으로 설치하는 게 아니라서, 언제 무엇이 진열되어 있을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가격이 좀 센 편이라, 기념품을 여기에서 사라고 권하기는 좀 어렵다. 하지만 메모지, 책갈피 정도는 기념 삼아 구입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유럽에서는 역사적인 건물에 자리 잡은 서점을 꽤 많이 만날 수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책 내음을 맡으며, 우리나라 서점도 이런 풍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최첨단 건물, 최신식 기계와 함께 하는 서점도 멋지지만,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서점은 더 근사하게 보였으니까. 최근 우리나라에도 작은 서점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그 서점들이 오래오래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긴 역사를 안은 서점에서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