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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첼리나 Oct 14. 2024

한강 작가의 노벨상 문학상 수상

루마니아 학생들이 더 감격했던 소식

어린 시절, 과연 이것들을 살아생전 볼 수 있을까 싶었던 게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광경이 있다.     


첫째, 우리나라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 획득.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며 소원 성취. 둘째, 우리나라 피아니스트의 쇼팽 콩쿠르 그랑프리 입상. 이 엄청난 광경을, 2015년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보게 해주셨다. 셋째, 한국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님께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셨다.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 쇼팽 콩쿠르 그랑프리, 노벨 문학상. 어린 시절 나에겐 모두 꿈같은 이야기였는데, 하나씩 현실이 되는 풍경이 놀랍고 감격스럽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자, SNS에 그의 수상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글과 사진이 넘쳐났다. 특히 루마니아 학생들이 유난히 감격스러워했다. ‘한국어,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루마니아 학생들에게 한강 작가는, 이미 유명 인사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그를 꼽는 학생도 정말 많다. 그의 다양한 책이 루마니아어로 번역되었고, 루마니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은 영어 번역판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부쿠레슈티 대학교 외국어문학학부는 2021년부터 한국문학 독후감 쓰기 대회를 여는데, 2023년에 지정 도서로 『채식주의자』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는 한국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타 전공자도 참여할 수 있다. 매년 학생들이 제출하는 독후감은 생각보다 수준이 높아 놀라곤 하는데, 한강 작가의 작품은 유독 깊이 있는 독후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학생이 직접 만든 포스터 - 금손 예쁜이들이 넘쳐나는 부쿠레슈티 대학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유독 기뻤던 이유는, 그가 젊은 – 문단이 생각하는 나이 기준으로- 여성이고, 페미니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3 제주 사건과 같이 역사적 아픔을 다룬 작품을 주로 썼다는 데 있다. 

     

최근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린 사상은 ‘혐오’가 아닐까 싶다. ‘페미 묻었다’, 빨갱이, 친일파, 좌파, 우파 등과 같은 ‘혐오의 단어’를 숨 쉬는 내뱉는 세상이니까. 한국문학과 문화를 배우는 루마니아 학생들은 이런 현상에 늘 의문을 제기했고, 그들 앞에서 언제나 창피함에 고개를 (혼자) 숙이곤 했다. 

    

그 창피함이 극에 이르렀던 순간은, 바로 작년 우리 학교에서 열린 Summer School이었다. 정확한 행사명은 정확한 행사명은, 'CIVIS-KF e-School Consortium Summer School'이다.  이 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한 학기 동안 루마니아, 스웨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학교들이 온라인으로 함께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학교에서 모두 모여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그게 바로 서머스쿨이다. 2023년은 우리 학교가 주관이었기 때문에, 모두 루마니아로 모였다. 



이 행사에서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을 접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한국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생의 식견에 놀랐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금기시되는 페미니즘, 위안부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은 모습에 경탄했다. 각각 개별 세션까지 마련하면서 발표 · 토론할 정도로, 이 주제를 다룬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발표한 우리 학생


지금도 한국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폄하, 폄훼하는 이들이 꽤 있다. 김규나 작가는 자신의 SNS에서 한강 작가는 역사 왜곡자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많은 이들이 동조의 댓글을 남긴다. 


왜 이러세요.


루마니아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만도 못한 어른들, 진짜 못났다. 그들을 우리 학생들이 펼치는 뜨거운 워크숍, 세미나 현장에 갖다 놓으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하긴, 우리 학생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에서 세월호 관련 영상을 올렸더니,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입을 닫으라는 글을 남기는 이도 있었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감동하다가, 대한민국 현실에 좌절을 맛본 일주일이었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약자들의 목소리, 역사적 트라우마 그리고 전두환의 폭정을 수준 높은 소설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기쁘고 또 기쁘다.


요새 책을 너무 읽지 않아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인데, 이제라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공기처럼 가벼운 나와의 약속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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