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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첼리나 Sep 30. 2024

루마니아에서 한국 영화 보기 (1)

영화제에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만나다.

해외에서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하는 경험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는 여전히 조금 어렵다. 아주, 진짜로 성공한 작품이 아니면 한국 영화를 극장에 걸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에 지내는 동안 극장에서 상영한 한국 영화는 딱 두 편이었다.

     

봉준호의 <기생충>, 박찬욱 <헤어질 결심> 

<기생충>은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해 줘서 봤고,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멀티 플렉스 극장에서 감상했다. 


루마니아에 처음 도착한 해였던 2019년 영화계는 <기생충>으로 들썩였다. 그 열풍은 루마니아도 휩쓸었다. 주요 극장의 황금 시간에 상영되었고, 한국어과의 많은 학생이 <기생충>을 보고 감상평을 내게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루마니아 동료 교수님이 근사한 제안을 했다. 곧 부쿠레슈티에서 <Les Films de Cannes à Bucarest - 부쿠레슈티의 칸 영화>라는 영화제가 열리는데, <기생충>이 상영하니 함께 보자는 것. 2019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Les Films de Cannes à Bucarest’에 빠질 수 없지. 교수님이 직접 예매까지 해 주셨고, 상영 시간에 맞춰 극장에 도착했다. 


영화제 포스터

    

겉보기에 굉장히 허름한 극장이라 내부도 낡고 작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말 컸다. 한국 멀티 플렉스 극장의 가장 큰 상영관의 한 4배쯤 되는 크기였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영관은 자리 하나 찾기 어려웠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국인은 오직 나 하나였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인기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국뽕이 차오른다.


루마니아 영화관에서는 해외 영화를 더빙이 아닌 자막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외국인도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기생충> 역시 루마니아어 자막이 달렸고, 한국인인 나는 자막은 가뿐히 무시하고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더 흥미로웠던 건 루마니아인들의 반응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기생충>을 봤기 때문에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지 않을 수 있어 루마니아 관객의 리액션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영화를 안 봤으면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치지 못했을 게 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루마니아인과 한국인의 반응은 꽤 비슷했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루마니아인들의 반응이 훨씬 뜨거웠다. 한국인보다 크게 웃고, 크게 탄식하고, 때로는 박수까지 치는 모습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인만 알 수 있는 뉘앙스가 100% 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큰 극장에서 나만 웃었던 적도 있었으니. 외국 영화를 감상하는 내 모습이 저렇겠지. 번역된 자막으로는 감독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다짐은 언제나처럼 며칠 못 갔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영화가 끝났고,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봉준호 감독과 화상 GV를 진행한다는 것. 한국에서도 못 봤던 GV라니. 관객들의 술렁거림 속에서 봉준호 감독이 등장했다.     


감독님을 루마니아에서 뵙다니!


관객이 루마니아어로 질문하면 진행자가 한국어로 통역하고, 그걸 다시 루마니아어로 전하는 아주 지난한 과정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감독과 관객이 중간중간 영어로 직접 소통하기도 했다. 루마니아 능력자 한국인을 보며 부러웠고, 봉준호 감독의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관객이 나뿐이라는 사실에 괜히 뿌듯해졌다. GV는 무려 1시간 넘게 이어졌는데, 질문의 수준이 무척 높아서 마치 학술대회에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GV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봉준호 감독이 '나의 사랑 블라드 이바노프'를 애타게 찾던 순간이었다.


영화제 공식 페이스북 펌


블라디 이바노프가 누구기에 봉준호 감독의 사랑일까. 그가 누구냐고 묻자, 동료 교수님은 굉장히 유명한 루마니아 배우라고 말씀해 주셨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도 그가 루마니아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라 말하기도 했다. 그 많은 루마니아 배우 가운데 왜 하필 블라디 이바노프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영화 <설국열차>에 출연했다. 영화 내내 죽지도 않고 주인공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지독한 남자가, 루마니아 배우였다니.



더 재미있는 건, 봉준호 감독과 블라드 이바노프는 동갑이라고 한다. GV를 하기 전날까지도 부쿠레슈티에 있었고 영화제에도 참석했다는데, 괜히 아쉬웠다. 뭐, 옆에 있었어도 몰라봤을 가능성이 100%지만.     


넷플릭스 덕분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루마니아인들에게 한국 영화는 낯선 존재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나 찾아보는 장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반대로 우리도 루마니아 영화가 낯설다. ‘아는 루마니아 영화 하나만 말해 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과연 몇 명이나 대답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데.     


하지만, 루마니아와 한국 영화는 벌써 소통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에서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배우가 열연을 펼쳤고,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루마니아의 배우 블라디 이바노프가 동료이자 친구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저 내가, 아니 우리가 몰랐던 것일 뿐.


루마니아에 와서 매일매일 깨닫는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지. 그래서 매일 다짐한다. 여기에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곳을 가고,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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