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많이 닮은 그들
루마니아인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가 좋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츤데레’라고 하고 싶다. 별로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츤데레’라는 단어는 이제 한국에서 일상적인 표현이 됐지만, 일본의 인터넷 유행어에서 시작되었다. 새침하고 퉁명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일본어 ‘츤츤(つんつん)’과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데레데레(でれでれ)’가 합성된 단어가 바로 츤데레다.
이 단어는 ‘처음에는 퉁명스럽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열고 살갑게 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차갑고 퉁명스러운 모습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고 한다.
루마니아인을 만나고 세 번 놀랐다.
우리가 상상하는 유럽 사람은 보통 이렇다. 눈이 마주치면 생긋 웃어 보이거나, 가벼운 묵례와 함께 ‘hello’라고 인사를 건넨다. 도움을 주는 데 거리낌이 없다. 낯선 사람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와 아주 다르다.
그런데 말입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눈이 마주쳐도 웃지 않았다. 슬쩍 눈을 피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지나치다가 만나도 인사하는 법이 없다. 한 마디로 무뚝뚝하다. 이방인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처음엔 주눅도 들었고, 외롭기도 했다. 내가 외국인이라 인사 안 해주나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전이 시작된다.
루마니아의 마트에서 채소와 과일을 사면, 직접 봉투에 담아 무게를 재서 가격표를 스스로 붙여야 한다. 처음엔 이 방식이 너무 어려웠다. 사과도 종류가 여러 개인데, 도대체 무슨 버튼을 눌러야 맞는지 알 수 없었으니. 기계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언제나 루마니아인들이 다가와서 기계를 만져줬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다른 나라처럼, ‘도와줄까요?’, ‘도움이 필요하니?’ 따위는 묻지 않는다. 그저 불쑥 곁에 다가와서 말없이 버튼을 꾹꾹 누르고 인쇄된 가격표를 봉투에 척, 하고 붙여주고는 말없이 사라진다.
이것도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트 입구에서 카트를 하나 집어 들어 가는데, 직원 할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팔을 흔들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카트를 들고 가면 안 되나?’, ‘내가 뭘 잘못했나?’ 잔뜩 주눅이 든 채로 그에게 다가가자, 다른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나의 체구와 딱 맞는 크기의 카트였다. 처음 집은 카트보다 이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루마니아인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과한 미소와 친절은 없었지만, 내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거침없이 내미는 사람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익숙해질수록, 츤데레에 적응될수록, 루마니아와 루마니아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가 갈 층수를 누른 뒤, 나는 괜스레 허공만 응시했다. 닫힘 버튼을 누르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외국 사람들은 누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그런데, 그런데! 루마니아 사람이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닌가!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 루마니아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마음 편히 그 버튼을 꾹꾹 눌렀다고 한다. 하하하.
루마니아인을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다. 우리나라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다른 유럽인에 비해서 빠른 편이다. 음식도 빨리 나오는 편이고, 서비스도 빠르다. 택배도 아주 빠를 땐 당일배송이 된다. 마트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2시간 이내에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어,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인터넷이 고장나면 그날 수리하러 기사분이 방문한다.
물론 행정 시스템은 아주, 정말, 진짜, 너무, 말도 안 되게 느리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다른 유럽에 비해 빠른 것이지 우리나라에 비하면 느리긴 느리다.
루마니아에 여행을 가면, 루마니아인들의 무뚝뚝한 겉모습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을 조금만 겪어 보면, 그들과 아주 잠시만 부대끼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지 쉽게 알게 된다. 그러니 루마니아에서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주저 말고 주변을 둘러보길. 츤데레 매력이 넘치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