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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산팡팡 Sep 19. 2024

정돈된 집에서 살고파

월요일 아침.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떠나면 드디어 나도 해방이다. 아침 설거지를 하지 않고 그냥 두는 건 오늘 하루 마냥 늘어져 보겠다고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며 약간 망한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하는 행동이다.


이불을 탁탁 털고 화장실 세제를 칙칙 뿌리면서 청소를 시작한다.


"이 노무 남자들의 흔적, 아주 지겹다 지겨워."


찌린내는 진짜 질색팔색이다. 남자들에게 앉아서 볼일 보라고 할까 하다가도 여자 한명이 참는게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정신건강에 편하다고 생각해서 아직은 참는 중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맨 발로 마른 타일을 밟을 때의 상쾌함도 좋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청소기를 든다. 저쪽 구석에 쳐 박혀 있는 로봇 청소기는 무슨 인테리어 장식품인 듯 짱박혀 있다. 몇 년 전, 내가 하우스키핑 정기서비스를 이용할 여력은 되지 않으니 똑똑한 가전 이모님들이라도 모셔야 겠다고 주장하며 턱 하고 샀다. 회사 복지비는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써야 한다는 강력한 신념으로 복지비를 탈탈 털어서 샀던 물건이다. 지금 거의 쓰지는 않지만 아이가 로봇관련 책을 읽으면서 "우리집에 로봇 있잖아, 로봇청소기!" 라고 할 때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청소기의 동그란 모양 때문인지 모나지 않아 볼 때마다 화가나지는 않는다. 아마 남편이 사겠다고 하고 안 쓰고 놀리고 있으면 보는 내내 입에서 욕을 내뱉었겠지. 이래서 사람이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새로운 로봇청소기는 성능이 무척 좋다고 하던데  써 본 적이 없으니... 어쨋든 핸디형 청소기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구석구석 돌려야 말끔히 청소하는 느낌이 든다.


평온한 토요일 오전 모르는 전화가 온다. 집주인이 집을 매도하겠다고 부동산에 내 놓았단다.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사모님~~~ 한 시간 뒤에 잠깐 집을 보러 가도 될까요?"

"아. 네. 열 두시 쯤 오시겠어요. 조금 시간이 필요해서요."


처음 전세집을 구할 때부터 부동산 사장님들은 어린 나에게도 꼭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손사레를 치며 사모님이 아니라고 했다. 근데 이게 나만 불러주는 특별한 호칭이 아니라 그냥 청소년들에게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부동산 시장에서 고객을 부르는 대명사 정도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듣기 불편한 마음은 아예 사라졌다. 내 집은 아니지만 누군가 집에 온다고 하니 그냥 있는 데로 보여주기는 좀 아닌 것 같아서 남편에게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도무지 집을 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나가면 되는데 남편은 꼭 한마디 거든다. 갑자기 스팀이 올라오는데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도 안 남아서 입을 꾹 닫고 목표에 충실하기로 한다.


"우리 집 좀 지저분 하잖아. 어차피 내 집도 아니고 집 구조나 보겠지."

"Hㅏ... Aㅏ... "

"그냥 빨리 나가. 내가 전화하면 들어와."


진심 빠르게 집을 치운다. 분리수거를 정리하고 종량제 봉투를 단단히 묶는다. 발에 밟히는 게 없고, 문이 열린 곳이 없게 한다. 이불 속에 아이들 잠옷도 구겨 넣는다. 청결한 집과 정돈된 집은 좀 거리가 있다. 먼지 한 톨 없고 곰팡이 하나 핀 곳이 없는 집과 물건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지 않은 집은 완전히 다른 결이다. 겨우 내 지나고 나니  베란다에 까만 곰팡이가 살짝 올라왔다. 추워서 건조기를 돌릴 때만 창문을 살짝 열어 두었더니 그 사이 어김없이 올라온 것이다. '너는 나랑은 다르구나. 한결같구나. 게으르지 않구나.'  물건이 기울지 않고 제자리에 들어가 있는 집. 발바닥에 물건이 치이지 않는 집. 퀘퀘한 군내가 나지 않는 집.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살만한 정돈이 되어 있는 집이다.


벨이 울린다. 집에 들어오면서 창문 넘어 조망부터 살펴본다. 집 청소 상태는 보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실례합니다. 잠깐 볼게요."

"집 깔끔하죠? 사모님이 제 집처럼 사셨어요."

"윗 집은 조용한가요?"

"아. 네."

"층고도 높고 탁 트여서 시원하네요. 잘 봤습니다."


정돈된 집에서 산다는 것은 생활 태도와 정신적 여유를 반영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회사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는 좀 처럼 집을 치우기 힘들다. 당장 입을 옷을 빨고 청소기는 겨우 돌리더라도 어느 새 데굴데굴 먼지가 굴러다니는 집이 된다. 택배 상자를 쌓아두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하기 싫은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는 하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하니까 외면하는 것이다. 숨은 쉬고 살아지고 병에 걸리지도 않지만 집 구석은 너저분하고 주방 서랍장은 정신 없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이 집이 정돈이 안되면 심리적으로 더 정신없고 화가 나기도 한다. 퇴근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이 어지럽혀 놓은 집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실 아이들이 어느 한 날 집을 어질러 놓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날 내 눈에 딱 걸린 것이다. 깔끔하고 정돈된 집에 산다는 것은 마음 한 구석에 여유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할 때 반드시 집을 정리하고 나간다. 밖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심한 집 상태를 보면 화가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현관문을 닫기 전 뒤를 한번 돌아본다.


'정돈된 집에 살아요.'

'마음을 늘 정돈하고 살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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