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ress

내가 나인 순간, 여황제의 귀환

by 웬디


2025년 11월 20일, 전남 보성.

드넓은 녹차밭 한 가운데 자리잡은 영천 마을회관.




고요한 한옥 대청마루 위로

싱잉볼의 맑은 울림이 번져갔다.

햇살과 바람이 잠든 늦오후,

웬디의 ‘힐링아트 프로그램’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이고, 아가씨.
나는 몬혀.
이런 건 해본 적도 없응게.”



처음엔 손사래 치던 영미 할머니는

웬디의 조용한 격려에 이끌려

도화지 위에 난생 처음

자신만의 꽃을 피워냈다.


삐뚤빼뚤한 붓질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말 못한 마음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어머님, 좋아하는 색이 뭐에요?"


"남색...."


"그렇구나. 이유가 있으세요?"


"음..풀물이 드니께. 남색이 좋아,"


오랜만이 그리는 그림이 어렵다면서도

재미있었는지 영미 할머니는 뽀얗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치 아이처럼 그림에 집중하셨다.


'까마귀 다리에는 남색, 몸에는 붉은색...'


그 그림은 할머니의 마음을 그리고 있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웬디는 마음의 색깔을 통해 고여있는 마음을 금새 읽어냈다.


보성 녹차 마을.

평생을 차밭에서 일하신 어머님들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투르셨다.


그래서 웬디는, 어려운 말과 글대신

그림과 색으로 마음을 풀어내는 일을 했다.


대청마루는

서툰 색채와 오래된 이야기로

서서히 가득 차올랐다.


"어머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색하실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에너지가 정말 가득하세요."


웬디는 그림을 보며 그네들 마음의 지도를 하나씩 그려나갔다.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나직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른다.

그저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이

둑을 넘고 흘러나온 것이다.


웬디는 알았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진짜 첫걸음이라는 걸.



“근데… 아가씨.”



뒤풀이 자리.

찐 감자와 갓 낳은 계란으로 만든 음식이 오가는 소담한 밤.


낮에 그린 그림을

품에 꼭 안은 할머니가

웬디에게 다가왔다.


“아까 그림 그릴 때

주책스레 자식 생각이 났는지 눈물이 났어.”


잠시 늦은 숨과 함께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도 좀 싱숭생숭허네.

내 맘이 지금 어떤 건지,

딱 꼬집어 말해줄 수 있어?”


그 순간,

웬디의 진짜 직업이 시작되었다.


씨익—


웬디가 슬쩍 미소 지으며

가방을 열었다.


타로?

아니다.

그건 이제 신탁에 더 가까운 무언가였다.


왕과 기사, 칼과 컵 대신

감정의 파동으로 구성된

Twin Flame 《트윈플레임 카드덱》.


웬디는 카드를 펼치기 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끝이 공기 중의 미세한 진동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마음.


깊은 남색따뜻한 붉은색이 뒤섞인 색감.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쌓인 무게와,

그 안에서 피어난 순수한 기쁨의 에너지.


하늘에 펼쳐진 은색 달빛 아래,

이질적인 색의 빛이 웬디의 눈동자를 스쳤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할머니에게 필요한 신탁'이 무엇인지 알았다.


웬디는 천천히, 하나의 카드를 뒤집었다.


Timeless Love



“Timeless Love” 웬디가 카드의 글자를 나직이 읽었다.

웬디는 싱긋 웃었다.


“어머님 마음은 말이죠—

돌고 돌아,

어릴적의 마음과 만나는 순간에 왔어요."


웬디의 목소리는 마치 바람에 공명하는듯 했다.


"이 카드는 제 카드 중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를 의미해요.

스스로를 통합하고 수용하는, 가장 찬란한 완성의 단계에 오셨다는 뜻이에요."


"가장 ‘어머님다운 자리’에 오르셨기 때문에,

마음이 기뻐서, 행복해서 눈물이 난거랍니다


할머니는

조금 놀란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이고 참말로,

아직도 내 마음이

그렇게 여린 아기 같네.”


주변에서 박수와 감탄이 터졌다.


“너무 용해!”


"내년에 신년 꽃점보러 와줘요!"


누군가 외쳤다.


그리하여,

‘홍익 타로' '웬디 신녀님’이라는 별명은

이렇게 탄생했다.


밤이 깊어졌다.

달빛이 한옥 지붕 위로 걸어올랐다.


웬디는 잠깐

조용히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 한 줄기.

그 아주 잠깐의 틈—


구름 사이로

황금빛 섬 하나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


정확히,

잊고있던 빛이 기억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6개월 전.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


웬디의 숨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감정이 ㅡ 단순한 마음의 움직임이 아닌,

미래를 읽어내는 언어가 된 순간.


그날 이후

웬디는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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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년만입니다.

다시 매주 연재 시작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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