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The Pain That Pointed North
사실 이 만남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 만남이 있기 전, 나는 한번 고요하게 죽었다.
모든 것이 소진되어
텅 빈 껍데기만 남은 듯한 시간이었다.
숨 막히는 직장의 분위기 속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허덕였고,
위태롭던 집은 결국 풍비박산이 났다.
모든게 눈 앞을 가리던 시기.
행복하게 지내
오래된 연인과도 헤어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뜨거운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어느 날, 예고 없이ㅡ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안개가 걷히고,
선명한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선하고 강한,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온도는 물결같았다.
지독했던 여름의 열기가 가시고,
서늘하고 청량한 가을의 기운이 감돌았다.
문득, 먼지가 쌓인 일기장을 펼쳤다.
스스로에게 늘 엄격했던 나는
나를 항상 비판적으로 보았다.
내가 느끼는 나는 좀 더 노력해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매사에, 뾰족한 무거움이 있었다.
세상은 때로는 가볍기 그지 없어,
나는 그 가운데 깊은 골짜기 밑으로 한 없이 떨어졌다.
.
.
.
.
펜을 들어, 그날 일기장 위에
서투르게 써 내려간 시간들은
나에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며
잊었던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아, 이 아이는..
과거의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구나.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서 벗어나
처음 얻은 작은 나의 공간.
위태롭던 엄마를
기어코 ㅡ
독립시켜 드렸던 그 악착같음까지도.
까마득한 어둠이 현재의 빛과 교차했다.
모든 것이 재가 된 것 같던 그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오롯이 내 두 발과 두 손으로 만들어낸
삶의 공간에서
나를 세웠다는 깨달음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처음으로,
아주 처음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래. 너,
참 멋있게 살았다.'
그렇게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을 때
유튜브 타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메시지였지만 -
이상하게 계속 같은 메세지가 귀에 맴돌았다.
"밖으로 나가세요. 안 하던 것을 시도해보세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새로운 환경으로 가세요."
"...소울메이트를 만날 수 있어요."
반신반의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자기확장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 는
마음 속 깊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홀린 듯이 찾아간 간 곳에서 펼쳐진
음악과 사유가 공존하는 조금은 낯설고 신기한 공간.
그리고 그날, 그를 만났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날의 자세한 대화는 시간이 흘러 희미해졌지만
기묘한 순간의 느낌은 깊게 남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가 던지는 말들은
이상하게도 내 안의 가장 깊은 곳,
나조차 잊고 있었거나 어쩌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 후로 나는 그를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상상도 하지 못했던 흙언덕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조각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어떤 것에 대한 순수한 결정체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그가 내게 건넨 선물은
여전히 내 안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가을의 문턱에서 느꼈던
복잡하고도 솔직한 감정들을 담은 일기.
그는 그것을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저 그에게
고마워, 태연한 척 말했다.
ㅡ사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소중하다는 마음에,
깊이 울렁거리는 마음을 갈무리하기 어려웠다.
텅 비어 있던 내 마음의 한구석이
온전히 채워지는
최초의 무언가.
... 그래서였을까.
그는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고
예전의 나라면 관계를 시작할 리가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가갔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어색한 부분까지도 포용하고자 노력했다.
그건 ,
아마 그 '빛나는 것'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혹은 예측 불가능한 파도가 불현듯 몰아칠 때마다
어느 순간,
혼자만 바라보고 있는 빛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저 편안함을 찾고 있는 스스로를 보았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지만.. 그를 만난 덕분에 나는,
단단했던 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새로운 감각을 깨닫고
낯설었던 기술을 접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
나만의 사업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무엇보다 그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
.
.
.
.
.
타로 카드 위에 놓인 "Choose a New Direction"이라는 메세지는
그렇기에 더 미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이 관계를 정리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잠시 숨을 고르며 카드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보았다.
어쩌면 이건 내가 그를 통해 보았던
나조차 잊고 있던 나 자신
내가 추구하는 그 바름을 믿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는 아닐까?
그래, 어쩌면.
그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를 통해 발견한 나의 가치와 가능성.
그것을 향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라는 뜻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카드들의 메시지도
조금 다르게 읽혔다.
느리지만 다가온다는 저 동전을 든 기사 카드는
어쩌면 빛나는 조각을 품은 또 다른 인연일 수도
혹은
그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나의 더 단단해진 발걸음일 수도 있겠다.
Big, Happy Change!
Trust
Be Assertive!
엔젤 카드의 다정한 속삭임 역시
아픔을 넘어 내가 발견한 진실을 믿고
나아가라는 응원처럼 들렸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마음의 복잡함이 단번에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처음 발견하게 해준 사람을 뒤로하고
나아간다는 것
그 여정의 구체적인 모습은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얼마 전 담이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떻게든 한번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녀의 예언 때문일까
어쩐지 이 새로운 방향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예감이 등골을 스쳤다
피하고 싶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시 한번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벨벳 천 위의 카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명해진 메시지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간절한 마음으로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자,
어쩐지 동전을 든 기사 카드의 토끼가 나를 향해 살짝 윙크하는 것 같았다.
'네 마음 복잡한 거 알아. 하지만 결국 마주해야 할 일은 다가오고 있어.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설령 다시 마주하게 되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었다.
방향은 정해졌다.
이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을 정하는 건, 나에게 있다.
Ten of Swords:
The pain That ponted No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