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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윤강사 Sep 13. 2024

그분이 오셨다.

“신병이야, 신병. 신이 왔어”

“신병이야, 신병.”


신병이라고 말한다.

귀신같은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데내가 정말 신병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확인해 보자.


“아이고, 머리야. 신이 강한 사람이 오니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네. 신이 다 찼어. 보살님은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됐어. 돈 치고, 주변에 사람들 다 치고, 이제 마지막으로 몸을 치는 거야. 평소 꿈도 기가 막히게 잘 맞고, 사람 보면 심리나 생각 같은 거 다 알 것 같고 그렇지?”


같은 말을 한다.

또 다시 신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거울로 지금 내 모습을 봐도 사람 몰골이 아닌 것이 어디를 가나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 삼 세 판이란 말이 있듯이 한 번 더 확인을 해야겠다.


“보살님은 어릴 때부터 신이 와 계셔요. 그래서 인생 풍파가 많았을 거예요.


부모하고 인연이 짧고, 공부를 해서 선생님 소리 듣고 살아야 하는 팔자인데 혼자 돈 벌어 공부하는 게 어디 쉽나?


더군다나 타고난 심성이 착해서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고 참아내니 마음속에 한도 많아.


마치 닭이 죽기 바로 직전에 다리를 쫙 펴는 것처럼 지금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가고 힘이 없죠?


힘이 없어서 잠이라도 자려고 하면 꿈속이 어지러워서 다음 날 찝찝하고, 가위도 자주 눌렸을 거예요.


점점 밖에 나가기도 싫고 집에서만 틀어박혀 오만 걱정 붙잡고 있겠네요.”


그렇다.

온몸이 이렇게 아픈데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증상은 심각한데 말이다.


1.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어렵다. 두통이 심하다.

2. 눈앞이 뿌옇고, 시야가 종종 흐려진다.

3. 침대에서 일어나면 심박이 150.160 숨이 가쁘다.

4. 3개월간 열이 오르락 내리락한다.

5. 빈뇨가 심하다.

6. 호흡곤란이 자주 와서 응급실 출입이 잦다.

7. 가슴이 뻐근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8. 땀, 눈물과 같은 비정상적인 신체 반응이 많다.

9. 자의적인 배변이 안된다.

10. 발바닥부터 다리, 허리, 몸이 점점 굳어 간다.

11. 심한 통증으로 누워서만 지낸다.

12. 눈 시림과 청각이 예민해졌다.

13. 전신 피부에 멍이 쉽게 들고, 가려움증이 있다.

14. 피부 전체에 진물이 자주 발생한다.

15. 상처 회복이 잘 안되고, 피가 지속적으로 난다.

16. 기억력의 문제와 의식 없는 행동들이  발생한다.

17. 수면장애와 가위눌림으로 숙면이 어렵다.

18. 심한 월경통과 한 달에 두 번씩 생리를 한다.   


수많은 병명만 추측할 뿐 정확한 진단이나 어떠한 치료법도 없다. 나는 곧 죽을 것 같이 너무 아프고 힘든데도 약은 부작용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병원만 50여 군데를 다니며 낫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날부터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몸이 회복될 수 있을까?

회복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데, 왜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 살았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진짜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사실, 무속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늘 촉과 감이 좋았다. 교육이나 컨설팅을 할 때 취업 합격 여부나 조직의 문제적 이슈를 만들 것 같은 사람들을 오로지 내 직감만으로 기가 막히게 구별해 내곤 했다.


물론 내 인생에서도 로드맵을 설정하는 데 있어 직감은 좋은 도구가 되어 왔다. 하지만 건강 악화로 현실이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내 머릿속에는 그 어떤 미래도 그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거라 생각했던 막연한 기대는 오히려 절망으로 바뀌고 1년을 참고 참다, 결국 보이지 않는 무속의 힘을 빌어 보려 직접 찾아다니게 되었다.


“선생님, 그런데 신이 오면 촉이 더 좋아야 하는데 왜 제 미래는 보이지 않는 걸까요?"


“보살님, 지금은 신이 좌정 되지 않고 보살님 앞을 가리고 있어서 눈앞이 뿌옇게 되는 현상도 있고, 막막한 불안감만 생길 거예요. 제사를 지내서 신을 좌정시켜 드리면 몸도 낫고, 보살님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도와주실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좌정이 된다는 것은 결국 제가 이제 무당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농사만 짓던 시절이기 때문에 몸을 다치게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점을 보는 무당이 되었지만 요즘은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직업군이 다양해서 충분히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어요. 글을 쓰거나 머리를 쓰는 창의적인 일들은 몸이 조금 불편하고, 아파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아.. 그럼 무당은 아니고, 제사만 지내면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굿이 아니고.. 명절에 지내는 제사 같은 거요?”


“그렇죠. 제사를 지내면 바로 좋아지니까 일단 집에 가서 상의를 해 보세요. 확실한 건 가장 먼저 꿈자리부터 편안해질 겁니다.”


나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300만 원을 드리고, 계룡산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이미 돈을 드렸기 때문에 후회를 한다 해도 되돌릴 수가 없는데,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아질까?

아니면, 이걸 시작으로 점점 무속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게 미신을 믿는다고 비아냥거렸다. 나이가 90이 다 되어 가는 할머니께서는 달나라 가는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며 호통을 치신다.


그리고는 마음이 약해지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미신이라며 지금껏 똑똑한 척 다하더니 결국 헛똑똑이라 한다.


또, 고모는 서울에 있는 병원들을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서든 답을 찾을 수 있다며 알음알음 최선의 인맥을 도와주겠다고 말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안다.

왠지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 집안은 빌었던 집안이기 때문이다.


증조할머니의 장례식 이후 절에서 49제를 지낼 때 하얀 옷을 입은 여성분의 춤사위를 보며 참으로 희한하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여쭈어 보니 무당이셨기 때문에 퇴송을 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그때의 그 광경은 무속에 대한 지금 나의 생각에 신뢰를 더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시아버님께서 종종 집안 어르신들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과거 선조 중에 축지법을 쓰는 도사님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물 떠놓고 빌어주는 할머님이 계셨다고 했다.


심지어 시아버님, 시작은아버님, 시어머님도 목사님이시다. 그래서 집안 내력으로 보면 종교적 뿌리가 깊은 집안이다.



정작 나는 종교가 없다. 굴곡진 삶에서도 억척같이 살아 냈을 뿐, 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또 간절히 기도를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3단 제사상을 차리고 산왕대신께 빌고 있다.


“산왕대신. 산왕대신. 산왕대신. 산왕대신..”


북소리에 맞춰 법사님의 기도문이 시작이 되고, 1시간이 지날 때쯤 나는 짚 인형을 양손으로 잡고 앉아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목소리의 기도 소리가 들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내 영혼이 붕 뜬 기분으로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기도문을 읊는 소리가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어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감정도 전혀 동요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눈물을 흘리며 울 수가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내 손에 잡고 있던 짚 인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속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대감님 좌정하셔야 되니 앞에서 버티지 말고 자리를 비켜주자. 선생 어깨에 올라타고 세상 구경하고 원 지고, 한 지는 거 다 들어줄 테니까 우리 보살 이제 그만 힘들게 하고 내려오자.”


얼르고 달래는 이 말의 속도에 맞춰 내 양팔에서는 혈관을 타고 빠져 나가는 힘과 버티는 힘의 에너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짚 인형으로 내 안에서 무언인가가 빠져나감을 느낄 때 두 눈을 떠서 상 위의 초를 보았다.


10개의 초는 문이 닫힌 그 방에서 하염없이 흔들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보살님, 잘 마무리가 되었어요.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대감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오늘은 집에 가서 모처럼 편히 쉬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차에 탔다. 솔직히 말해 제사와 무속신앙에 대해서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끊임없이 갖고 있었는데 오늘의 경험은 그 의구심을 한 번에 씻겨 주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


퇴마라고 정확히 말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대감님께서 좌정을 하기 위해 몸속에서 빼내려고 했던 그 과정은 퇴마였던 것 같다.


무속인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그 조상은 전쟁터에서 화염병에 맞아 돌아가신 학도병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결혼도 못하고 한이 많아서 억울한 감정이 나와 동기화가 되어 끌어들이게 되었고, 나를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은 것이라 했다. 그분이 내 몸에서 나가서인지 나는 한껏 차분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안정됨을 스스로가 느끼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자꾸 궁금해하는 남편에게 학도병 이야기만 살짝 해주었는데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평소 내가 이유 없이 불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비상 탈출구를 찾거나, 혹시나 내가 죽으면 화장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것들을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서로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젖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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