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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먹이

나의 구멍을 메꾸기 위해 앗아간 수많은 숨결

by 희야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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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허기짐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몸이 허기진 것인지, 마음이 허기진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나에게 흡수어 곧 나를 이루는 것.
나의 몸과 마음을 채우는 것.
나의 소중한 양분이 되는 것.

나의 먹이는 무엇일까요?




01

허기짐이 느껴진다. 또 무언가를 섭취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물고기는 허기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매일같이 먹이를 찾아 나선다. 먹이를 구하는 일에 일생을 다 바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날의 연속일지도 몰라.


허기짐은 끝이 없다. 두둑이 채우고 돌려보내 봐도 자꾸만 나를 찾아온다. 한 번 채운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채워야 한다. 채우고, 비워지고, 또 채우고, 비워낸다. 이것의 반복이다. 아무리 채워도 끊임없이 비워지는 무한의 굴레. 삶은 유한한데, 우리의 허기짐은 무한하다. 우리는 허기짐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다. 이토록 무력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허기짐을 채우는 법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먹으면 된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 무언가에는 우리 모두가 속해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존재를 먹어야 한다. 필연적으로 살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던, 만질 수 없는 것이든. 그러지 못하면 숨 쉬는 것마저 위태로워지고 만다. 반드시 채워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해하고, 파괴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쓴다. 먹고 먹히는 삶. 먹히지 않기 위한 투쟁의 연속. 나의, 그들의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가련한 생을 마감하고, 누군가는 그 명줄을 넘겨받아 생을 이어간다. 살아남은 자는 강했고, 산다는 것은 파렴치한 것이었다.



02

나의 먹이는 무엇일까. 어떤 물고기는 자기보다 작고 약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또 어떤 물고기는 작은 불가사리를 먹기도 한다. 나는 해초를 먹는다. 바닷속에서 자라나는 녹색 식물, 햇빛을 받아 바다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그것. 나는 주로 그것을 먹는다. 이상한 껍질을 가져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몸. 그래서 나는 그것을 통해 햇빛을 채운다. 그것은 내 몸에도 숨을 불어넣어 준다. 매일 신선한 해초를 뜯어 먹고, 해초가 가진 모든 것이 나에게 스며든다. 해초의 영양분, 햇빛, 숨결, 파릇한 녹색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기운까지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주고, 그것들이 나를 살게 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되고 만다. 나에게 전부 흡수되어 곧 나를 이루게 되는 것. 나의 몸과 마음을 채우는 것. 나의 소중한 양분이 되는 것. 먹이란 그런 것이다.



03

가끔은 유독 강한 허기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강한 허기짐은, 예고 없이 몰아치는 거센 파도처럼 순식간에 내 의식을 집어삼킨다. 나의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강력하게 허기질 수 있을까. 대체 어디에 구멍이 난 것일까. 보이지 않는 구멍은 감히 그 넓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게 한다. 그 구멍이 더욱 커져 나를 집어삼켜 버릴 듯한 날, 그런 날은 나 역시도 무자비한 살생을 저지르게 된다. 몰아치는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구멍이 뚫린 몸에 무엇이든 가득 채워 넣어 본다. 종류를 막론하고 내 몸의 몇 배나 되는 양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그리고 이런 물고기는 나뿐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이 바다에는 구멍 난 물고기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런 물고기는 자신의 구멍을 감추기 위해 다른 물고기의 몸에 몰래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몸에 구멍이 생긴 물고기는 또 다른 물고기를 찾아 구멍을 내버렸다. 그들은 자신의 구멍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 남의 몸에 더 큰 구멍을 뚫곤 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그 구멍에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문제는, 이런 물고기들이 늘어날수록 고귀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밑 빠진 독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물을 들이붓고, 그 양만큼 끊어지는 숨결도 늘어갔다. 독을 채우려면 구멍을 메꿔야 하는데, 가련한 것들의 명줄을 약탈하는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섭식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들에 대한 존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오늘은 유독 강한 허기짐이 몰려온다. 이런 나의 허기짐이 무섭고, 겁이 난다. 나는 아직 구멍을 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한 허기짐은 누군가를 해하고, 나 자신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기짐을 채우는 법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먹으면 된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 무언가에는 우리 모두가 속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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