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형상을 한 물고기들과 다양한 형태를 이룬 삶들
'나는 부레가 없는 물고기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평범하지 '않은' 걸까요, 평범하지 '못한' 걸까요? 나는 특별한 물고기인 걸까요? 아니면, 비정상인 물고기일 뿐인 걸까요.
여러 형상을 한 물고기들과 다양한 형태를 이룬 삶들이 계속해서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짓수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 같은 삶을 가진 물고기도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런 물고기의 삶도 언젠가는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요? 한 가지 형태, 두 가지 형태, 세 가지 형태, 그 모든 형태의 삶들이….'
01
"어머, 쟤는 부레가 없나 봐."
수중에서 몸이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절해 주는 공기주머니, 부레. 그렇다. 나는 부레가 없다.
흔하지는 않지만, 부레가 없는 물고기가 나 말고도 몇몇 있다. 대신 그들은 헤엄 실력이 출중하다. 나는 헤엄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움직이는 방법이 있다. 몸에 힘을 꽉 줬다 확 풀었다 하며, 그 리듬에 맞추어 짧은 지느러미를 거듭 휘적거린다. 이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단지 속도가 느릴 뿐.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가볍게 표현해 보지만, 느리다는 건 이 바다에서 아주 큰 단점이다.
바다의 물결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리고, 그런 물결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들이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고, 어느 정도 자라나면 비슷한 물고기들을 만나 무리를 이룬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고, 먹이를 먹고 나면 다시 열심히 헤엄친다. 잠을 자는 시간을 빼면, 살아있는 시간 중 약 70%의 시간을 헤엄치는 데 할애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오직 하나뿐인 삶을 헤엄을 치는 행위에 다 바치는 것일까. 나의 목적은 뚜렷하다. 이 바다에서 가장 빛나는 고래가 되는 것.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은가.
이 바다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푸르고, 잔잔하고, 마치 모든 것을 품을 듯이 온화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물속에 몸을 담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곳은 모든 생명체가 삶이라는 것을 향유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곳이다. 우리는 매일 온 힘을 다해 헤엄친다. 헤엄치고 싶지 않아도, 몸이 부질 것 같아도, 끊임없이 열렬히 헤엄쳐야 한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견딜만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내가 왜 헤엄을 쳐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다. 삶의 목적도 없이,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어떤 원동력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때. 그럴 때는 도저히 움직일 힘이 나지 않는다. 왜 움직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쓸모도 없는 나에게 도대체 왜 숨을 불어넣어 준 건가요?'
생각을 했다. 수도 없이 생각하고, 생각 위에 또 생각을 쌓고, 내가 쌓은 생각을 타고 올라가면 아마 저 우주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고뇌의 시간을 보낸 뒤, 한 가지 결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래가 되자.'
미친 짓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생명체가 되겠다니. 다른 물고기가 들으면 비웃을 거다. 괜찮다. 어차피 이런 이야기를 할 물고기도 없다. 하필 왜 고래인가. 고래는 내가 태어나서 본 중 가장 완벽한 생명체였고, 나와 가장 정반대에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저렇게 거대하고, 누구보다 강하고, 몰아치는 파도보다도 빠른, 아름답게 빛나는 고래의 삶은 어떤지. 마지못해 사는 내가 절대 느낄 수 없는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 그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만일 고래가 되고 나서도 그대로면 어쩌지?
02
하얀 산호초가 보인다. 알록달록한 산호초를 만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새하얀 것을 만나다니. 나와 색이 비슷하니 몸을 숨기기엔 딱이다. 게다가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하얀 산호초의 숲이라, 오늘은 운이 좋다. 꿈틀꿈틀- 조심스레 산호초 사이로 몸을 숨긴다. 까끌까끌한 산호초의 감촉이 나에게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살포시 몸을 기대본다. 어, 이건 산호초의 살갗이 아닌데. 이상한 감촉이 느껴진다.
으악! 누구세요?
수중을 빼곡히 채운 산호들 사이로, 아주 작은 물고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색이 옅고 푸른 빛을 띠고 있어, 이게 물인지 물고기인지 영 구분이 안 된다. 잘 보아야 보인다. 작고 흐린, 연약한 존재. 그런 물고기가 나를 매섭게 흘겨보고 있다.
어.. 저는 그냥 잠시 쉬러 온 물고기예요,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조용히 쉬다 가주시면 고맙겠어요. 여기에 아기가 있어서요. 아기 아빠가 먹이를 구하러 나가서, 지금 우리의 보호막은 이 산호초뿐이에요.
그녀의 사나운 눈초리와 달리, 그 안에 숨은 눈동자가 애처롭게 말하고 있다. 소중한 보물을 지키는 중이니,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그런 물고기 뒤로 더욱더 작은, 공기 방울인지 물고기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엄마 물고기가 재빨리 몸을 돌려 그것을 가려버린다. 천진난만한 아기 물고기 덕에, 엄마 물고기는 한껏 경계 태세를 높인다. 엄마 물고기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내 몸을 위, 아래로 훑어본다. 그러고는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난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조용히 쉬다 갈게요.
이런 반응은 익숙하다. 내 외형이 호의적이진 않지. 오랜 세월을 혼자 고립되게 할 정도이니. 심지어 잘 잡아먹히지도 않지. 먹이로서도 별로인 걸까. 그런 면에서 보면 꽤 위력이 있을지도. 아무튼, 이런 반응은 이제 나에게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를 만난 것조차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작고 흐린, 연약한 존재. 그들이 편하게 쉬기를 바란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내 몸 하나만큼의 간격을 두고 비늘을 삐쭉 세우고 서 있는 엄마 물고기가 보인다. 몸에 힘을 잔뜩 줘서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잠든 사이에도, 그 여린 몸으로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조금 더 푸른 빛이 진한 물고기 하나가 무거운 물살을 갈라내며 쏜살같이 달려온다. 그 속도가 광속을 가르는 것과도 같아서, 저렇게 작은 물고기 하나가 지나가는 자리에도 큰 물보라가 일어났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봤다. 어느새 산호들의 품에 파고든 광속 물고기가, 엄마 물고기와 아기 물고기에게 머리를 마구 비비고 있다. 그녀의 땡땡했던 몸집도 스르르- 풀어진다. 찔리면 피가 날 듯 매서웠던 눈초리는 부드러운 반달 모양으로 탈피를 끝마쳤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몸을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물고기 셋의 몸짓에 산호초 숲 전체가 넘실넘실 흔들거린다. 과하다. 언제는 조용히 쉬고 가달라더니.
나는 전신에 힘을 빼고 무게가 실린 몸을 산호초 끝에 기대본다. 조금은 흔들림이 둔해지려나. 몇 초만이다. 그들이 몇 초만이라도 더 마음껏 기뻐하도록, 속절없이 흔들리는 산호들을 지탱해 본다.
03
여러 형상을 한 물고기들과 다양한 형태를 이룬 삶들이 있다. 어떤 물고기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아비스마의 섬을 향한다. 또 어떤 물고기는 사랑을 나누고 가족이라는 동료를 만든다. 이렇게 험난한 바닷속에서 연약한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해는 된다만,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도 이리 순탄치 않으니.
내가 고래가 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뭘까. 고래가 되고 난 다음에는? 고래가 되고 나면 행복해질까. 거센 파도를 가르고 빠르게 헤엄치며, 온몸에 힘을 실어 물낯 위로 뛰어오르고, 해님의 황금빛 조각들을 몸에 받아 반짝거리며 빛나는 삶. 그 빛나는 몸으로 바다 곳곳을 누비면, 수많은 물고기가 존엄의 눈빛을 보내며 우러러보는 삶.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언제 잡아먹힐까 전전긍긍하지 않는 삶. 마치 지금의 내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저 꼭대기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삶을 원했던 걸까.
나와 비슷한 존재는 없는 걸까. 나처럼 생기고, 나처럼 느리고, 나처럼 생각이 많고, 나처럼 우중충한 그런 존재. 여러 물고기도 바라지 않아. 단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도 다른 물고기들처럼 무리를 이룰 수 있을 텐데. 괴상해도, 속도가 느려도. 우리는 똑같으니까.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을 이 바다에 몸담고 살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차라리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빠르겠다. 그래서 내가 고래가 되려고 하는가 보다.
다른 물고기는 내가 쫓고 있는 것을 쫓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형태의 삶이 좋은 삶일까. 어떤 형태의 삶을 이루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둥그런 삶? 세모난 삶? 네모난 삶? 그럼 난 어떤 모양이지? 내가 어떤 모양인지 알아야 그 모양에 퍼즐처럼 딱 맞게 끼울 수 있을 텐데. 그럼, 그 모양에 나를 맞춰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나에게 맞는 모양을 찾아야 하는 건가. 젠장, 또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오늘 본 물고기 가족이 생각난다. 작고 흐린, 연약한 존재들. 직설적으로 말하면, 누군가에겐 한 입 거리도 안 될 것 같은 존재들. 언제 잡아먹힐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안달복달하면서, 애써 가느다란 끈을 잡고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삶. 다른 건 모르겠다. 내 주변을 감싼 물의 온도는 늘 차가웠는데, 그들 주변의 수온은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