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속박의 굴레
0 + 밤바다 = 2
일을 마치고 바다를 보러 갔다.
휴무를 하루 앞둔 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자마자 가까운 바다를 보러 갔다. 다음 날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른 작은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소소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나를 묶어 두었던 5일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무엇이던 내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러 가는 길인 것이다.
오후 9시, 낙산 해변가 앞에 서게 된 시간이다.
밤바다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고요한 시간 속, 찰박찰박- 모래사장으로 넘어 들어오는 옅은 파도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까만색의 바닷물은 나도 모를 나의 심연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저 안에는 뭐가 있을지, 바다의 끝은 어디쯤 일지. 겉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속의 세계는 어떠할지 무엇도 가늠할 수 없는 밤바다. 이 앞에 쭉 서 있다가는 시커먼 파도가 나를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르겠다. 나 하나쯤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가도 아무도 모르겠지. 이 순간만큼은 그런 공상에 마음껏 빠져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다.
밤바다 - 말 = -1
낙산 해변가 앞에는 마차 여러 대가 줄지어 서 있다.
탁 트인 바닷가 앞, 굵은 가죽 끈에 얽매인 말 여러 마리가 쫘르르 서 있었다. 흐르는 물과, 뛰지 못하는 말. 그 풍경이 가히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말들이 안쓰러워서였을까.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듯 내 마음도 한없이 무거워졌다. 나는 마차의 주인아저씨 눈을 피해, 살금살금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한 마리의 말 앞에 섰다. 털이 갈색인 몸에, 군데군데 하얀 무늬가 있는 다리가 짧은 말이었다. 말의 몸을 뒤덮은 끈의 형태는 생각보다 더욱 촘촘했다. 말과 마차, 그 둘은 촘촘한 연결망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어디로든 빠르게 달려갈 수 있지만, 그 능력이 묶여있는 말. 이곳을 벗어나 드넓은 초원을 거닐고 싶지만, 그 본능을 억압당한 말. 말의 자유 의지를 결박하는 법은 간단했다. 오랜 시간 동안 먹이를 제공했을, 말을 끄는 사람이 손에 쥔 줄. 그뿐이었다.
말 + 고양이 = 0
마차의 거리를 지나, 향긋한 비린내가 풍기는 곳.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바닷가 근처의 한 횟집을 찾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횟집들이 가득했지만 그중 가장 외진 곳, 홀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횟집을 선택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듯했느냐, 이모님들의 포스가 남달랐달까. 아니나 다를까. 자연산 회만을 고집하신 덕분에 신선한 횟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배를 두둑이 채우고 나오니, 횟집 앞에 누런 길냥이 한 마리가 앉아있다.
- 아우웅~ 양양양양!
나와 눈이 똑 마주친 누런 길냥이. 애교 섞인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총총총- 걸어오는 통에, 발걸음을 뗄 때마다 희한하게 변조되는 목소리로 나의 웃음을 자아냈다. 냥이의 인사는 요란했다. 내 다리에 자기 이마를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비비고, 꼿꼿이 세운 꼬리를 내 다리에 감기도 하고, 그걸로도 부족한지 하얗고 말랑해서 축 처지는 배를 뒤집어 까기까지 했다. 그에 화답하기 위해 나 역시 몸을 한껏 쭈그리고 앉아 냥이의 몸을 열심히 쓰다듬어줬다. 요놈,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 친구구나. 몸은 오동통하고, 털에서는 윤기가 좔좔 흘러넘쳤다. 털결은 어찌나 보드랍던지. 거기다가 이렇게 경계심 없고 활달한 성격까지.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흘러넘쳤다.
누런 길냥이는 제법 바쁜 친구였다. 갑자기 횟집 근처에 자리한 치킨집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가더니,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자, 얼마 안 가 치킨집 아저씨가 넓적한 그릇 하나를 들고 냥이와 함께 가게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거기에 코를 들이박는 냥이. 알고 보니 이 냥이는 치킨집 아저씨가 돌보던 아이였다. 새끼 때부터 사료와 치킨집의 고기를 맛보며 자란 덕에 튼실한 몸뚱이와 남다른 털의 윤기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배를 채운 냥이는 또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를 가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본인만의 짜인 루틴대로 바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거닐며 바닷가 곳곳을 탐험하는 누런 길냥이. 다 커버린 냥이에게 영원히 몸을 누일 따뜻한 집은 없어졌다. 대신,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길냥이. 그 자유는, 누군가의 품 안에서 피어났는지도 모른다. 이제 누런 냥이의 생을 책임질 자는 냥이 자신밖에 없다. 점점 더 무거워질 무게를 아직은 느끼지 못한 채, 냥이는 앞으로 나아간다.
짙은 어둠과 수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무언가에 의한 속박은 나의 그늘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둡고 긴 터널, 우리는 자의로 들어선다. 그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