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 한 잔

나의 일상에 짙은 향기를 남기다

by 희야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물론, 이 고백이 더는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안다. 누구나 커피를 말하고, 커피로 하루를 버티는 시대. 반복되는 일상과 과중한 업무 속에서, 커피는 어느새 직장인들의 책상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누군가는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커피를 찾곤 한다. 그렇게 커피는 우리 삶 깊숙이 스며 들어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차가운 물속으로 다이빙하기 전,
커피 한 잔으로 몸을 풀어 보자

하루하루 채우지 못한 잠의 무게들이, 고스란히 내 눈두덩이 위에 내려앉는다. 차곡차곡 쌓인 피로에 짓눌려 눈이 스르르 감겨올 때,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찾는다. 그러면 시원한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몸 안에 급속도로 퍼져 들어와, 정신이 또렷해지고 눈이 번쩍 뜨인다. 출근 전 커피 한 잔은, 피로를 밀어내고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한 하나의 생존 전략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라도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오늘도, 아슬아슬한 하루를 커피와 함께 건너간다.


그런 말이 있다. 커피는 내 정신이 육체의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내일의 에너지를 오늘로 당겨 쓰게 한다고. 그러니까 매일같이 커피를 들이켜는 건, 내 몸에 조용히 채찍질을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고 잠을 푹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깊은 잠은 내일로 미뤄지고, 나는 다시 커피를 든다. 커피는 잠시의 각성과 집중을 허락하는 대신, 더 깊은 피로를 예고한다. 알면서도 반복하는 이 선택, 어쩌면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과 타협하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데 온 힘을 쏟는 것. 커피 한 잔으로 버텨내야 할 하루, 그런 나를 위해 조용히 또 한 모금, 한 모금, 컵을 비워낸다.


커피가 단순히 피로를 깨우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여러 경계에서, 나를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정신없이 달리던 오일 간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이틀의 짧은 휴식기가 찾아온다. 이때의 나는 직장에서 보내는 나날과는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긴 단잠에 빠져, 달콤한 꿈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느긋함은 길지 않다. 이틀이 지나고, 갑자기 차가운 현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려야 할 때, 준비운동도 없이 다이빙을 했다가는 차가운 물의 온도에 심장이 화들짝 놀라고 말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커피가 등장한다.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에서, 혹은 얼음이 부딪히는 투명한 일회용 컵에서. 너무 걱정은 말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며, 현실로의 복귀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곤 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 하루의 시작과 끝, 쉬고 일 사이. 그 어느 지점의 경계에서든 커피는 조용히 존재하며, 나의 일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조금은 느리게, 조금 더 나답게,
일상의 여유를 느껴 보자

커피란, 단지 출근 전 정신을 번쩍 들게 하기 위한 카페인이 든 음료 중 하나일 뿐일까. 아니, 내게 커피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있다. 바로 브런치 타임이다. 어릴 적부터 야행성이던 나는, 보통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에 눈을 뜬다. 그리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다. 사과 몇 조각을 자르고, 전날 삶아둔 달걀 두 알을 반으로 쪼갠다. 그 위에 허브 솔트를 듬뿍 뿌리고, 참기름 한 방울을 톡 떨어트린다. 토스트기 속 식빵이 데워지는 동안, 땅콩버터 잼과 딸기잼 혹은 블루베리 잼을 준비한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해진 식빵이 튀어나오면, 이 모든 것을 큰 접시 하나에 정성껏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단 하나, 바로 커피 한 잔이다. 날이 서늘할 때면 따뜻하게, 무더위가 찾아올 때면 차갑게.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커피의 온도도 달라진다. 집안에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 퍼지고, 마침내 나의 브런치 메뉴가 완성된다. 식빵이 조금 식더라도, 커피는 늘 맨 마지막에 준비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을 켜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음미한다. 씁쓸한 맛을 입 안에 머금으며,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둔다. 사과 한 입에 커피 한 모금, 식빵 한 입에 또 한 모금.

‘식빵이 바짝 구워졌네, 다음에는 덜 굽자. 이번에 산 땅콩버터 잼 맛이 너무 좋다. 저 영화 속 저 인물은 왜 저리 쓸쓸한 표정을 하고 길을 걷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천천히 흐른다. 시간은 느릿하게 지나가고, 세상은 멀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하고 느긋한 시간 속에서 비로소 조금씩 충전된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평일 오후, 해가 가장 밝고 뜨거운 시간. 어느 한적한 카페의 구석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마주한다.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다. 글을 쓰는 순간, 책을 읽는 순간, 혹은 그냥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늘 옆 자리에 커피가 함께하고 있다.

여행을 가도 그렇다. 자연이 가득한 풍경을 담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때.

‘아, 나 정말 바쁜 일상에서 잠시 떠나왔구나-’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일상의 여유를 찾아가는 모든 순간에는 항상 커피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주 대단한 것이 아니라, 흔하고도 소박한 커피 한 잔. 그것이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젖어들게 한다. 조용한 오후, 이 시간만큼은 커피 한 잔과 함께 조금은 덜 바쁘게, 조금은 더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아, 나에게 커피란 언제나 아메리카노다.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그 향과 맛,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여운.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맛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달달한 디저트와도, 기름기 가득한 음식과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때로는 치킨을 먹을 때까지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기도 한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함께하면 속이 싹 개운해진다고나 할까. 가끔은 달달한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피로에 찌들었을 때뿐이다. 그럴 땐 달콤한 시럽의 위로가 잠시 필요하다. 하지만 금세 다시 돌아온다. 익숙한 쓴맛으로.

커피의 종류는 많지만, 어쨌든 나는 아메리카노가 가장 좋다. 정직한 맛, 담백한 향, 무엇보다 가장 ‘나’ 다운 선택. 화려하지 않아도 늘 곁에 있는 것. 그것이 나와 아메리카노의 관계다.



내 삶에 짙은 향기를 남기는,
나의 숨 그 자체, 내 삶의 동반자

이렇듯 커피는 내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나의 취향을 담기도, 숨 막힐 듯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잠시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본연의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 단순히 기호음료로 치부해 버리기엔, 커피는 내 삶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는 커피를 사랑한다. 그것은 단지 카페인을 머금은 쓴 음료가 아니다. 내 하루의 작은 의식 중 하나이자, 삶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아침의 어둠을 천천히 걷어내는 향긋한 향기, 혼란스러운 생각들 사이로 길을 내주는 카페인.

아마도 나처럼, 커피를 삶의 중심 어딘가에 놓아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커피 한 잔은 유일하게 나를 잠시 멈추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잊히고 마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그 한 잔이 내 일상에 짙은 향기를 남겨주곤 했다. 커피는 때때로 위로였고, 때로는 숨 그 자체였다.

이제 커피는 단순한 마시는 음료를 넘어서,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작고도 강한 동반자가 되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삶이라는 큰 덩어리가 되고, 그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내 곁에는, 늘 커피 한 잔이 함께 한다.






keyword
이전 10화밤바다 앞, 말과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