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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 한 마리

by 유영해 Mar 21. 2025

 부족한 것이 없다. 비록 내건 아니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 남편 하나에 자식 하나로 구색은 갖췄다. 명품 하나 없지만 가져본 적 없으니 원하지도 않는다.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살 돈도 있다. 순풍에 돛 단 듯 승승장구한 인생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소박한 하루에 만족하며 산다.


 그래서일까. 딱히, 아끼는 물건이 없다. 남편에게 “이 화상아, 너 반품!”이라고 소리쳐도 사람은 물건이 되지 않는다. 잦은 이사로 때마다 물건을 정리해서인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풍조 때문인지. 골똘히 생각해 봐도 애지중지 다뤄온 물건이 나는 없다.


 애초에 ‘아낀다’는 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제쳐두고라도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게, 망가지지 않게 신경 쓰는 것이겠지 짐작해 본다. 그런 거라면 스마트폰이 있다. 자식의 사진이 족히 삼천 장은 들어있는 갤럭시 S22 울트라. 현란한 기능을 자랑하는 100개가 넘는 앱들, 세 번의 액정 파손에도 보험의 힘으로 부활한 산 역사의 증인. 그렇다면 나에게 소중한 물건은 이 휴대기기란 말인가.


 아니다. 설령 이 폰이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울 것 같진 않다. 갑자기 나갈 돈에 맘은 쓰리겠지만 그뿐이다. 오히려 새 전화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생겨 짝지 몰래 미소를 짓겠지. 애초에 아까운 건 기계가 아니라 장치에 담긴 추억이다. 그마저도 찍기 쉬워진 사진을 요즘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는다. 저장공간이 없다는 말이 뜨면 그제야 잡초처럼 솎아낼 뿐이다.


 반물질주의를 가장한 일회용 문화다. 실로 안타깝다. 전수할 전통은 없지만 대대로 물려주는 가보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유럽 중세 드라마에서 결혼반지를 물려주는 어미처럼 말이다. 그런데 미래의 며느님이 유행 지난 가락지를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는 게 좋을까. 그렇다면 정답은 금인가 보다. 아끼는 물건을 찾다가 금테크를 하게 되고 그걸로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는 나는야, 감출 수 없는 속물이다.


 그러면 결국 금도 물려주지 못하겠지. 안타깝지만 집안의 보물은 아들이 직접 찾아야겠다. 종이접기 작품 하나 버리기 아까워하는 성미가 도움이 되겠다. 소중한 물건은 못 찾았어도 끄트머리를 함께 눌렀던 종이학의 추억은 선명하다. 아낀다는 건 분명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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