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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해 Nov 09. 2024

무조건 신고하세요.

역공의 방법

  

실례하겠습니다.



 경찰관의 둔중한 구둣발이 현관문을 넘었다. 헤드셋을 끼고 책상에 앉아 있는 아들이 신경 쓰였다. 이는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영상에 고개를 묻었다. '어른한테 인사드려야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르는 척해준 것이 고마웠다.


 지난번에 왔던 젊은 경찰과는 다른 분이다. 히끗한 머리에 큰 키를 가진, 푸근한 장년의 아저씨였다. 군청색 유니폼, 허리에 달린 총, 반짝이는 수갑이 거실 한가운데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화장실에서 모나리자를 발견한 느낌이.


그럼, 좀 살펴보겠습니다.

네, 네. 마음껏 둘러보세요.



 절한 말투 뒤로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모습에 바짝 긴장다. 두 번째 방문이라고는 하나 경찰의 존재는 여전히 묵직하다. 이 날 이때까지 파출소 문 한 번 열어본 적 없다. 우리 집의 이상을 의심받아 누군가의 점검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심장 소리가 귀를 울렸다. 얼굴이 게 달아오를 것 같심호흡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특별히 큰 소리 날만한 물건은 없는 것 같은데.. 아랫집이 자주 올라오나요?

네..
혹시 얘기 나누고 올라오셨나요?

아직 한 명이 밑에서 얘기 나누고 있고
  저만 살펴보러 올라왔어요.



 예전 출동 기록 보고서를 읽고 오셨을까. 따뜻한 미소와 호의적인 반응에 눈물이 돌았다. 그는 의자를 당기고 밀어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하셨다. 이 장난감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오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직히 그냥 말하지 말까 수천번 고민했다. 이 일 하나 때문에 그동안의 소음이 다 내 탓이 될까 봐, 탑처럼 쌓인 억울함이 진실로 변해 나를 덮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왜 이럴 때 양심은 활어처럼 살아 움직이는 건지. 가만히 좀 있어라, 좀.



이게 그 장난감이에요.
높은 위치에서 떨어진 건 몇 번 안 되고
가끔 바닥에서 구르거나 했을 텐데
그게 거슬리셨나 봐요...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커지는 죄책감에 짓눌려 키가 납작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선고를 기다렸다. '아주머니가 잘못하셨네. 이거 생각보다 아랫집에 크게 울려요.'하고 질책하실까. 아님, '저번에도 오해라고 하시더니 이유가 있었네요. 시끄러운 사람은 자기가 시끄러운 걸 모르더라고요.'라고 비난하실까. 내리깐 눈동자 아래로 두터운 손이 지나가 구슬을 쥐고 만지작거렸다.


 아이고..
이 정도 장난감 때문에 올라오신 거면
그쪽이 너무 예민한 거지..   



 고여있던 눈물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예상치 못 한 일에 화들짝 놀라 발바닥으로 서둘러 닦아냈다. 맞잡고 있던 양손에 힘을 주어 터지려는 누수를 힘껏 막았다. 경찰관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평정을 가장해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라고 답했다.


  아.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이와 집에서 쉬고 싶었을 뿐이다. 작정하고 구슬을 떨어뜨린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봤자 10개도 안 되는 작은 구슬소리에 그렇게 화를 내셔야 했을까. 농담처럼 지나갔던 아까의 상황이 3D영화가 되어 재상영됐다. 사실은 두려웠고, 사실은 무서웠고, 사실은 화가 났고, 사실은 분노했다. 단 하루도 우리 집 자동차는 시동을 안 건 적이 없고, 밀고 다닌 양말바닥은 납작하게 헐었는데, 고작 구슬 몇 개 때문에 당신한테 그런 모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거기다 그간 큰 죄라도 지은 것 마냥 석고대죄하게 만들다니. 모르는 사이에 어지간히도 세뇌를 당했나 보다. 사람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소리를 낸다. 심장의 두근거림, 손목의 맥박, 들숨과 날숨, 내장의 움직임. 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아주머니는 누구에게도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같이 아이 키우고 해서
소음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었는데
요즘은 많이 각박해졌다, 그렇죠?



 사람 좋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누수공사는 실패다.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다. 들판의 양 떼처럼 아이를 풀어키우던 시대는 갔다. 어디를 가든 눈치를 살펴야 하는 세상이다. 모니터 너머에서 쉽게 손가락질하고 쉽게 사과하는 인스턴트 같은 사회. 그 속에서 단 하나, 내 몸 뉘일 수 있는 우리 집을 지키고 싶었다. 그 집의 안위를 보장받고 싶었다.


 올라오거나 하면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세요. 법이 바뀌어서 이렇게 계속 못 살게 굴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있어요.



 눈가가 붉어진 나를 보며 경찰 아저씨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위로해 주셨다. 스토킹이라는 범죄행위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는지 몰랐다. 뉴스에서 보던 일이 지금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아주머니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공포는 스토킹 그 자체였다. 아무리 밀어내도 소용없는 미저리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내 손에 칼자루가 쥐어졌다.

 

 기운 내라는 말을 끝으로 면담은 끝났다. 현관문까지 배웅하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도꼭지를 틀자 차가운 물이 벌컥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눈 붓지 않았다. 내가 운 걸 알면 아이가 깜짝 놀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기 쉽지 않은데. 오늘 또 하나의 흑역사를 갱신했다.


 거품을 잔뜩 내서 얼굴을 씻고 걸려 있던 수건으로 정성껏 닦았다. 물기 없는 얼굴에 말간 빛이 났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움직여야지. 이제부터라도 증거를 모아야 한다. 오늘의 눈물이 마지막이 되기를. 다행히 나는 쉽게 울지 않는 사람이다. 자, 이제 상황을 내 손으로 바로잡을 때다.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마음속 결의에 용기가 차 올랐다. 거울 속 내 얼굴이 씩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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