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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해 Nov 08. 2024

이런 이웃을 만나서 죄송합니다.

경찰차의 등장


 혹시 그 사람이...



 남편이 작게 속삭다. 당황한 눈동자를 잡아채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말할 것도 없다. 랫집이 우리를 경찰에 신고한 게 틀림없다. 잘 우려낸 사골국물보다 진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의 질문이 완성형이 아닌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다. 캡사이신이 추가된 어른들의 사정은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 더 이상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 않았을 터.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일단 먼저 올라갈게.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잠시만 있다가 들어와.



 궁금한 마음을 커다란 문진으로 눌러 잡았다. 그래, 증거라곤 오직 직감뿐이다. 어쩌면 운 좋게(?) 틀렸을지도 모른다.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편의 넓은 등 태평양처럼 든든했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우린 모두 바깥에 있었고 공신력 있는 경찰에게 가족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찬스였다.   


 엄마, 왜 우린 안 들어가요?

 음.. 잠깐 놀다 들어갈까?

 네!


 아이는 신이 나서 이터로 뛰어갔다. 작은 발이 아파트 꼭대기에 닿을 때까지 그네를 밀. 금속으로 된 시소의자는 어린이용이라 듬직한 엉덩이에 통증을 유발했다. 눈앞의 풍경이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오르내렸다. 컥, 미가 났다. 크게 웃는 아들 바라보며 딴생각을 시작했다.


 리 집 앞에서 대치중일까. 아니면, 경찰관이 진술을 받고 있을까. 아무리 그 여자라도 권총 앞에서 난동을 부리진 않겠지. 하지만, 혹시 모른다. 도른 자의 심리를 우예 알겠는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며 울부짖는 아줌마가 집안으로 뛰쳐 들어간다. 돌아온 손에는 서슬 퍼런 식칼이 들려있다. 불안정한 호흡, 얼어붙은 거실, 대치하는 경찰. 남편은 어디 있지? 여보, 여보, 여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망상이 불러온 소름 끼치는 결말에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눈을 즈려 감고 시소의 흐름에 다시 몸을 맡긴다. 이번에는 다른 상상을 해보자. 이단옆차기로 멋지게 여자를 제압한 남편이 날아오는 수갑을 낚아채 장면을.


 엄마!!!!!
무슨 생각해요?
몇 번이나 불렀잖아요.

 응....? 응, 미안, 미안. 왜?

 이제 집에 가요.

 


 한참 재밌었는데. 현실로 붙들려와 주위를 둘러보니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불편했나 보다. 이제 올라가도 될까. 커지는 호기심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에라이, 될 대로 돼라.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경찰 두 분이 나오는 게 아닌가. 죽이는 타이밍이다.

 


 저... 혹시 000호실에서 연락받고 오셨나요?



 경찰과 스쳐 지나가는 찰나, 백번의 고민 끝에 말을 걸었다. 진짜 그 여자가 신고한 게 맞는지, 무슨 말을 또 어떻게 했는지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실에 걸려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가 된 기분이었다.  


 경찰은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눈을 끄덕였다. 역시나 그렇군. 나의 눈동자에 체념과 희망이 동시에 떠올랐다. 때마침 아들 반 친구가 근처를 지나가길래 저리 가서 놀고 있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이는 단호한 내 눈빛에 입술을 삐죽이며 물러났다. 나중에 원망을 듣더라도 지금은 이게  중요하다.


 단지 내 큰길을 등지고 기나긴 서사의 타래를 풀었다. 얼마나 몰입했던지 평소라면 신경 쓰였을 사람들의 시선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 두 분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이미 아랫집과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서 세 번째 듣는 내용일 텐데. 흥분한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고맙고, 죄송합니다. 정말 극한직업이세요.


 오늘도 보세요.
저희가 그 시간에 다 같이 밖에 있었잖아요.
어떻게 우리가 낸 소리일 수 있겠어요?
대체 저희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네요. 그래도 저희 입장에서는
양쪽 이야기를 전부 들어봐야 해서요.

 그건 그렇죠...
그럼 오늘 알게 된 이 모든 내용은
기록으로 남겨지나요?
저희 억울함도 좀 이해해 주시고요.

 물론이죠.
밖에서 이렇게 얘기를 나눈 내용까지
다 보고서로 작성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걱정을 한 움큼이라도 덜고 싶었다. 공식적인 기록도 중요하지만 제삼자의 입으로 우리의 무고를 증명했을 때 아주머니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솔직히 이쯤 되면 믿어주겠지 싶어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집에 올라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초인종이 울려 나가 보니 경찰이 찾아왔더라.'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상황이 그려졌다. 경찰이 우리 집 앞을 찾아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는 우리 가족과 마주쳤다면 더 극적이었을 텐데. 집 안을 보여달라는 경찰의 요청에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확인하는 경찰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것 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남편 한 명이 집안에 있었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티끌만큼의 의혹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과연 자신의 착각을 받아들였을까. 이 억울함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할까. 언젠가 단지에서 마주쳤을 때, '그때는 미안했어요. 내가 너무 예민했죠?' 하며 민망한 듯 웃어주실까.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오해가 풀리는 것이다. 무의미한 소음이 아파트를 떠나고 아주머니에게 평화가, 우리에게안식이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불안이라는 무거운 자력에 발목을 잡힌 채 현관 앞에 나지막이 앉아있다. 과연 이 쳇바퀴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현관문 밑으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른다. 제정신을 태운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다시 듣지 않기를 바랐던 경찰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지금 또다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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