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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Nov 07. 2024

나야, 아랫집.

조용한 전쟁



다시는 올라오지 마세요!



 경고의 말을 끝으로 띄엄띄엄 인터폰 공격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남편과의 격렬한 전투 이후 한동안 현관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었다. 상상 속 잡음은 계속 됐을 텐데 얼마나 우리를 원망했을까. 찾아가는 것만큼 빠른 피드백이 없으니 화부글부글 끓어올랐겠지. 소파에 앉아서 아랫집에 가득 차 있 독기를 했다. 천장과 이어진 우리 집 거실 바닥이 후끈 달아랐다. 상상 속 열기에 무릎을 감싸 앉고 중얼거렸다. 앗, 뜨거.


 직접 오는 호출을 거절하자 경비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관리자에게 사정을 얘기하는 과정은 구구절절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현재의 억울한 상황을 전해야 했다. 경비실에다 무슨 짓을 했는지 아주머니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음에 대한 불만폭탄을 경비실에도 투척했을게 틀림없다.


 사이가 괜찮았던 초반에는 층간소음 관리위원회에 연락할 것을 적극권유했다. 우리가 만든 소음이 아니니 당당했다. 그런데 조사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직접 층소음의 경우 음량평균치를 만족한 소리가 1분간 반복돼야 한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말하는 '쿵' 소리는 1초면 끝나버리니 층간소음조차 아닌 거다. 측정이 불가능하니 조사원이 안 올 수밖에. 집필에 집중하려고 하면 딱 맞춰서 방해한다는 말을 그 사람들에게도 했을까. 아마 다들 혀를 내둘렀을 거다.      


 초반에는 아주머니가 올라올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남편이 있어 든든한 마음도 컸다. 덩치 큰 남자와 한 판 붙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겠다.'정도만이라도 깨달아줬으면 했다. 미친 사람한테는 미친 사람처럼 굴어야 한다. 나는 옛날에 이미 경험 게 있고 남편도 이번 기회에 그걸 깨달았다.  


 초인종 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락 말락 했 화창한 어느 날. 남편 란한 요리솜씨를 뽐냈다. 마늘이 듬뿍 들어간 오일파스타 그날의 점심 메뉴다. 올리브유와 페페론치노의 조화가 멋들어진 한 끼였다. 숨겨서 무얼 하리. 남편이 나보다 요리를 잘한다. 배에서 돌아오면 밥은 남편 담당이다. 내가 해준다고 해도 극구 사양한다. 아무래도 맛있는 270끼를 위해서는 내 요리도 피해야 하는가 보다. 나야, 뭐.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불만은 없다. 



 기름진 요리로 배를 가득 채웠겠다, 남편과 부른 배를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먹었으면 움직여야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운동을 하기로 했다. 가을바람은 선선하고 넓은 공터에는 하얀색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있었다. 몇 바퀴를 쉴 새 없이 돌다 보니 땀이 났다. 남편이 기분 좋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요즘 아랫집 조용하네, 그렇지?



 씩 웃는 미소에 답하는 미소가 떨린다. 무심하게 던진  주변으로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엔도르핀의 분비로 한껏 좋아진 기분 사이로 잡생각이 스멀스멀 끼어들었다. 그래, 요즘 좀 연락이 뜸한데 어쩐 일이지. 태풍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희미한 불안감이 채기를 냈다.


 셔틀버스가 단지 내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해맑게 달려오는 아들과 포옹을 마친 후,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아파트 상가에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만 네 곳이었다. 그중 한 곳은 지난달에 망해서 노란색 임대 딱지가 붙었다. 바로 맡은 편에 같은 업종의 가게를 차리다니. 세상에는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아랫집은 최악이. 매매 딱지 붙이고 얼른 나가시길.


 달콤한 아이스크림 사이로 상념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웃는 가면을 보이며 아이스크림을 핥아 보았다. 얼음 같은 단맛이 거슬렸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아니, 요즘따라 부쩍 예민해진 자신을 느낀다. 이유는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 하나 때문에 일상이 흔들리다니 싸움에서 진 것 같지 않은가. 씁쓸한 마음이 들리지 않는 소음이 되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와도 아파트 정원수는 싱싱한 초록색이었다. 느긋한 발걸음 너머 저 멀리 우리 동 앞에 차가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이상하다. 주차장은 전부 지하에 만들었다. 단지 내에는 택배차 이외는 다니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한 발씩 앞으로 갈수록 불안한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서늘한 떨림은 예언이었다. 조용하던 아랫집이 불길하게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단언했다. 럴 줄 알았지.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실루엣이다. 빨강과 파랑의 경광등 비녀를 머리에 꽂은 경찰차가 어두운 뒷모습을 내보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정신병원을 산책해 보면
믿음이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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