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열었다. 통 안에 바람이 불었는지 초승달 모양의 사구가 여럿 섰다. 어린 손가락이 등장해 사막의 모래를 마구 헤집는다. 고운 가루는 손가락에 들러붙기도, 흘러내리기도 한다. 깊숙이 꽂혀있던 플라스틱 숟가락이 뽑혀 나간다. 욕심껏 한 숟가락을 떠보지만, 반도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좋다. 얼른 먹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숟가락을 든 작은 손이 떨린다. 조심 또 조심. 작은 콧김에 눈발이 선다. 입구를 벌린 컴컴한 터널에서 발간 혀가 마중을 나온다. 곧이어 살굿빛 뭉텅이가 턱 하고 떨어진다. 뻑뻑해진 분말이 입천장과 바닥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한참을 오물거린다. 혓바닥을 요람처럼 움직여서 뭉친 가루를 떼어낸다. 투명한 침과 가루가 섞여 걸쭉해진 덩어리가 스르륵 목구멍을 넘어간다. 부드럽고 약간은 비린 단맛. 동생의 분유가루는 허락되지 않았기에 더욱 달콤했다.
당신의 첫 번째 기억은 무엇인가.
정육점 일로 바빴던 우리 부모는 세 살 된 나를 외삼촌 집에 1년간 맡겨 키웠다. 당시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고민이었던 외숙모는 기꺼이 나를 맡아 딸처럼 키워주셨다. 그런데 사랑으로 돌봐주셨다는 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명절에 만나는 삼촌과 숙모의 주장이 사실이길 바라지만전혀 기억이 없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단 하나, 막 태어난 사촌 동생의 분유를 몰래 훔쳐먹는 장면이다.
기억 속 나는 검은색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아마도 여름인가 보다. 하얀색 물방울무늬와 구불구불한 프릴이 옷의 끝자락을 장식했다. 밑으로 길게 뻗은 방 안에는 커다란 자개장과 텔레비전이 있다. 옛날 드라마에서 할머니가 차지할 법한 안방의 모습이었다.
이 작은 새앙쥐가 노리는 물건은 티브이 뒤에 있다. 숨겨져 있는 걸 보니 이번 행동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 발소리를 죽여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발견한 동생의 분유통에는 고운 가루가 조용한 사막처럼 담겨있다. 반투명한 뚜껑을 열고 잠시 그 고운 자태를 감상했다.
시간은 정오쯤 됐을까. 창문 너머로 들어온 따뜻한 햇살이 방 안을 포근히 데웠다. 바닥의 장판도, 반짝이는 자개도, 주위의 공기도, 보드라운 아이의 뺨도 모두 연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숟가락 속 살구색 가루를 입에 털어 넣자 부드러운 단맛이 맛봉오리를 스쳤다. 오물오물 움직이는 작은 입이 부지런했다. 혀로 입술을 핥아 증거를 없앴다. 숟가락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살금살금 뒤를 돌아 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 분유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들고양이야. 그래, 한 숟가락은 애달프지. 아이는 한 번 더 사냥을 시작했다.
기억은 거기까지다. 몇 숟가락을 더 먹었는지, 외숙모에게 들켜 혼나진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 떨리는 양심은 사진기가 되어 과거 속 풍경을 세밀하게 찍어놓았다.
아이를 낳고 다시 먹어 본 분유는 그 맛이 아니었다. 부족한 젖량이 미안해서 질 좋은 분유를 찾아 인터넷 바다를 헤집었다. 서양에서 도착한 희끄무레한 가루는 싱거운 맛이 나서 적잖이 실망했다. 추억은 추억 속에 있어서 더 아름다운 법. 나의 첫 번째 도둑질은 영원히 바래지 않는다. 그저 아름다운 오후 속에서 찬란한 빛을 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