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육지를 가로막는 너는 하늘서 떨어진 별똥별이냐, 거대한 외계 불가사리냐. 온몸이 잿빛인걸 보니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덩치 큰 네 밑으로 시커먼 파도가 철썩인다. '아'하고 외치면 목소리를 빨아들일 것만 같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시선을 거둔다. 세이렌에게 마음을 빼앗겨선 안된다.
깔고 앉은 신문지가 부스럭거린다. 올라오는 한기를 막을 셈으로 작게 접어 주머니에 넣어왔지만 소용없었다. 토실한 엉덩이는 시간이 지나자 냉장고 속 젤리가 되어버렸다. 움직이면 좀 나을까. 굼실굼실 꽁무니를 흔들었다. 콘크리트 덩어리를 올라오던 갯강구 수십 마리가 놀라서 뒤로 세 발 물러선다. 낮에도 밤에도 너는 혼자가 아니니 심심하진 않겠다. 등은 좀 가려울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거두고 손에 쥔 책에 다시 집중해 본다. 여기는 부산의 한 바닷가. 어린 나는 지금 테트라포드 위에 앉아있다.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낚시였다. 금요일 밤이면 내 키 보다 큰 낚싯대를 여러 개 꺼내 수건으로 꼼꼼히 닦았다. 어른 손바닥만 한 나무 상자 속에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지렁이 수백 마리가 꿈틀거렸다. 작은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움직이는 갈색 뭉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웃으며 뚜껑을 닫았다.
같이 낚시하러 갈래?
아버지는 으레언니 대신나를 데리고 바다에 갔다. 생각해 보면 세 살 터울언니님은 머리가 커서 친구와 노느라 바빴을 거다. 그것도 모르고 아빠는나를 더 좋아한다는 생각에혼자서 히죽 웃었다. 같이 간다고 해서 함께 낚시를 하는 건 아니었다. 바늘에 꿰인 지렁이를 보면 징그러운 동시에 눈물이 났다. 언제 낚일지 모르는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화장실만 여러 번 가고 싶었다.
어린 딸내미는 콘크리트 조형물 위에 앉아 아버지가 낚아 올리는물고기를 기다렸다. 근처에는 여러 명의 낚시꾼들이 있었지만 우리 아빠만큼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우는 사람은 없었다. 감탄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햇살을 등진 넓은 등판이 수면과 함께 반짝였다. 낚싯줄 끝에서 대롱거리는 물고기의 비늘도 힘차게 튀기는 바닷물과 함께 진한 햇살을 반사시켰다. 펄떡거리는 트로피가 상자에 담길 때마다 작은 어깨가 하늘로 솟았다. '이 맛에 낚시하는 거지.' 뭐라도 아는 양 조잘거리면 씨익 웃는 아빠의 미소가 견딜 수 없이 좋았다.
가끔 나를 두고 저 멀리 바다낚시를 하고 돌아오시면 맨발로 마중 나가 수확물을 구경했다. 수십 마리의 자잘한 생선 위로 귀하다는 감성돔이 몇 마리나 담겨있었다. 투박한 두 손바닥을 넘어서는 은빛 생선은 어린 내 눈에도 강렬하고 멋져 보였다. 여기저기 검은색 크레파스를 칠한 등 무늬와 뾰족한 지느러미가 인상적이었다. 아빠가 물고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자 계단 위의 내가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찰칵, 경쾌한 소리마저 그날의 추억이 되었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회를 뜨는 손놀림이 수려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나도 하나 달라고 입을 벌렸다. 두툼한 회 한 점이 입속으로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빠져나왔다. 물컹한 식감과 비릿한 냄새에 혀를 빼고 울상을 지었다. 두꺼운 손가락이돌려받은 회를 간장과 고추냉이에 찍어 한 입에 집어넣었다.우물거리는 입 속에서는 오독오독 고기 씹히는 소리가 났다. 저렇게 맛없는 걸 저리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니. 아빠는 역시 대단해. 어린 나에게 당신은 그저 밝게 빛나는 등대였다.
그 많던 낚싯대는 어디로 갔을까. 상자 속 지렁이는 모두 쓰임을 다했을까.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날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시부모님의 권유에 손에 든 회 한 점에는 시뻘건 초장이 잔뜩 묻어 있었다. 물렁하고 차가운 식감 속 은은한 바다의 맛을 알게 될 때가 내가 어른이 되는 날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낚시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기다림의 미학은 사라졌다. 넓은 등판은 내가 큰 만큼 줄어들었다. 이제 당신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날 것 같다.
위풍당당한 아빠의 모습을 남겨주려 계단을 오르던 작은 발이 기억난다. 등 뒤로 스며들던 따스한 가을 햇빛도, 생선을 들고 어색하게 자세를 잡던 그의 몸짓도. 뷰파인더 속 아버지는 조금 쑥스러워 보였다. 아아. 그때의 아버지는 분명 청춘이었다. 눈부시게 빛나던 아버지의 젊은 날은 내 마음속 영화관에서 지금도 상영 중이다. 앳된 주인공이 커다란 물고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얼굴 전체에 환한 웃음이 번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