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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해 Dec 17. 2024

달콤 쌉싸름한 반찬

진미채볶음

 귀밑 3cm의 검은색 단발. 모두가 같은 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교복을 입으면 키만 크고 작을 뿐, 어디를 보나 다들 고만고만했다. 동서남북에서 걸어오학생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길게 이어진 길은 일방통행이목적지는 같았다. 아이들가로로 길게 지어진 흰의 학교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불다. 정신병원 가리키는 은어는 자라나는 반항심의 고운 새싹다.


 아침이면 참새처럼 모여서 등교하는 무리들로 좁은 골목이 들썩였다. 혼자서 천천히 걸어가는 길은 아는 친구를 만나면 축지법을 쓴 것처럼 반으로 접혔다. 저마다 진도는 다르지만 얼굴에 붉은 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머리도 얼굴도 닮아 있는 똑같은 옷까지 걸쳤으니, 하나만 엇나가도 문제아가 되던 시절이었다.


 웅성거리며 등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한 소녀가 걸어갔다. 보통 키에 보통 체격인데도 움츠러든 어깨가 그녀를 작아 보이게 다. 발치에 놓인 돌멩이를 툭툭 치며 걷다 보면 어느새 학교 안이었다. 2학년이 되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교실을 찾아 들어가는 발걸음이 어색했다. '안녕'이라고 말했지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끄러운 여중생 교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느라 분주했다. 인사는 먼지가 되어 그녀의 자리로 굴러갔다. 가방을 걸고 앉아 발 밑에 도착한 작은 음성을 신발로 꾹 눌렀다. 마치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몇 차례의 수업이 지나고 멍하니 앉아있는 그녀에게 두 명의 여자가 다가왔다. 똑딱이 핀으로 고정시킨 앞머리며 건들거리는 행동이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짧게 줄인 교복은 몸에 딱 붙어 보는 사람마저 불편게 만들었다. 그중 한 아이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내뱉었다.


 야! 니네 엄마 무당이라며?           


 방정맞은 입이 모여 킥킥댔다. 악의에 찬 웃음 덩어리가 앉아있는 그녀의 양쪽 고막을 채웠다. 팔(八) 자를 닮은 눈썹이 한층 아래로 내려갔다. 대편에 선 여자아이가 삐딱한 시선으로 내리깐 두 눈을 바라봤다.      


 눈썹 정리 좀 해줄까? 하면 이쁠 것 같은데.


 자기 할 말만 끝낸 두 그림자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라졌다. 뾰족한 적의는 침봉을 닮았다. 멋대로 꺾은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에 사정없이 꽂혔다. 바닥에 널브러진 꽃잎들 바람을 타고 교실 밖으로 흘러다. 시들해진 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곧, 점심시간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녀였다.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던 같은 반 친구였다. 말은 친구라고 했지만 친하지 않았다. 학기 초에 혼자 앉아있길래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 뿐이었다. 작년에 미녀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나를 복도로 슬며시 불러냈다. 그리고는 쟤랑 같이 놀지 말라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왜'냐고 물었다. 조금 화가 난 어투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우물쭈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유 없이 싫은 사람. 그게 전부라면, 함께 밥을 먹지 못할 근거는 되지 못했다.    


 자라나는 중학생의 식욕은 엄청났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달려가도 4교시가 끝나기 전에 위가 요동쳤다. 종소리와 함께 책상을 끌어모아 식탁을 만들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온갖 반찬 냄새가 교실 진동했다. 계란을 둘러싼 분홍 소시지에 짭조름한 메추리알, 달큼하게 볶은 멸치볶음에 아삭한 김치. 다양한 요리가 비빔밥 재료처럼 한데 모여 풍성한 냄새를 풍겼다. 아이들은 서로의 반찬을 나누며 그렇게 밥을 먹었다.


 미녀의 반찬은 언제나 똑같았다. 진한 빨간색의 진미채볶음. 들반들 윤나는 반찬에는 고소한 깨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달콤한 오징어채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밀어 넣으면 흰밥과 어우러지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노는 아이들이 다가와 반찬을 집어가도 그녀는 아낌없이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다른 반찬을 집어먹으면 되니 밥 먹을 때만큼은 거리낄 게 없었다.


 그 아이와 놀았던 기억은 없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말을 걸어오면 받아줬을 뿐, 친구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굳이 그녀와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친한 친구는 많았다. 언제나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 애가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 미녀를 싫어하는 친구들에게 동화되었을지도 모. 이러니 저러니 변명을 늘어놓아도 혼자 있는 친구를 못 본 척 한 건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다. 그녀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미녀가 껄끄러워진 이후에도 점심시간이면 같이 앉아 밥을 먹었다. 반찬을 나눠먹는 젓가락질에 성가심을 숨기려 애썼다. 돌이켜보면 그 정도 양심은 자라 있었나 싶어 금이나마 안도한다. 그녀의 반찬은 변함없이 달달했지만, 사이가 소원해질수록  끝에 아린 맛이 감돌았.


 급식이 대부분인 요즘은 소풍이라도 가야 도시락을 싼다. 그마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도시락을 싼 기억이 없다.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밥은 각별하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미녀도 나와 함께 한 급식시간이 즐거웠을까. 빨갛게 양념된 진미채볶음과 그 반찬을 아낌없이 나눠주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돈다. 씁쓸했던 뒷맛은 외로웠던 그 아이의 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강렬하게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뒤섞인 도시락 냄새로 가득했던 교실과 다른 이의 음식은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상처가 되었을까. 정답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그녀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웃으며 보내기를 감히, 주제넘게 바라본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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