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울음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 아이는 자신의 언어로 배고픔을, 졸림을, 혹은 단순한 불편함을 표현할 뿐이다. 울음은 아이에게 있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울음이 공공장소에서 터져 나올 때, 엄마인 나는 그 소리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 순간, 울음은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놓인 다리처럼 느껴진다. 그 다리는 불안정하고 무거워, 언제든 무너질 것만 같다.
우리 아이는 큰 소리로 우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차분하게 지내지만, 배가 고프거나 졸리면 어김없이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칭얼거림은 집에서는 그저 하나의 소리에 불과하지만, 공공장소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순간 울음은 마치 스피커로 증폭된 것처럼 크게 들리고, 나는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주변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 시선들은 마치 무언의 압박처럼 나를 짓누른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아이니까 울 수 있지.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다. 아이는 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울음이 내게 주는 부담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그 울음을 빨리 멈춰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그 무게에 눌려 행동이 빨라진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마치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급하게 울음을 멈추게 하려는 걸까? 아이가 울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울음을 세상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이의 울음이 엄마인 나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이 너무 커서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좋은 엄마'로 보이고 싶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겁고, 아이의 울음은 그 무게를 더욱 부각시킨다. 울음은 단순히 아이의 감정 표현일 뿐이지만, 그 순간 나는 울음을 진정시키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소리가 계속되면, 나는 그 울음이 단순한 울음을 넘어 세상과 나 사이의 갈등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울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상은 조용하고 질서 정연한 상태를 원한다. 그래서 울음은 그 질서를 깨는 방해 요소처럼 느껴지곤 한다. 나는 그 울음을 억누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나는 세상의 시선에 맞서 싸우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싸움이 끝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나의 고립감뿐이다.
엄마로서 아이의 울음은 나에게 매번 새로운 도전이 된다. 그 울음이 세상과의 대화가 될 수 있도록, 나는 그 소리를 억누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도 아이의 울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하고, 나 역시 아이의 울음을 지나친 부담으로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