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31화 - 거만한 막내
가방을 등에 멘 초등학교 2학년 혜진,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은 후 일어선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미라가 막 나서려는 혜진에게 묻는다.
“알림장, 가방에 넣었어?”
“응, 넣었어.”
언제나 그렇듯 미라는 혜진에게 의례적인 말을 한다.
“학교 끝나면 집에 곧장 오는 거 알지?”
“알아.”
혜진이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혜진을 등교시킨 미라, 이제 개구쟁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려갈 준비를 할 차례다. 미라는 아이들이 입고 갈 옷을 거실 바닥에 가져다 놓는다.
“자, 옷 입자.”
TV에서 나오는 유아 프로그램에 눈을 꽂고 있는 인주와 한주, 미라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한다.
미라는 할 수 없다는 듯 TV에 정신이 팔린 한주를 끌어다 앞에 앉히고 상의를 든다.
“자, 손.”
한주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TV에 눈을 꽂은 채 능숙하게 양팔을 머리 위로 치켜든다.
상의를 다 입힌 미라.
“자, 발.”
한주가 앉은 자세에서 양발을 앞으로 쭉 편다.
미라가 한주의 몸통을 앞쪽으로 향하게 돌린다. 한주 뒤에서 바지를 양발에 끼워서 인주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바지를 허리춤으로 올린다.
그 와중에도 한주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한주 옷을 다 입힌 미라는 TV를 보고 있는 인주에게 말한다.
“인주는 혼자 옷 입을 수 있지?”
인주는 옷을 손에 쥐고서 계속 TV를 보고 있다.
미라가 그런 인주를 보며 다시 말한다.
“인주야 옷 입어.”
인주는 TV에 눈을 꽂은 채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알았어.”
TV를 보면서 꾸물꾸물 옷을 입는 인주.
미라는 인주의 옷 입는 모습을 보면서 앙증맞게 작은 크기의 양말을 들고 한주에게 말한다.
“자, 발 들어,”
옷을 입고 다시 바닥에 앉아 TV를 보는 한주가 생쥐같이 작은 크기의 한쪽 발을 미라에게 내민다.
한참을 걸려 아이들의 옷을 다 입힌 미라, 한주가 어린이집에서 식사할 때 배식받는 빈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는다.
유치원 가방을 멘 인주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다.
“아이, 신발도 잘 신네, 우리 인주.”
옆에서 신발을 다 신은 한주가 미라를 쳐다본다. 미라는 그런 한주에게도 칭찬을 상납한다.
“한주도 신발 다 신었어? 아유 잘했어요.”
미라는 한주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연다.
“자, 출발.”
일련의 힘든 절차를 모두 마치고 세 모자가 집을 나선다.
알록달록한 어린이집 등 가방을 멘 한주는 미라의 등에 업혀 있고, 인주는 미라 옆에서 걷는다.
미라는 인주를 내려다본다. 인주 이마에 선명하게 보이는 이빨 물린 자국.
그래서 미라가 다시 한번 아이들을 부드럽게 다그친다.
“인주는 형이고, 한주는 동생이잖아, 형제끼리 싸우면 돼? 안 돼?”
“안 돼.”
업혀 있는 한주는 미라의 등에 뺨을 대고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인주는 미라의 기분을 맞추듯이 정감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싸우면 안 되지!~.”
“그럼.”
인주의 대답에 만족하는 미라, 그렇지만 한주의 대답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미라는 고개를 뒤로 돌려 한주에게 특별히 다시 묻는다.
“깨물면 선생님이 혼 내? 혼 안 내?”
“...”
한주 대신 인주가 대답한다.
“혼 내.”
업혀 있는 한주가 미라의 말에 집중하도록 미라가 등을 흔들며 대답을 요청한다.
“다음부터 깨물 거야, 안 깨물 거야?”
미라의 애절한 요청에 할 수 없이 대답해 주는 한주, 낮은 음성에 성의마저 없다.
“안 깨무 꺼야.”
막내 한주 녀석이 무심한 것인지 거만한 것인지 미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한주에게 무시당하는 미라, 그 미라를 위로하듯 인주가 말한다.
“엄마, 싸우면 안 되지!~.”
미라는 인주의 다정한 말에 화답하듯 힘주어 말한다.
“그럼!”
엄마의 성의 있는 대답에 신이 난 인주는 말이 많아진다.
“깨물어도 안 되지!~.”
“그럼! 깨물면 경찰 아저씨 잡아가.”
인주와 미라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는다. 그리고 거만한 막내 한주는 미라의 등에 머리를 옆으로 기댄 채 손가락을 빨고 있다.
미라와 아이들이 어린이집 현관에 들어선다. 미라가 벨을 누르자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와서 한주를 맞이한다.
“어머나, 한주 왔네”
그러고는 미라를 바라보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그 사이에 한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선생님은 미라에게 황급히 눈인사하고 한주를 따라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간다.
인조의 손을 잡고 있던 미라가 허탈하게 웃으며 인주의 손을 잡고 돌아선다.
참 거만한 한주.
안방에서 미라와 ‘강제 학습’을 마친 혜진이 미라와 함께 거실로 나온다.
한주와 함께 1인용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인주, 무료하게 VTR로 재생되는 TV 화면을 보고 있다. 혜진 다음으로 강제 학습을 당해야 하는 것을 아는 인주는 TV 화면에 애써 눈을 꽂고 있다. 그러나 미라에게는 얄짤없다.
“인주야, 공부해야지.”
“엄마, 이것 좀 보고.”
“전에 봤던 거잖아, 자 빨리.”
인주의 반응이 없자 미라는 소파에 앉아 있던 인주의 손을 잡아끌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한주는 1인용 소파에 인주가 앉았던 공간까지 차지하며 가로로 눕는다.
혜진이 한주가 누워있는 소파 앞쪽에 걸터앉는다.
“안 보여!”
한주가 소리 지르자 혜진이 약간 왼쪽으로 비켜서 앉는다.
“한주야 다른 거 보자”
그 말에 한주가 리모컨을 깔고 눕으며 말한다.
“안 돼.”
혜진은 한주를 일으켜 세우려 한주의 옷을 잡고 당긴다.
버티는 한주는 소리를 지른다.
“테레비 내 꺼야!”
혜진은 말도 안 통하는 이 무식한 놈하고 싸우다가는 자기가 보고 싶은 가요 프로그램을 놓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이 보고 싶어 공부도 후딱 마쳤는데….
그래서 혜진은 만만한 현수를 선택하기로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작은방으로 향하는 혜진.
혜진이 작은방에 들어온다. 몸을 비스듬히 누운 채 TV를 보고 있는 현수,
이제 막 시작한 8시 뉴스를 보고 있던 현수는 방에 갑자기 들이닥친 혜진을 쳐다본다.
현수가 안중에 없는 혜진은 바닥에 놓여진 리모콘을 집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보고자 한 TV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린다. 요란한 음악과 함께 현란한 율동이 펼쳐지는 음악 프로그램이 화면에 펼쳐진다.
현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혜진을 바라보지만, 혜진은 그런 현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억울한 현수가 혜진에게 애처롭게 항의한다.
“거실에서 TV 보면 되잖아.”
“지금 한주가 보고 있어서 안 돼.”
단호하게 대답하는 혜진, 현수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포기한다. 그러면서 혜진에게 묻는다.
“한주 혼자 티브이 봐?”
“응.”
현수가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한다.
“그래?”
현수는 한주를 좀 데리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한다.
혜진에게서 밀려난 현수, 거실로 나온다.
안방에서 미라가 인주에게 받아쓰기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사과. 사과를 쓰세요.”
이어서 나오는 인주의 천진난만한 목소리.
“엄마는 사과 좋아하지, 그지~?”
아부하는 인주를 다그치는 미라의 목소리.
“빨리 쓰기나 해, 사과.”
인주가 글자를 쓰는지 안방에서 나오는 말소리가 끊어진다.
거실에는 한주 혼자 1인용 소파에 가로로 거만하게 누워서 TV를 보고 있다.
현수는 한주를 쳐다보며 생각한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놈 같으니라고….
현수는 그런 한주를 그냥 놔두지 않고 집적거리기 시작한다.
“한주야, 너 노래 부를 줄 알아?”
역시 거만한 한주는 거만하게 대답한다.
“몰라.”
현수는 다시 한주에게 부탁한다.
“노래 불러줘.”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는 한주.
“싫여.”
현수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압박한다.
“그러면 아빠가 안 놀아줄 거야.”
한주는 현수의 치졸한 협박에도 무심하게 거절한다.
“노래 안 불러.”
현수가 한주에게 애원하듯이 말한다.
“노래 불러주면 아빠가 많이 놀아줄게, 응?”
그러자 한주는 선심 쓰듯이 말한다.
“아빠, 노래 불러줄까?”
애가 탄 현수는 얼른 대답한다.
“응!”
한주가 소파에 가로누워 아주 편한 자세로 ‘바둑이 방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것도 TV까지 봐 가면서….
“♪달랑달랑 달랑 달랑 달랑 달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가사를 어눌하게 읊조리며 음의 높낮이를 최소화하여 부르는 한주의 노래, 아예 책을 읽는다고 보는 것이 낫다.
황송한 한주의 노래를 현수는 웃음을 참아가며 듣는다.
“♬학교길에 달려 나와서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온다, ♬달랑 달랑 달랑♪~”
소파에 가로누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한주. 노래 부르는 자세며 노래 부르는 음률이며 모두가 엉망이다. 그런 한주를 바라보며 현수는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다 나온다.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노래가 끝나자 현수가 드디어 웃음이 터진다.
그러자 한주가 현수를 보며 따지듯이 묻는다.
“아빠, 웃는 거야?”
현수는 웃음을 억지로 그치며 한주에게 공손하게 말한다.
“노래 참 잘 불렀어.”
현수의 말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TV를 보는 한주.
그런 한주에게 현수는 공손하게 보상을 상납한다.
“내일 아빠랑 놀러 갈까?”
“응.”
이마저도 무심하게 대답하는 거만한 막내, 아주 거만한 막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