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34화 - 생일놀이
작은방에 있는 현수는 팔베개하고 모로 누워 TV를 보고 있다. 열린 문을 통해 밖에서 미라와 한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주야, 공부해야지.”
“싫어!”
“공부 안 하면 토끼처럼 바보가 돼.”
한주는 신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미라에게 묻는다.
“토끼? 토끼가 바보야?”
미라는 한주 말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듯 재촉한다. 토끼가 바보인 것을 엉터리로라도 설명하다 보면 공부는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자, 연필 잡고.”
조용한 것을 보면 한주가 최소한 연필은 잡은 모양이다.
“옳지, 우리 한주는 공부도 잘해요.”
거만한 한주가 미라에게 잡혀서 공부한다는 것이 신기한 현수,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미라는 세탁물을 개면서 한주가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한주가 교자상 앞에 두고 앉아 연필을 쥐고 학습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다. 그것이 신기한 현수는 한주가 앉아있는 교자상 옆에 앉는다. 학습 노트의 상단에 적힌 숫자를 보면서 아래 네모 칸 안에 숫자를 적어 넣고 있다.
노트 칸칸에 한주가 적어 넣은, 더 정확하게는 그려 넣은 숫자들이 삐뚤빼뚤하게 채워져 있다. 여섯 줄 정도 이미 채워진 숫자들, 며칠에 걸쳐 이것을 쓰게 하느라 한주와 옥신각신 투쟁했을 미라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것을 본 현수가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한다.
“한주는 숫자도 쓸 줄 알아?”
한주는 자기도 숫자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현수를 빤히 쳐다보며 거만하게 대답한다.
“응!”
자신 있게 대답하는 한주에게 한껏 기대하는 현수, 한주가 숫자 적는 것을 본다. 더 정확히는 숫자 그리는 것을 본다.
아래에서 위로 획을 그으며 그리는 ‘1’ 자와 ‘2’ 자. 현수는 웃음을 참으며 한주에게 칭찬을 받친다.
“잘했어요.”
숫자 쓰는 방법이 엉터리이지만 그래도 칭찬을 해야만 하는 현수의 입장. 한주를 억지로 공부시키는 미라를 봐서라도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자, 이번에는 3을 써 봐.”
현수는 웃음을 참아가며 한주의 글자 그리는 것을 바라본다.
'3' 자는 그래도 제대로 쓴다. 그러나 나머지 숫자들도 거꾸로 그리는 것을 보며 현수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다. 결국 동그라미 두 개를 붙여서 그리는 '8' 자에서 현수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린다.
“으흐흐 후후.”
한주가 자존심이 상한 듯 현수를 보며 말한다.
“아빠 지금 웃는 거야?”
한주가 화가 나서 연필을 던지기 전에 현수는 신속히 변명한다.
“아니야, 한주가 너무 잘해서 아빠가 놀라는 거야.”
현수는 자기가 한 말에도 웃음이 난다. 그렇지만 이 또한 참아가며 한주를 달랜다.
“자, 다시 써 봐.”
현수는 뇌물까지 상납하며 한주의 ‘숫자 그리기’ 공부를 부추긴다.
“공부 다 하면 아빠 방에서 TV 보자.”
결국 한주는 노트에 그리는 숫자를 두 줄도 더 못 채우고 작은방에서 TV를 보게 된다.
작은방에 현수가 팔베개하고 모로 누워 있고 인주와 한주는 깔아놓은 요 위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도 현수의 팔을 베개 삼아 누워서 TV를 본다.
또 시간이 흐른 후 아이들은 잠들어 있다.
현수는 잠들어 있는 인주의 이마와 한주의 팔뚝에 물린 자국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웃는다. 그리고 일어나서 불을 끄고 녀석들과 함께 잔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현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예, 어머니.”
“일하고 있는데 간단하게 말할게, 오늘 혜진 엄마 생일이다. 알고 있었나?”
“아니요.”
“그럴 줄 알았다. 오늘 집에 들어갈 때 맛있는 거 사 가지고 들어가랴.”
“예.”
“이만 끊으마.”
현수가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다시 일한다.
미라와 혜진은 TV를 보고 있고 인주와 한주는 방바닥에 장난감을 펼쳐놓고 놀고 있다.
현관문이 열리고 현수가 들어선다. 현수는 케이크 상자를 서류 가방 뒤쪽에 숨겨서 들고 있다.
놀고 있던 한주와 인주가 쫓아와 현수를 반긴다. 케이크를 숨겨서 들고 있는 현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아이들에게 묻는다.
“사이좋게 놀고 있어?”
“응.”
두 녀석이 동시에 대답한다.
마라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현수를 보며 묻는다.
“식사는요?”
“글쎄… 내가 찾아 먹을게.”
아이들에게 안 들키고 케이크를 작은방으로 들고 들어가야 하는 현수, 신발을 벗는 척하며 시간을 끌면서 녀석들에게 말한다.
“뭐 하면서 놀고 있어?”
“울트라 슈퍼 변신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어.”
자동차 이름만 들어도 자동차가 씽씽 날아다닌다는 것이 상상된다. 역시 천재! 인주는 가지고 노는 자동차부터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현수, 아이들에게 음흉하게 웃으며 말한다.
“응, 빨리 가서 또 놀아.”
인주와 한주가 다시 놀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제서야 현수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케이크 상자를 서류가 방 뒤에 숨겨서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방으로 들어간 현수가 다시 거실로 나와 밥상을 들고 들어간다.
미라는 현수가 저녁을 챙겨 먹기 위해 밥상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잠시 후 작은방 방문이 열리다.
“혜진아, 좀 와 봐.”
아무것도 모르고 작은방으로 들어오는 혜진. 문 닫는 혜진을 쳐다보며 현수는 손가락을 자기 입술 위로 올린다. 우선 그렇게 혜진의 입막음을 시킨다. 그러고는 밥상 위에 올려진 케이크를 보여주며 말한다.
“오늘 엄마 생일이래.”
혜진은 케이크를 바라보며 낮게 ‘우와’ 하고 소리친다.
현수는 다시 한번 혜진의 입막음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케이크 위의 촛불에 불을 붙인다.
“너가 지금 나가서 거실 불을 꺼, 그러면 아빠가 이것을 들고나갈게.”
“지금?”
“응, 지금”
은밀한 지령을 받은 혜진이 작은방에서 나간다.
혜진이 거실의 전등을 끈다. 그와 동시에 밥상 위에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 작은방에서 나오는 현수.
인주와 한주가 눈을 번쩍 뜨며 불이 켜진 케이크로 달려든다.
미라가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보며 웃는다.
현수가 케이크가 올려진 밥상을 미라 앞에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어서 혜진도 같이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현수가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엉겁결에 인주와 한주도 박수를 따라 친다.
“사랑하는 신미라,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마치자 현수가 미라를 보며 말한다.
“자, 촛불 끄세요.”
미라가 촛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현수가 환호하듯 박수를 치자 아이들 모두 신이 나서 손뼉을 친다.
미라가 촛불 끄는 것이 부러웠던 혜진, 희미한 어둠 속에서 혜진이 말한다.
“아빠, 나도 해줘.”
전등불을 켜려고 일어서려던 현수가 말한다.
“혜진이기도 하고 싶어?”
“응.”
현수가 라이터를 켜자 케이크를 쳐다보는 가족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케이크 촛불에 불을 붙인다. 케이크에 꽂은 촛불을 신기한 듯 그리고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현수와 미라가 손뼉을 치며 혜진의 생일 축하 음악을 부른다. 인주와 한주는 노래는 모르지만, 열심히 손뼉을 쳐댄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김혜진,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현수가 말한다.
“자, 김혜진이 촛불을 끄겠습니다.”
혜진이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서 끄자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가족 모두가 환호하며 손뼉을 친다.
어둠 속에서 한주가 말한다.
“나도 할래.”
현수가 라이터 불로 촛불에 불을 다시 붙인다.
가족 모두가 손뼉을 치며 한주의 생일 축하 음악을 부르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김한주, 생일 축하합니다.”
한주가 촛불을 끄자 어둠 속에서 가족 모두가 다시 환호하며 손뼉을 친다.
“자,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인주 차례.”
이렇게 말한 현수가 촛불에 불을 다시 붙인다. 가족 모두가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고 더 열렬히 손뼉을 치면서 인주의 생일 축하 음악을 부르기 시작한다. 네 번 들어 귀에 익은 노래라 이제 인주와 한주도 열심히 잘 부른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김인주, 생일 축하합니다.”
인주가 촛불을 끄자 어둠 속에서 가족 모두가 환호하며 손뼉을 친다. 가족의 생일이 이제야 다 끝났다.
현수는 불을 켜려고 일어서려 하자 어둠 속에서 한주가 외친다.
“또 할래!”
그 말을 듣는 현수는 이제 지친다. 생일 당사자인 미라도 지친다. 자기 생일에 남의 생일 노래를 벌써 세 번씩이나 불렀는데…. 한주만 아직 생일 놀이에 신이 나 있다.
혜진이 한주를 나무라듯이 말한다.
“너 아까 했잖아, 왜 또 해?”
“또 할 거야!”
한주가 고집을 부리자 어둠 속에서 혜진의 언성이 올라간다.
“너만 두 번 하는 게 어디 있어?”
한주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현수가 포기한 듯 말한다.
“그래, 하자, 또 하자. 한주가 하고 싶다는데.”
현수가 할 수 없다는 듯 촛불에 불을 다시 붙인다.
일렁이는 촛불에 드러나는 가족의 지친 표정. 이번이 다섯 번째 생일 노래다.
한주의 생떼가 두려운 가족, 할 수 없다는 듯 힘 빠진 손뼉을 치며 한주의 생일 축하 노래를 다시 부른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김한주,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한주 스스로 또랑또랑하게 말한다. 참 뻔뻔한 녀석.
“김한주가 촛불을 끄겠습니다.”
한주가 촛불을 끄자 억지로 하는 듯한 어설픈 환호를 하며 손뼉을 친다.
“야 어어~.”
그런데….
깜깜해진 방에 전등이 켜지자 1년 정도 더 성장한 한주의 모습이 나타난다.
완벽한 개구쟁이 모습 그 자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