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33화 - 개구쟁이 소풍 풍경
현수와 가족 일행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너른 공터에 몇 겹으로 길게 늘어진 줄을 보아 배 타는 것이 족히 한 시간은 더 걸릴 것 같다. 현수는 천방지축 한주가 어디로 튈지 몰라 손을 잡고 있다.
“아빠, 배 언제 타?”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던 혜진이 따분함에 지쳐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현수는 혜진을 내려다본다. 혜진의 눈썹이 뭔가 이상해 보여서 현수는 허리를 숙여 혜진의 눈썹을 살펴본다. 좌우 눈썹 밑 피부에 어설프게 한 줄씩 그어진 붉은색 색연필 자국, 딱딱한 색연필로 참 야무지게도 그렸다. 그것을 본 현수가 웃으면서 혜진에게 묻는다.
“눈썹 그렸어?”
혜진은 부끄러운 듯 현수를 손으로 치면서 낮게 소리친다.
“아~, 아빠 조용히 해~.”
현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주위를 둘러보며 애써 웃음을 참는다. 옆에 서 있던 미라도 기가 찬 듯 말한다.
“하이구, 참 나, 아침에 그래서 화장대 앞에 서 있었구나.”
혜진 눈썹의 색연필 자국, 인주 이마의 물린 자국 그리고 한주 팔뚝의 물린 자국…. 이런 천방지축 같은 녀석들을 데리고 긴 줄에 서 있는 현수는 기가 차다는 듯 웃는다. 그리고 이 틈을 이용해 캠코더를 녀석들에게 들이댄다.
인주는 손가락으로 V자를 보이며 포즈를 취한다. V자를 표시하는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녀석의 이마에 물린 자국이 보인다. 현수는 캠코더의 줌 기능을 이용하여 그 부분을 확대하여 찍는다. 그리고 한주 팔뚝의 물린 자국도 찍는다.
“혜진아, 너도 찍어줄게.”
현수는 혜진의 서 있는 모습을 찍어준다. 그리고 색연필로 그려진 혜진의 눈썹을 줌 렌즈로 확대하여 혜진 몰래 찍는다. 이렇게 현수는 혼자 낄낄거리며 개구쟁이 녀석들의 흔적을 캠코더에 담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을 서 있는 아이들이 따분함에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몇 번씩 현수의 손에 벗어나려고 시도하던 한주가 기어이 현수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난다. 인주도 기분 좋게 한 주 뒤를 따라 뛰어간다. 미라는 이 녀석들을 잡기 위해 쫓아간다. 현수는 도망가는 녀석들을 그냥 멀뚱히 쳐다본다. 그나마 혜진이 도망가지 않고 현수 곁에 함께 줄을 서 있는 것이 현수로서는 다행스럽다.
미라는 녀석들을 어렵사리 붙잡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가까운 상점에 들러 보리쌀 뻥튀기 과자를 한 봉지를 사서 아이들에게 안긴다. 과자 봉지 속으로 번갈아 가며 손을 넣어 뻥튀기 알갱이를 한 움큼씩 빼내 먹는 녀석들. 미라는 그런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 긴 줄로 돌아온다. 붙잡혀 와야 할 그 녀석들이 현수 눈에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오고 있다. 그것도 과자까지 사이좋게 먹으면서…. 현수는 그것을 보고 웃는다.
잠시 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가는 가족, 배를 처음 타는 아이들은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그래서 녀석들은 배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얌전하게 있다. 한주는 이 틈을 이용하여 봉지 안에 든 뻥튀기 알갱이를 자신의 멜빵 청바지 주머니에 옹골차게 챙겨 넣고 있다.
배에서 내린 가족은 사람들을 따라 섬 안의 유원지 가로수 길을 걷는다. 기분이 들뜬 인주가 저 멀리 뛰어가자 현수가 인주에게 소리친다.
“인주야, 먼저 가면 안 돼.”
그러자 한주가 장난치듯 다시 인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편한 목소리로 인주를 부른다.
“인주야.”
그 말을 들은 미라가 한주에게 주의를 준다.
“형아라고 해야지.”
한주는 미라를 놀리듯이 인주의 이름을 또다시 크게 부른다.
“인주야, 인주야.”
미라는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한주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주의를 준다.
“형아라고 불러야지, 그러면 못 써!”
그러면서 가족은 조약돌이 깔린 강가에 다다른다.
녀석들이 강가에서 조약돌을 주워서 강물로 던진다. 서로 경쟁하듯이 소리치며 돌을 던지는 녀석들. 미라는 그 녀석들을 위해 옆에서 응원한다.
“아유, 한주는 돌도 잘 던지네.”
“엄마, 나는?”
“인주도 잘 던지고!”
현수는 아이들이 던질 만한 돌을 골라주기 바쁘다. 미라는 어린 녀석들이 돌을 던지는 어설픈 동작을 보며 웃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현수는 무거운 돌을 골라서 한주에게 안긴다. 그 돌을 들고 쩔쩔매는 한주가 소리친다.
“아빠! 무거워!”
현수의 횡포에 한주가 고생이 많다.
다시 빈둥빈둥 유원지 길을 걷는 가족들. 한주가 길을 걷다가 멈추어 서서 멜빵 청바지의 주머니에서 뻥튀기 알갱이를 몇 개씩 꺼내 진지하게 먹는다, 미라는 한주의 뻥튀기를 먹는 앙증맞은 모습을 보며 웃는다. 혜진이 웃고 있는 미라를 올려다보면서 말한다.
“엄마, 배고파.”
“그래, 식당 있는 곳으로 가자.”
일행은 또 빈둥빈둥 걸으며 식당 있는 쪽으로 향한다.
현수 가족은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식당 카운터 앞에 선다.
벽에 붙은 음식 사진을 들여다보는 혜진, 혜진의 눈에 비빔밥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아빠, 나는 저거 비빔밥.”
현수가 혜진을 쳐다보며 묻는다.
“혜진이 저거 먹을 수 있겠어?”
“응, 먹을 수 있어.”
현수는 다시 확인한다.
“저거 정말로 먹을 수 있어?”
“응, 비빔밥 먹을래.”
혜진의 식성을 아는 현수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확인한다.
“그래, 먹을 수 있단 말이지?”
카운터의 계산원이 현수에 가족을 지켜보며 주문을 기다린다. 현수는 기다리고 있는 계산원을 위해 인주와 한주가 무엇을 먹을지 따로 묻지 않고 음식을 주문한다.
“비빔밥 하나 하고요, 잔치국수 두 개, 김밥 하나, 그리고 츄러스도 하나 주세요.”
“예, 비빔밥 하나에, 잔치국수 두 개, 그리고 김밥 하나 맞죠?”
“예.”
“그리고 츄러스는 저쪽에 가서 직접 사셔야 해요.”
“예.”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현수는 한주가 좋아하는 츄러스를 사러 간다.
인주와 한주가 츄러스를 먹고 있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비빔밥이 혜진 앞에 그리고 잔치국수는 현수와 인주 앞에 놓여진다. 김밥은 인주 앞에 놓여지지만, 인주가 김밥을 먹을 리 없다. 안 주면 투정을 부리기 때문에 모양상 그렇게 놓는 것이다. 물론 미라가 그 잔치국수와 김밥을 먹을 것이지만….
혜진은 어설픈 동작으로 비빔밥을 열심히 비빈다. 그리고 먹기 시작한다. 현수는 잔치국수에 손도 대지 않고 비빔밥을 먹는 혜진을 바라본다. 현수의 예상대로 비빔밥을 먹으며 쩔쩔매는 혜진, 거친 산나물과 매운 고추장이 혜진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현수가 혜진을 보며 놀리듯 말한다.
“비빔밥 먹을 수 있다며?”
평소 같으면 현수에게 지지 않을 혜진, 이번에는 말이 없다. 현수가 그런 혜진에게 다시 묻는다.
“맛없어?”
“응.”
현수는 자기 앞에 있는 잔치국수와 혜진의 비빔밥을 맞바꾼다. 표정이 환하게 바뀌는 혜진. 현수가 혜진을 보며 묻는다.
“아빠가 좋아, 싫어?”
“좋아.”
달랑 잔치국수 한 그릇을 가지고 생색내는 현수, 보고 있던 미라가 한마디 한다.
“아유, 유치해라, 혜진아 아빠 유치하지?”
현수의 배려가 고마운 혜진은 미라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잔치국수를 먹는다. 배신감을 느낀 미라가 한탄하듯 말한다.
“아유, 저 깍쟁이.”
오늘은 혜진의 방자한 자존심에 여러모로 금이 간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유원지를 배회하는 가족들. 인주와 한주는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뛰어다닌다. 갑자기 나타난 토끼도 그 녀석들 옆으로 도망치듯 뛰어간다. 놀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토끼를 본 녀석들은 순간 얼어붙는다. 동화책에서는 제일 약한 토끼이지만 막상 실제로 토끼를 보니 두 녀석은 겁이 난다. 그런데 다행히 토끼는 토끼굴로 도망쳐 주고 녀석들은 다시 토끼가 만만해진다.
인주와 한주는 토끼굴에 쪼그려 앉아 가지고 있던 나뭇가지로 토끼굴을 찌르며 소리친다.
“토끼 나와!”
인주가 소리를 지르자 똘마니 한주도 소리를 지른다.
“토끼 빨리 나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수가 녀석들을 놀리기 위해 소리친다.
“야, 토끼 나온다.”
녀석들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동댕이치고 현수에게 쫓아온다.
그동안 혜진은 다른 가족이 데리고 온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노느라 바쁘다.
오후의 햇살이 유원지에 비스듬하게 깔리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이 유원지를 떠나기 시작한다. 벤치에 앉아 아이들의 모습을 캠코더로 찍는 현수가 말한다.
“이제 집에 갈까?”
“가기 싫어.”
녀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젊은 한 쌍의 남녀가 비눗방울을 불며 놀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정성껏 비눗방울을 불어주고 여자는 남자 앞에서 온갖 귀여운 척 교태를 부리며 비눗방울을 톡톡 터트리고 있다.
날아다니는 비눗방울을 본 녀석들이 젊은 남녀 주위로 뛰어간다. 젊은 남자가 여자를 위해 정성껏 불어서 만드는 비눗방울을 녀석들은 보이는 족족 손과 발을 이용해서 사정없이 터트려버린다. 눈치 없는 녀석들의 행동에 젊은 남녀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젊은 남녀의 애정에 끼어들어 사정없이 방해하는 개구쟁이 녀석들. 그렇지만 더 뻔뻔한 인간은 이 녀석들의 만행을 웃으면서 캠코더로 찍고 있는 현수다.
이제 겨우 아이들을 달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현수. 혜진은 현수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며 말한다.
“아빠, 솜사탕.”
“글쎄.”
“으으으응, 아빠~”
“가다가 솜사탕 보이면 사줄게.”
현수 말에 기분이 좋은 혜진은 스텝을 밝듯 촐랑거리며 걷는다.
현수는 석양을 바라보며 정체되는 길을 느릿느릿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길가에 솜사탕 장수가 보이자 현수는 운전석 위의 거울을 통해 뒷자리의 혜진을 바라본다.
혜진과 인주는 자동차 뒷자리에 누워 잠자고 있고, 한주 역시 미라의 품에 안겨 자고 있다.
“녀석들이 많이 피곤했나 보네.”
현수의 말에 미라가 웃으며 맞장구 친다.
“왜 아니겠어요?”
현수는 그 말을 듣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