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수 Nov 13. 2024

놀이공원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36화 - 놀이공원

퇴근한 현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평소와는 달리 현관으로 쫓아와 현수를 맞이하는 녀석들이 한 놈도 없다. 현수는 괜히 뻘쭘해진다. 

그런데 아이들은 좁아빠진 1인용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다. 등을 소파에 기대고 앉아 있는 혜진, 혜진 바로 옆 좁은 공간에 비집고 앉아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있는 한주, 그리고 비교적 바른 자세로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는 인주. 그렇게 TV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녀석들은 현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한 현수가 아이들이 보고 있는 TV 앞에 막아선다.

방자한 자태로 소파 안쪽에 앉아 있는 혜진이 먼저 소리 지른다.

“아, 아빠 안 보이잖아!”

뒤이어 소파 앞쪽에 앉아 있는 인주가 애원하듯 말한다.
 “아, 아빠~”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괴고 거만하게 누워있는 한주, 똘마니처럼 나서서 현수를 밀치며 소리친다.

“아이씨, 아빠, 비켜!”

한주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 TV를 본다.


현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상의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내서 흔든다.

“이게 뭘까요?”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한주가 다시 일어나 현수의 손에서 티켓을 낚아채서 가져간다.

녀석들 중에서 좀 배웠다고 할 수 있는 4학년 혜진이 한주가 쥐고 있는 티켓을 뺏어서 본다. 티켓을 본 혜진이 방자한 태도에서 갑자기 공손한 자세로 확 바뀐다.

“어? 놀이공원! 놀이공원 가는 거야?”

거만하게 대답하는 현수.

“응!”

“우와.”

혜진의 환호. 인주와 한주도 덩달아 소리친다.

“야아~”

주방에서 그릇을 씻는 미라가 묻는다.

“웬 표예요?”

“전에 아이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놀이공원 할인권을 구했어.”

“잘 되었네요.”

“아빠, 내일 가!”

그제서야 녀석들은 현수에게 관심을 보이며 소리친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바지런을 떤다. 밥도 먹기 전에 벌써 옷을 차려입고 기다리는 녀석들. 아이들이 작은방 방문을 열고 현수를 조른다.

“아빠, 빨리 가.”

“밥 먹었어?”

“아니.”

현수는 오래간만에 근엄하게 아이들에게 말해본다.

“밥을 먹어야 가지.”

녀석들은 미라에게 빨리 밥을 달라고 조른다. 

한껏 치장한 혜진은 작은 손가방까지 들고 있다. 현수는 혜진의 모습을 보고 기가 차서 웃는다.


가족들이 자동차에 오른다. 기대에 찬 녀석들. 현수가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묻는다.

“좋아?”

역시 똘마니 같은 한주가 크게 대답한다.

“좋아!”

녀석들의 등쌀을 피하려고 조수석에 앉아 있는 미라는 들떠있는 아이들을 뒤돌아보며 웃는다.


현수가 매표소에서 할인 티켓으로 이용권을 구매한다. 그리고 현수는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한주가 현수를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말한다.

“아빠, 고마워.”

한주가 현수에게 새삼스럽게 고맙다고 말하자 현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한주가 현수에게 다시 보인다.


놀이공원에 들어선 아이들이 놀이공원의 색다른 모습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현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레일 위를 달리는 깜찍한 자동차에 함께 탑승한 혜진과 인주, 그 뒤 자동차에 미라가 한주를 데리고 타고 가면서 혜진과 인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혜진은 커다란 바이킹 놀이기구를 현수와 함께 올라탄다. 공중에서 뒤집힐 듯이 무섭게 움직이는 거대한 바이킹 놀이기구를 대담하게 타고 있는 혜진을 인주와 한주는 경외의 시선으로 올려다본다.

나이 때문에 아직 일반 놀이기구를 탈 수 없는 한주는 앙증맞은 어린이 전용 놀이기구를 타며 해맑게 웃는다. 집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거만한 한주가 여기에서는 조무래기 꼬마들과 섞여서 놀이기구를 타는 신세가 되어 있다. 그래서 현수는 그런 한주를 보며 웃는다.

놀이공원을 몰려다니는 가족, 아이들은 가판대에 전시된 바람개비가 달린 머리밴드와 요상한 장난감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아이들은 미라의 눈치를 보며 현수 옆으로 다가가 와 조르기 시작한다.

“아빠, 저것 사줘.”

현수는 아이들의 요구를 못 들은 척하며 미라 옆으로 간다. 미라의 눈치를 보며 더 이상 현수를 조르지 못하는 아이들. 현수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얍삽하게 웃는다.


장난감을 조르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얼음 주스를 사달라고 보챈다. 얼음 주스를 담는 플라스틱 컵의 사이즈가 녀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현수는 아이들을 꾄다.

“슬러시를 우선 한 컵으로 나누어 먹고 난 다음에 모자라면 또 한 컵 사다 줄게.”

아이들 각자가 불만스럽지만 그렇게 하는 것으로 현수와 타협을 본다.

아이들은 테이블 한쪽에 몰려 앉아 큰 플라스틱 컵에 든 얼음 주스를 먹는다. 각자의 빨대를 한꺼번에 컵에 꽂아 머리를 맞대고 주스를 빨아서 먹는 녀석들. 현수는 개구쟁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캠코더로 찍는다. 녀석들은 얼음 주스 한 컵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다시 놀이기구를 찾아 돌아다닌다.


현수와 아이들은 전자총으로 과녁 맞히는 게임을 한다. 시작 신호음과 함께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하자 각자의 사격 점수가 전광판에 나타난다. 인주가 전광판에 나타난 자신의 점수를 보며 소리친다.

“아이씨!”

자신의 낮은 점수를 본 인주는 화를 내며 도망간다. 현수는 인주를 잡으러 뒤쫓아 간다.

“인주야, 인주야.”

현수는 인주를 달래서 다시 자리로 데려온다.

“아빠가 총을 쏴 줄게.”

인주의 총을 잡고 대신 쏘는 현수, 그렇게 억지로 인주의 기분을 맞춰준다.


녀석들은 놀이공원에 돌아다니는 마스코트를 신기한 듯이 본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여우 마스코트가 혜진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민다. 혜진도 어색하게 손을 내밀어 잡는다. 현수가 그 모습을 캠코더로 찍으려 하자 여우 마스코트가 혜진의 뒤에 서서 포즈를 취해준다. 그러나 인주와 한주는 여우 마스코트를 보며 겁에 질려있다. 그 모습을 본 미라가 인주와 한주에게 말한다.

“우리 인주하고 한주도 저기 여우 언니하고 사진 찍을까?” 

그 말을 들은 녀석들은 마스코트가 자기들에게 다가올까 봐 무서워 뒷걸음질 친다.


아침부터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는 가족은 지치기 시작한다.

“아빠, 다리 아파.”

한주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자 현수는 한주를 업어준다. 현수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지친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행히 야외극장 앞에 길게 놓인 의자가 있어 그리로 아이들을 데려간다. 때마침 야외극장에서 화려한 동화 뮤지컬 공연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야외극장 의자에 나란히 앉아 현란하게 펼쳐지는 뮤지컬 공연에 빠져든다. 얌전해진 녀석들을 보며 현수가 묻는다.

“재미있어?”

녀석들은 현수의 물음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채 뮤지컬에 눈을 꽂고 있다. 한주는 혜진의 가방을 목에 걸고 뮤지컬을 보고 있는 모습이 현수 눈에는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보인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던 뮤지컬이 종료된다. 아이들 얼굴에 피곤함이 엿보인다. 현수는 이때다 싶어 아이들에게 집에 가자고 꼬드긴다.

“집에 갈까?”

미라도 아이들에게 집에 가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엄마도 힘들어, 쓰러질 것 같아.”

녀석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현수를 따라 놀이공원에서 빠져나간다.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

“놀이공원에서 아이들 따라다니는 것도 힘드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미라도 현수 말에 동의한다.

“내 말이 그 말이어요, 차라리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이 더 편한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소리친다.

“놀이공원이 더 좋아!”

“여기 얼마나 비싼데, 안 돼.”

미라의 한마디에 녀석들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인주가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힘들었지?”

현수는 그런 인주를 대견한 듯 백미러를 바라보며 말한다.

“인주 이제 다 컸네, 아빠에게 이런 말도 할 줄 알고….”

인주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 자동차 백미러를 다시 쳐다본다.


한주가 뒷좌석과 뒷유리창 사이의 갑 티슈를 올려놓은 좁은 공간에 올라가서 누워있다. 현수가 놀라며 한주에게 말한다.

“어, 한주, 언제 거기 올라갔어? 내려와”

한주는 현수의 말을 무시하며 그냥 누워있다. 현수는 다시 한주에게 소리친다.

“빨리 내려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한주. 조수석에 앉은 미라가 한주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나선다.

“한주야, 너 말 듣지 않을래?”

미라가 말해도 천하태평으로 누워있는 한주. 이제 혜진도 나선다.

“야, 빨리 내려와.!”

그래도 배짱 좋게 누워있는 한주. 현수가 이런 막무가내 한주 녀석에게 법과 경찰을 들먹인다.

“한주가 교통법을 위반하고 있네, 저러면 경찰에 잡혀가는데”

한주가 움찔하는 반응을 보인다. 현수의 말이 효과가 있다. 다시 한번 한주에게 겁을 주는 현수.

“안 되겠다, 경찰서로 가야겠다.”

그제야 한주가 뒷좌석으로 슬며시 내려온다.

“한주 내려왔어요, 이제 경찰서 안 가도 될 것 같아요.”

미라의 능청스러운 말로 소동을 마무리한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혜진이 집으로 들어서며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놀이공원에 또 가.”

“안 돼,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돼.”

이어지는 한주의 당당한 목소리.

“그래도 나는 갈래!”


가족들의 왁자지껄한 대화를 배경으로 안방 벽에 놀이공원에서 본 놀이기구 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혜진이 낙서한 유행가 제목과 가수 이름이 늘어나며 시간이 흘러간다.

이전 05화 둘째의 입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