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40화 - 청소하는 개구쟁이들
일요일 아침. 어린 삼 남매가 책상 앞에 나란히 서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혜진은 모니터 화면에 펼쳐지는 동요 가사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노래를 부른다.
“♪도리 도리 도리 도리 감자도리 ♬빨강 망토 작은 눈에 감자도리 ♪고구마가 되고 싶어 꿈을 꾼다♬,,,”
감상적인 음률의 동요를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부르는 혜진. 인주와 한주는 모니터 화면을 함께 바라보며 혜진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미라, 혜진의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함께 떠나봐요. 꿈을 찾아, ♬내일이면 난 소원 이뤄, ♪고구마 돼 있을 것.”
혜진의 노래가 끝나자 미라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 청소하는데 저쪽으로 좀 가 있어.”
일인용 소파로 가서 앉는 혜진과 한주, 그러나 2학년 인주는 미라의 청소를 돕겠다고 한다.
“엄마, 내가 청소할게.”
“어머, 인주 다 컸네, 청소를 다 하겠다고 하고.”
미라는 기특하다는 듯이 인주를 칭찬하며 빗자루를 건넨다. 인주 혼자 효도하는 꼴을 못 보는 5학년 혜진도 나선다.
“엄마, 방은 내가 청소할게.”
미라는 미심쩍어하며 묻는다.
“그럴래? 청소 잘할 수 있어?”
“응.”
혜진은 인주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뺏어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빗자루를 뺏긴 인주가 소리친다.
“누나, 그거 내 것이야!”
미라는 거실과 안방을 어차피 자신이 청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괜히 나서는 아이들의 충정을 막을 필요가 있겠냐 싶어서 그냥 맡겨둔다.
인주는 청소한답시고 방바닥에 놓인 장난감과 과장 봉지 등을 손으로 치운다.
혜진은 방안 바닥에 있는 책과 베개 등을 그대로 둔 채 어설프게 빗질한다. 미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청소를 먼저 해야겠네.”
미라가 세면대를 수세미로 비누칠한다. 이번에는 한주가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욕조에 서서 샤워 헤드를 들고 설치기 시작한다. 미라는 한주가 들고 있는 샤워 헤드를 뺏어서 비누칠한 세면대에 물을 뿌린다.
미라가 세면대 청소를 마치자 다시 샤워 헤드를 낚아채는 한주.
“하이구, 한주야, 옷 다 젖잖아.”
미라는 변기를 청소하기 시작하고 한주는 나름대로 물살이 뻗치는 샤워 헤드를 들고 욕조를 청소한답시고 설친다.
“한주야, 미끄러워 넘어진다.”
이미 옷을 다 젖은 한주. 배수구를 막아놓은 욕조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한주는 아예 그곳에 주저앉아 첨벙거리며 놀기 시작한다. 이를 본 미라가 한주에게 말한다.
“자, 만세하고 손들어.”
미라가 할 수 없다는 듯 한주의 옷을 벗긴다.
인주가 미라에게 다가온다.
“엄마, 청소 다 했어.”
“그래?”
미라는 미심쩍어하며 거실로 간다.
인주가 청소했다는 거실을 바라보는 미라.
바닥에 있던 물건만 치워졌을 뿐 청소 전과 별반 차이 없는 거실 상태. 베란다 커튼 걸이에 걸려있는 인주의 앙증맞은 양말 하나, 인주가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랑한다.
“엄마, 이것 봐, 잘했지.”
그것도 청소라며 뿌듯해하는 인주의 표정을 보면서 미라는 기대를 포기한 듯 웃는다.
“그래, 잘했어, 빗자루는 어디 있지?”
“누나가 가져갔어.”
미라는 혜진이 청소하는 안방으로 간다.
혜진은 거울을 보면서 유행가를 불러가며 춤사위 동작을 하고 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수줍어서 말도 못 하고….”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빗자루가 보인다.
“청소 다 했어?”
“조금 있다가 다시 할 거야.”
춤은 추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혜진. 미라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작게 되뇌고는 바닥에 있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안방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저리로 좀 비켜봐.”
거울 앞에서 알짱대는 혜진에게 잔소리하며 방바닥을 빗자루로 쓴다. 미라의 타박에 혜진은 입을 삐쭉거리며 안방에서 나간다.
욕조에서 놀다가 방바닥에 물을 흘리며 안방으로 들어오는 한주, 장난감 통에서 조그마한 물뿌리개 장난감을 들고 다시 나간다.
미라는 방바닥에 한주 몸에서 흘러내린 물을 보며 한숨 쉰다.
“하이구 참! 한주야.”
미라는 걸레로 물기를 닦아가며 안방 청소를 계속한다.
물이 채워진 화장실 욕조에서 인주와 한주가 본격적으로 물장난을 한다. 플라스틱 물고기와 조그마한 물뿌리개를 가지고 노는 녀석들. 잠시 후 수영복을 갖춰 입은 혜진도 욕조에 들어간다.
현수가 화장실 가기 위해 작은방에서 나온다.
“요것들 봐라.”
아이들이 화장실 욕조에 옹기종기 모여 노는 것을 보고 웃는다. 좁은 욕조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본 현수는 아이들을 바다로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바다로 놀러 갈까?”
“응!”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현수는 거실에서 청소하고 있는 미라를 보며 말한다.
“오늘 아이들 데리고 바다에 갈까?”
미라가 난색을 하며 말한다.
“오늘 아파트 재개발 설명회에 가야 해요.”
“몇 시에 하는데?”
“두 시에 한대요. 다른 날 아이들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다른 날?”
현수는 욕조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녀석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녀석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냥 우리끼리 가면 안 될까?”
현수와 아이들끼리 간다는 말에 미라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지한다.
“무슨 말이에요. 위험해서 안 돼요, 더군다나 바닷가에.”
미라의 말에 아이들은 탄식과 함께 실망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아빠, 가자.”
한주가 가자며 난리를 친다.
“엄마, 으으으응~.”
혜진은 미라에게 사정하듯 투정을 부린다.
아이들에게 괜히 바람을 불어넣었다 싶어 미안한 현수, 얼른 작은방으로 돌아간다.
청소를 모두 마친 거실, 아이들이 작은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다. 미라는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을 바다에 못 가게 막은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TV에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을 본 한주가 소리친다.
“야, 바다다!”
“바다에 가면 재미있는데….”
혜진이 바다 전경이 펼쳐지는 TV 화면을 보며 말한다. 혜진의 말에 동조하는 인주.
“내 말이.”
혜진이 미라를 힐끗 본 후 푸념하듯 말한다.
“엄마가 반대해서 못 가는 거야.”
“내 말이!”
혜진의 불만에 입을 빼쪽거리며 강하게 동의하는 인주.
인주의 말을 들은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인주는 엄마가 하는 말 하네.”
‘내 말이 당신 말과 같다’라는 의미로 ‘내 말이’하며 무심코 썼던 말을 녀석들이 이렇게 써먹을 줄 미라는 몰랐다. 어린아이가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우습기도 하다.
어쨌든 아이들의 은근한 압박에 마음이 약해지는 미라.
미라가 툭 던지듯 아이들에게 묻는다.
“바다 가면 아빠 말 잘 들을 수 있어?”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대답한다.
“응!”
그런데 한주는 벌써 현수가 있는 작은방으로 내달린다.
“아빠, 바다에 가자.”
미라는 순간 아차 하며 속으로 되뇐다. ‘대체 내가 뭘 한 거지? 그냥 물어보기만 했을 뿐인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미라는 작은방에서 나오는 현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아이들을 당신 혼자서 데려갈 수 있겠어요?”
현수가 호기롭게 말한다.
“이제 7월 초라 해수욕하러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괜찮을 거야.”
“그래도 바닷가인데….”
현수는 미라를 안심시키듯 말한다.
“거기는 경사가 완만한 바닷가라 몇십 미터 나가도 물이 허리에도 안 올라와.”
녀석들은 미라와 현수가 말하는 것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뭔가 미심쩍어하면서도 걱정하는 미라의 표정.
미라가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바닷가 가면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응, 잘 들을게.”
신이 나서 크게 대답하는 녀석들. 그래도 미라는 미심쩍다.
미라는 아이들의 수영복과 놀이기구를 챙겨준다. 신이 난 아이들.
현수는 캠핑 도구를 담은 커다란 쇼핑백과 텐트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는다. 미라도 아이들이 입을 옷가지가 든 가방을 트렁크에 싣는다.
자동차 올라서 바다에 간다는 것에 들떠있는 아이들.
미라는 자동차 뒷문을 열어 허리를 숙여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응!”
힘차게 대답하는 녀석들. 미라는 아이들에게 아빠 말 잘 들으라고 다시 한번 신신당부하며 아이들을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