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39화 - 화려한 거짓말
소라게를 묻어주러 나갔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앞장서서 들어오는 한주는 장난감 손 삽을 들며 신이 난 목소리로 자랑한다.
“엄마, 소라게 묻어줬어.”
뒤이어 인주가 아무 말 없이 들어온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혜진은 세상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이다.
아침 식사글 준비하던 미라는 시무룩한 혜진에게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소라게 하늘나라로 잘 보내주고 왔니?”
“...”
혜진은 소라게 한 마리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대답을 안 한다. 그러나 눈치가 없는 한주는 소라게가 어떻게 하늘나라로 가는지 궁금하다. 분명 땅에 묻었는데….
“하늘나라에 어떻게 가?”
혜진이 깊은 상실감에 빠진 이 상황에서 한주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미라. 그래서 미라는 한주에게 대답 대신 심부름을 시킨다.
“한주야, 아빠한테 가서 ‘아침 식사하세요’하고 말하렴.”
한주는 작은방으로 뛰어가서 문을 열며 소리친다.
“아빠, 밥 먹어!”
한주 혼자 제일 바쁜 아침. 그래서 한주는 신이 난다.
현수 가족은 밥상에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한주는 소라게가 하늘나라로 어떻게 갔는지가 여전히 궁금하다.
“아빠, 소라게.”
미라가 혜진의 눈치를 보며 한주의 말을 가로막는다.
“한주야, 밥 먹자.”
원래 눈치 없는 한주, 다시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 소라게.”
다시 마라가 끼어들며 한주의 말을 막는다.
“한주야, 밥 다 먹고 말하자.”
한주는 말을 못 하게 하는 미라를 보며 소리친다.
“아, 엄마, 왜?!”
한주하고 붙어봤자 시끄럽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한 미라는 한주 제지하는 것을 포기한다. 철없는 한주가 현수에게 제대로 묻는다.
“아빠, 소라게는 하늘나라로 어떻게 가?”
느닷없이 밥상머리에서 황당한 질문을 받은 현수, 어떻게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 내야 할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혜진의 표정을 보니 그럴 상황도 아닌 것 같다. 혜진의 눈치를 보는 현수는 그저 막막하다.
그때 천재 인주가 나선다. 언젠가 TV로 심청전 인형극을 봤던 인주는 용궁이 생각난다.
“소라게는 하늘나라로 안 가, 바다 용궁으로 가.”
유치원에서 토끼의 간이라는 동화에서 용궁을 들었던 한주도 맞장구를 친다.
“형아 말이 맞아, 바다 용궁, 바다 용궁으로 가는 거야.”
그들의 알량한 지식으로 미라의 관념을 여지없이 뒤집어버리는 녀석들. 미라는 민망하겠지만 현수는 그런 녀석들이 기특하다.
묵묵히 밥을 먹던 혜진이 말을 한다.
“아빠, 소라게 한 마리 더 사줘.”
안 그래도 슬퍼하는 혜진에게 현수는 잔인한 진실을 말해준다.
“아빠가 한 마리 더 사줄 수 있는데, 그래봤자 소라게는 집에 있으면 오래 못 살아.”
혜진이 낮은 목소리로 현수에게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소라게는 원래 살던 바다에서 살아야 오래 살아.”
혜진은 다시 말없이 식사한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현수에게 혜진이 다가와서 말한다.
“아빠, 바다에 가자.”
“바다는 왜?”
“바다에 소라게 놓아주러.”
혜진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하고 헤아리는 현수. 현수의 마음이 짠해 온다. 그러면서 묻는다.
“오늘?”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미라가 혜진을 위해 나선다.
“오늘은 날도 좋은데 바다에 가요.”
현수가 혜진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혜진이 소라게 놓아주러 바다로 가야겠지?”
눈치 없는 한주가 또 나선다.
“소라게 나한테 주면 안 돼?”
가족들은 한주의 말을 들은 척조차 않자 철없는 한주가 떼를 쓰며 말한다.
“소라게 나 줘!”
소라게를 바다 용궁으로 돌려보내 주자고 현수는 힘들게 한주를 설득한다.
소라게 채집통을 든 혜진이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선다.
자동차 뒷자리에 소라게 채집통을 품에 안고 있는 혜진. 현수가 혜진에게 묻는다.
“소라게 놓아줘도 안 울 거야?”
“안 울어, 소라게가 좋아할 거야.”
비장하게 말하는 혜진, 그러나 한주는 생각이 다르다.
“소라게는 우리 집도 좋아해!”
소라게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까운 한주, 소라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가족이 탄 자동차가 확 트인 간척지 도로를 달린다.
인주는 TV에서 봤던 넓은 평지를 뛰어다니는 공룡이 생각난다.
“엄마, 여기에 공룡이 살았어?”
미라가 인주의 뜬금없는 질문에 성의 없이 대답한다.
“아니.”
그러자 혜진이 미라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엄마, 공룡이 여기에 살았었을 수도 있잖아.”
미라가 혜진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수긍한다.
“그럴 수도 있겠네.”
운전하는 현수는 혜진의 논리적인 사고에 감탄한다.
자동차가 해안가에 가까워지자 바닷냄새가 느껴진다. 채집통 안의 소라게가 달그락거린다. 그것을 본 혜진이 신기해하며 말한다.
“아빠, 소라게가 움직여.”
“소라게가 자기 살던 곳으로 오니까 좋은가 봐.”
인주와 한주가 몸을 굽혀 소라게 채집통에 코를 대고 보면서 소리친다.
“어, 소라게가 움직여,”
“야, 움직인다!”
혜진은 소라게가 공룡처럼 커지는 것을 상상한다. 자동차 차창 밖으로 집채만 한 거대한 소라게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을 혜진은 머릿속으로 그린다.
가족이 탄 자동차가 해변가 주차장에 다다른다.
자동차에서 후다닥 내린 인주와 한주가 수평선을 보고 신이 나서 모래밭을 뛰어간다. 짐을 챙겨서 뒤따라가는 미라가 저 멀리 앞서서 뛰어가는 녀석들에게 소리친다.
“천천히 가, 넘어진다.”
혜진은 채집통을 품에 안고 현수와 함께 해변 쪽으로 걸어간다.
바닷가 모래사장과 드문드문 조그만 갯바위가 있는 바닷가에 다다른다.
“아빠, 여기에 소라게 놓아줘?”
“여기에 놓아주면 사람들에게 또 잡힐 수 있으니 저쪽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놓아주자.”
“그래.”
현수는 인주와 한주를 보면서 말한다.
“여기서 엄마하고 기다려, 아빠가 누나하고 갔다 올게.”
여전히 소라게에 미련이 남아 있는 한주가 말한다.
“아빠, 나도 갈래.”
“저기는 위험하고 무서워.”
미라도 나서며 한주를 제지한다.
“저기 정말 무서워, 넘어지면 피가 나.”
현수는 혜진 손을 잡고 커다란 갯바위가 솟아있는 암석 지대를 향해 걸어간다.
현수는 혜진은 갯바위에 발을 내디디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현수의 한쪽 손에는 채집통을 들고 있다. 갯바위 틈이 크게 벌어진 곳에 멈춘 현수가 혜진에게 말한다.
“이쯤에서 소라게를 놓아주면 될 것 같아.”
“여기가 좋아?”
“응. 소라게가 여기서는 잘 안 잡힐 것 같아.”
현수가 들고 있던 채집통을 혜진에게 건넨다. 혜진은 채집통에서 소라게를 꺼내 갯바위 틈에 조심스럽게 놓는다.
“소라게야, 잡히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
현수는 그런 혜진의 모습을 지켜보며 말한다.
“소라게가 좋아할 거야.”
현수는 혜진이 놓아준 소라게가 바위틈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 가자.”
“소라게야, 잘 있어.”
현수는 혜진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며 갯바위 위를 걷는다.
현수와 혜진이 빈 채집통을 들고 인주와 한주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파도가 부서지면서 잔잔히 몰려오는 물살 속에서 놀고 있는 인주와 한주. 녀석들은 머리통만 한 돌을 뒤집으며 뭔가 잡고 있다.
“뭐 하고 있어?”
한주가 바닷물이 든 페트병을 현수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말한다.
“게 잡고 있어.”
현수가 바닷물이 담긴 페트병을 들어서 본다.
어린 녀석들에게 재수 없이 잡힌 바닷게 두 마리, 손톱보다 작은 바닷게들이 페트병 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다.
현수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주에게 물어본다.
“이것으로 뭘 하려고?”
“집에 가져갈 거야.”
역시나 녀석은 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방금 소라게를 놓아주고 돌아온 혜진이 발끈한다.
“집에 가져가면 안 돼, 죽어.”
“아니야, 안 죽어, 나도 게 키울 거야.”
소라게를 키우는 혜진이 부러웠던 한주, 바닷게가 공짜로 굴러왔는데 포기할 리가 없다.
소라게를 놓아주러 왔는데 바닷게를 들고 가야 한다니. 가족은 그저 어이가 없다.
현수가 한주에게 겁을 줘가면서 설득하기 시작한다. 현수는 양손을 한주에게 향해 들고 양손 손가락으로 집는 동작을 과장되게 보여주면서 말한다.
“바닷게가 크면 무서워, 집게로 이렇게 꽉 물어.”
한주는 현수의 말을 반박한다.
“아냐, 안 물어!”
떼를 쓰는 한주. 그 모습을 본 미라도 적극 나선다.
“바닷게 크면 참 무섭죠, 물리면 피가 막 나요.”
미라의 말에 현수가 현실감을 더한다.
“어휴, 말도 마, 오늘 바닷게 파는 곳에 가서 한 번 볼까, 큰 바닷게가 얼마나 무서운지.”
겁을 먹기 시작하는 한주가 한층 수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아냐, 안 물어.”
순진한 인주가 현수의 말에 넘어간다.
“아빠, 바닷게가 어떻게 무서워?”
현수는 오른쪽 손가락을 가위처럼 해서 왼쪽 인지 손가락을 자르는 흉내를 내며 말한다.
“아빠 손가락도 집게에게 물리면 이렇게 딱하고 잘려버려."
현수의 말에 한주는 망연자실해진다. 그러면서 어린 한 주가 울기 시작한다. 현수는 그런 한주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한주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페트병을 뒤집어 바닷게를 놓아준다.
현수는 한주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한주를 안고 자동차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