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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Nov 18. 2024

소라게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38화 - 소라게

출근하는 현수가 가방을 들고 작은방에서 나온다. 안방에서 미라가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자, 일어나야지.”

현수가 안방에 대고 말한다.

“회사 갔다 올게.”


현관에 인주가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신발. 현수는 앙증맞은 아이들 신발을 성큼 넘어서 현수의 구두로 발을 내딛는다. 


방금 잠에서 깬 듯한 인주가 안방에서 화들짝 튀어나온다. 그리고 색종이로 만든 꽃을 현수에게 건넨다.

“아빠, 선물.”

신발을 신던 현수가 종이로 엉성하게 만든 붉은 카네이션 받아서 들며 웃는다.

“인주가 아빠에게 선물하려고 만들었어?”

인주가 뿌듯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응,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같이 만들었어.”

뒤따라 나온 혜진과 한주도 인주가 현수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인주 혼자 효도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혜진, 급히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급한 대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세트를 주문할 때 곁가지로 나왔던 감자튀김을 가지고 나온다.

“아빠, 어버이날 선물.”

혜진이 건네는 선물을 받는 현수. 감자튀김이 삐죽이 튀어나온 작은 종이봉투 포장지를 보며 현수가 웃으면서 말한다.

“고마워, 아빠가 저녁때 와서 먹을게.”


현수는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과 감자튀김 봉지를 들고 작은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현수가 아이들에게서 선물 받은 종이 카네이션꽃과 감자튀김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현수가 나가려다가 돌아서서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 카네이션과 감자튀김을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는다.


작은방에서 나온 현수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미라에게 말한다.

“갔다 올게.”

“오늘도 늦으세요?”

“글쎄, 모르겠어.”

현수가 대답하며 미라를 바라본다.

종이로 만든 엉성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있는 미라. 현수가 그것을 보며 웃는다. 그러고는 인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인주야, 아빠는 회사 갔다 와서 인주가 준 꽃 달게.”

“응, 알았어.”

인주의 대답에서 하늘을 찌르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 옆의 한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수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아빠, 나도 선물할게!”

“응, 그래, 고마워.”

현수가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잡동사니 물건들이 들어있는 와이셔츠 상자를 열어 뭔가를 열심히 고르는 한주, 자기가 가지고 있자니 쓸모없고, 남 주자니 아까운 ‘보물’들을 고심하며 고른다.



늦은 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현수는 어둠 속에서 소라게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내 현관 천장에 있는 등이 자동으로 켜지자 그 소리가 멈춰진다. 신발을 벗는 현수는 신발장 위에 놓인 소라게 채집통을 들여다본다. 움직임이 없는 소라게들.

현수가 작은방으로 들어가자 현관의 등이 서서히 꺼진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소라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현수가 잠자고 있는 작은방, 문밖에서 혜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소라게 한 마리가 안 움직여.”

잠자던 현수가 혜진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혜진은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채집통 안의 소라게를 바라본다. 

미라가 현관으로 다가와 채집통을 들어서 기울여본다. 소라게 한 마리가 떼구루루 구른다.

“에이, 한 마리 죽었네.”

미라의 말을 못 믿겠다는 혜진.

“아냐, 안 죽었어!”

“죽었어, 이제 안 움직이잖아.”

“죽으면 안 돼.”

혜진이 울먹이는 소리로 말하자 한주와 인주가 신발장으로 다가온다.

“죽었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한주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

“그래, 죽었어.”

미라가 아쉬운 듯이 말하자 인주도 한마디 보탠다.

“불쌍하다.”

혜진이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어떻게 해 엄마, 살릴 수 없어?”

“죽었는데 이제 어쩔 수 없어.”

혜진은 망연해진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혜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리로 듣고 있는 현수. 

그리고 이어지는 혜진의 목소리.

“아빠에게 말해 볼 거야!”

현수는 혜진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눈을 감고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누워 곤히 자는 척한다. 

이내 작은방의 문이 열리고 혜진이 들어오면서 말한다.

“아빠! 아빠!”

현수는 자는 척하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혜진이 현수의 어깨를 흔들며 말한다.

“아빠, 일어나 봐, 소라게가 죽었어.”

현수가 자는 척한다고 해서 포기할 것 같지 않은 혜진, 현수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현수가 놀라는 척 눈을 크게 뜨고 화들짝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뭐? 소라게가 죽었다고?”

“응, 소라게 좀 살려줘.”

혜진이 애절한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현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린다.

그때 한주가 작은방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황망한 상황에서 눈치 없이 이어지는 한주의 말.

“아빠, 선물이야.”

한주가 한 움큼 쥔 선물을 현수에게 내민다.

“무슨 선물.”

“아바이날 선물.”

한주에게 어려운 ‘어버이’라는 말이나 ‘아바이’라는 말은 어쨌든 다 똑같은 말이다. 현수는 한주가 건넨 선물을 살펴본다.

어디서 주워서 온듯한 피규어의 부속품인 손톱만 한 방패와 성냥개비만 한 창 그리고 일회용 봉투컵에 담긴 사탕….

한주가 선물이랍시고 준 것들이 어이가 없어 웃는 현수, 그렇지만 한주의 갸륵한 효심이 느껴져 감동이 밀려온다. 

소라게를 잃어 경황이 없는 혜진이 애절한 목소리로 현수에게 다시 매달린다.

“아빠, 소라게 좀 어떻게 해 봐!”

현수는 이 상황이 감정적으로 너무나 혼란스럽다. 소라게를 잃은 혜진을 위로해 줘야 할지, 아니면 한주의 황당한 선물에 웃어야 할지, 또 아니면 한주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해야 할지…. 웃을 수도 없고 슬픈 척할 수도 없다.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현수는 다시 누워 눈만 멀뚱멀뚱거린다. 현수의 애매한 모습을 본 혜진이 소리친다.

“아빠 싫어.”

결국 현수에게 실망한 혜진이 투덜거리며 작은방에서 나가면서 이 이상한 상황이 종료된다.


한주도 죽은 소라게를 보러 가겠다며 작은방에서 나가자 누워 있던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현수는 한주가 준 선물을 어제 받은 인주의 종이 카네이션과 혜진의 말라비틀어진 감자튀김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그러고는 충전 중인 휴대폰을 들고 책상 위에 놓인 선물들을 찍는다. 그리고는 그 선물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소라게 채집통이 교자상 위에 놓여있다.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라는 채집통 안으로 나무젓가락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죽어 있는 소라게를 나무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서 꺼낸다. 

이 모습을 아이들은 말도 잊은 채 엄숙하게 바라본다. 심지어 혜진은 울먹이기까지 한다.

미라는 나무젓가락으로 집은 소라게를 펼쳐놓은 화장지 위에 올려놓는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이 과정을 바라보는 혜진. 인주, 한주도 심각하다.

미라는 화장지 위에 올려진 죽은 소라게를 조심스럽게 화장지로 감싼다. 그리고 화장지로 몇 겹을 더 감싼다.

“자, 이거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고 와.”

이제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혜진에게 미라는 화장지로 감싼 소라게를 건넨다.

혜진은 미라가 건네는 화장지로 감싼 소라게가 무서워서 받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때 곁에 있는 한주가 혜진에게 건네려는 죽은 소라게를 향해 손을 내민다.

“엄마, 내가 가질게.”

이 상황에서 죽은 소라게의 소유권을 탐내는 몰염치한 한주. 

혜진은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용기를 낸다.

“안 돼! 내가 묻어줄 거야!”

혜진이 미라가 손에 든 화장지로 감싼 소라게를 향해 얼른 두 손을 내민다.


혜진이 소라게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밖으로 나가자 인주와 한주도 뒤따른다.

잠시 후 한주가 급히 돌아와서 플라스틱 장난감 손 삽을 들고 다시 나간다.


그렇게 어버이날 다음 날은 ‘소라게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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