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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Dec 30. 2024

별리

연재소설 : 러브 코딩 52화 - 별리

어머니가 출근하는 민수의 새 넥타이를 신기한 듯이 바라본다.

“너 그 넥타이 어디서 났니?”

와이셔츠를 입은 후 아무 생각 없이 목에 끼운 넥타이, 민수는 그제야 재희가 준 넥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별의 아픔이 그의 목을 싸리 하게 감싸온다. 민수는 매고 있는 넥타이가 재희가 준 선물이라고 어머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집을 나선다.



사무실에 출근한 민수는 모니터에 뜬 온라인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민수씨 안녕?”

출근하는 명선이 민수를 지나가며 말하자 민수도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홍대리님.”

“어머, 넥타이가 바뀌었네, 잘 어울리는데.”

민수는 고개 숙여 자신의 넥타이를 쳐다본 후 쓸쓸하게 웃는다.


팀장 회의에서 돌아오던 서부장이 민수를 부른다.

“민수씨, CRM 온라인 화면 다 만들었다면서?”

“예.”

민수는 대답하며 메모한 이면지를 들고 서부장 자리로 쫓아간다.

“여기 좀 앉아봐.”

민수가 옆자리에 앉자 서부장이 묻는다.

“MCCR에서 볼 수 있지?”

“예, MCCR 11번으로 들어갑니다.”

서부장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MCCR 11번이라…. 나왔네. 테스트 데이터가 어떻게 돼?”

“예. 김영희 570513입니다.”

“주민번호 뒷자리는?”

“주민번호 뒷자리 입력하지 않고도 볼 수 있도록 고쳤습니다.”

서부장이 미심쩍다는 듯 민수를 쳐다보자 민수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성명과 생년월일로 파일을 READ 기능이 아니라 READ NEXT 기능으로 검색하기 때문에 주민번호 뒷자리 입력하지 않고도 조회할 수 있습니다.”

서부장은 민수가 불러준 대로 키보드를 치자 화면이 전개된다. 

“아, 그렇군. 여기서 건별 계약을 선택한다는 것이지?”

서부장은 커서를 증권번호 앞의 선택 필드로 옮겨서 스페이스 바와 입력키를 친다. 모니터에 증권번호로 조회하는 보험 계약 조회화면이 펼쳐진다.

“음, 그렇지, 개별 계약 사항….”

그러면서 서부장은 민수에게 우려스러운 듯이 말한다.

“성명과 생년월일로만 검색한다는 것이 좋긴 한데 성명과 생년월일이 같은 계약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 아니야?”

민수는 노트를 보면서 서부장에게 설명한다.

“실제로 그런 건이 있습니다. 김철수 580725를 입력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서부장은 민수가 불러주는 대로 입력한다, 조회화면 위에 별도의 알림창이 뜬다. 알림창 화면에 성명과 주민번호가 같지만, 주민번호가 다른 두 건의 김철수 데이터가 뜬다.

“여기서 선택하면 된다고?”

서부장이 알림창에 뜬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자 다음 화면이 전개된다. 그렇게 서부장은 화면을 몇 번 더 테스트한 후 민수에게 말한다.

“좋아. 에러는 다 잡았어?”

“예.”

“시스템상에 문제가 있거나, 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예, 현업에서도 확인했습니다,”

“좋아 이대로 메인시스템에 반영하자고, 시스템 반영 요청서를 작성해서 가져와.”

민수는 서부장에게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민수는 시스템 적용의뢰서를 작성한다. 프로그램명과 화면에 나타난 프로그램 사이즈를 기입하고 온라인 화면과 관련한 테이블 등을 기재한다. 옆에 있는 명선이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민수를 보며 묻는다.

“어머, 이제 등록하는 거야?”

“예.”

“뿌듯하겠다.”

민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작성한 시스템 반영 요청서 서명한 후 결재판에 끼운다. 뒤이어 영길의 서명을 얻은 후 서부장에게 가져간다.


서부장은 민수가 내민 결제 요청 문서에 서명한 후 결재판을 민수에게 다시 건넨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내가 운영팀장에게 신경 써달라고 전화해 놓을게.”

민수는 서부장에게 미소를 보이며 인사한다. 그리고 결재받은 문서를 복사한 후 원본 문서를 발송함에 넣음으로써 고단했던 일을 마무리 짓는다.


온라인 시스템 개발을 모두 마무리한 민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민수는 개발을 마친 온라인 화면을 턱을 괴고 바라보며 한 손으로 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민수는 가끔씩 전화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게 빈둥거리던 민수는 눈을 들어 벽시계를 바라본다. 6시가 조금 못 된 시간, 민수는 의자에 걸쳐놓은 양복을 한 손으로 들고는 명선과 인주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다른 사람 눈에 뜨이지 않게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민수는 소주 2병과 마른안주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당구장을 들어선다.

상구는 당구공을 닦고 있다가 들어서는 민수를 반긴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민수는 대답 대신 소주병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자 상구가 웃는다. 민수는 비닐봉지를 상구 앞쪽의 TV가 놓인 낮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소주를 마실 유리컵을 가지러 냉장고가 놓인 쪽으로 간다. 상구가 당구공을 닦으며 민수에게 말한다.

“거기 간 김에 음료수 좀 돌려.”

민수는 카운터 옆에 놓인 정산 타이머를 보며 묻는다.

“2번, 5번 당구대에 갖다 주면 되지?”

“3번도 갖다 줘.”

“나 괴로운 사람이다. 너무 시켜 먹지 마라.”

그 말에 상구가 당구공을 닦으며 묻는다.

“떠났어?”

“내일.”

“오늘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

“뭐 하러…, 이제 더 볼 수도 없을 텐데.”

“남녀가 그렇게 쉽게 헤어지는지 알아?”

민수는 상구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종이 팩에 든 음료를 잔에 따른다. 그리고 예닐곱 개의 잔을 쟁반에 담아서 각각의 당구대 옆의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다시 탁자로 돌아온 민수는 들고 온 유리컵에 소주를 채우고 한잔 쭉 들이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구가 웃으며 민수에게 말을 건넨다.

“지랄하지 말고 이리로 와서 당구공이나 닦아, 생각이 복잡할 때는 공 닦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

민수는 귀찮게 구는 상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어서며 한마디 한다.

“제기랄, 돌아버리겠네.”

상구는 웃으면서 자신의 옆자리에 보조 의자를 민수에게 내민다. 민수가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그래, 열심히 닦자.”

상구가 민수를 달래듯 말한다.

“혼자 무슨 맛으로 술을 마셔? 조금 있다가 통닭 시킬 테니 같이 마시자고.”

민수는 당구공을 닦기 위해 목장갑을 손에 낀다. 광약을 무친 헝겊으로 당구공을 닦는 민수, 윤택 나는 당구공 표면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쳐다본다.


닭튀김과 함께 소주를 마시는 민수와 상구. 상구는 담배를 한 모금 내뿜은 후 민수에게 말한다.

“그래도 전화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니야?”

민수는 상구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말한다. 

“뭐 하러…. 이제 인연이 이어지겠어? 쓸데없이 정만 쌓이면 서로가 괴로울 텐데…, 이제 정리해야지. 전화하면 서로만 괴로워.”

“뭘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해? 남녀관계?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가 만나는 거지.”

민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한다.

“내사 모르겠다.”

당구장에 남아 있던 손님이 나간다. 상구는 벽시계를 슬쩍 쳐다보며 말한다.

“나가서 맥주나 한잔 더하자.”

상구의 말에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개발한 온라인 작업이 운영시스템에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찍 출근한 민수는 어제와는 다른 넥타이를 매고 있다.

민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개발한 화면이 모니터에 펼쳐지자 민수는 데이터를 입력하면서 온라인 시스템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반영되었음을 확인한 민수는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고 몸을 뒤로 쭉 뻗으며 혼자만의 성공을 조용히 만끽한다. 

그때 민수 앞에 있는 전화벨이 울린다. 출근 시간 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민수는 재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순간 멈칫한다. 몇 번의 신호가 더 울리고 민수는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든다.

“정보시스템실입니다.”

“민수야, 나야.”

낮고 조심스러운 재희의 말투에 민수는 만감이 교차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당황한다.

“비행기 안 탔어?”

미국으로 가는 재희에게 기껏 한다는 말이 ‘비행기 안 탔어?’라니…. 민수는 수화기를 들고서 바보 같은 자신을 책망한다.

“출국 대기실이야. 비행기 탑승 기다리고 있어.”

“아, 그렇구나….”

통화를 하는 그들은 서로가 말이 없다. 민수가 말을 꺼낸다.

“아침 먹었어?”

“비행기 안에서 먹을 거야. 새벽 일찍 일어나서 공항까지 오다 보니 이제 배가 고파지려 해.”

그리고 재희가 작심하듯이 따진다.

“그리고 지금 밥 먹었냐고 묻는 게 말이 돼? 다른 말 없어?”

역시 재희는 도발적이라고 생각하는 민수, 그러나 민수는 애써 무덤덤하게 말한다.

“응, 잘 가.”

“그래,”

그리고 둘은 또 한동안 말이 없다. 이번에는 재희가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그리고 민수야, 나 때문에 망설이지는 마, 너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그냥 결정해,”

그 말을 들은 민수는 씁쓸히 웃으며 말한다.

“그런 일이 생길까? 하여튼 미국 생활 조심하고.”

“그럼 잘 지내.”

“알았어.”

재희가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를 듣고도 민수는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다. 

소라가 민수 뒤로 지나가며 인사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수는 그제야 수화기를 힘없이 내려놓는다.



<< 러브 코딩 전반부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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