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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Dec 23. 2024

꼬이는 심사

연재소설 : 러브 코딩 49화 - 꼬이는 심사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자 민수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정보시스템실 보험서비스팀 이민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고객서비스팀 정동훈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오늘 두 시에 미팅을 좀 할까 하는데요, 백팀장님하고 같이 고객정보 관리에 대해서요.”

“예, 한번 여쭤볼게요.”

민수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며 영길에게 묻는다.

“팀장님, 오늘 두 시에 서비스가 회의하자는데요. 가능하시겠어요?”

“응, 가능해.”

민수는 수화기를 다시 귀에 대며 말한다.

“예, 두 시 가능하답니다.”

“알겠습니다.”

“예, 그때 뵐게요.”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벽시계를 바라본다.


영길과 민수 그리고 현업에서 올라온 정동훈, 여사원 이렇게 네 명이 회의실에 앉아 있다. 영길과 동훈이 회의를 주도하고 민수와 여사원은 듣고 있다.

“민수씨 통해서 설명 들으셨지요? 고객서비스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안은 있어요?”

“우리 쪽에서 생각하는 것도 어제 이민수씨가 말했던 것과 같아요, 고객별로 계약을 관리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으면 좋죠.”

“그 외 다른 것은 없나요?”

“서비스부로 전화가 많이 오는 것은 계약자 주소를 변경하는 전화가 많이 와요. 그런데 어떤 계약자는 우편물을 받는 주소를 직장 주소로 해달라는 분도 계세요. 그것은 어떻게 안 될까요?”

“계약자 주소를 직장으로 바꾸면 되는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예, 문제가 되고 있어요, 어떤 계약자분은 배우자 몰래 별도의 금융형 보험상품에 가입하신 분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그분은 그 금융형 계약과 관련한 우편물을 자신의 회사로 보내달라는 민원이 있어요,”

“그러면 한 계약자당 복수의 주소를 관리해야 된다는 뜻인데, 현재 주소 DB는 계약자당 하나의 주소만을 관리하고 있거든요, 그것은 당장 해결할 수 없어요.”

영길의 설명에 동훈이 부탁하듯이 말한다.

“그거 해결해 주셔야 하는데….”

“그거참 난감하네요, 그런 요구를 하는 계약자가 많나요?”

“가끔 그런 요구를 하는 계약자가 있어요, 이것이 안 되니까 결국 계약을 해지합니다.”

“주소 DB를 바꾸던지, 별도의 주소 파일을 만들어서 관리해야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일이 엄청나게 커지는 일이라서 뭐라 말을 못 하겠네요.”

영길의 설명을 옆에서 조용히 듣던 여사원이 나선다.

“대리님, 그것은 꼭 해주셔야 되어요.”

“그것은 당장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길의 매몰찬 거부에 동훈이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 한 개가 있는데요, 계약자 이름과 주민번호가 똑같은 분이 계세요.”

동훈의 말에 영길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불가능한데요. 나라에서 주민번호를 관리하고 있어서 같은 주민번호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요.”

여사원이 적극적으로 설명을 덧붙인다.

“정말로 그런 것이 있어요, 한 분은 서울에 계시고 한 분은 원주에 계시거든요. 한 분이 영수증이 안 온다고 전화해서 주소를 바꾸면, 다른 분이 또 전화해서 영수증이 안 온다고 하세요, 그래서 또 바꾸면 또 다른 분이 우편물을 못 받고….”

민수가 신기한 듯 여사원에게 되묻는다.

“정말로 그래요?”

“못 믿으시겠지만 정말이에요”.

“그것은 정말 어려운데…, 그것을 전산실에서 관리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방법이 없을까요?”

“국가에서 둘 중 한 분에게 주민번호를 새로 부여하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민수의 설명에 여사원은 체념하듯이 수긍한다.

“그렇겠네요.”

민수와 여사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길이 마무리 짓듯 동훈에게 묻는다.

“그 외 다른 것은 없나요?”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없어요.”

그리고 말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 표정 없이 모니터를 보며 메모하는 민수, 허리춤에 차고 있는 삐삐가 진동한다. 삐삐에 찍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든 민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모니터에 눈을 꽂는다.



영길에게 불려 간 민수는 영길의 자리 옆에 서서 말을 듣는다.

“며칠 전에 현업과 회의하면서 주소 관련 요구사항 있었잖아?”

“직장 주소 관련된 부분 말이죠?”

“그것을 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내년 연간사업계획으로 잡아서 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예, 알겠습니다.”

민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민수, 회사 일도 그렇고 재희 일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답답하다.


부장이 지시한 CRM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민수는 갈피를 못 잡는다. 자리에 앉아 있는 민수의 눈에 방법론이라고 적힌 교육 책자를 보인다. 그 책자 집어 든 민수는 ‘개념 설계’라는 소제목이 적힌 페이지를 펼쳐서 본다.

민수는 그 책자를 보며 이면지에 메모한다. 명선이 민수를 보며 말한다.

“민수씨, 왜 이리 시무룩해? 하는 일이 어려운가 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막막해요.”

명선은 민수가 펼쳐놓은 책자를 보며 묻는다.

“그것은 무슨 책이야?”

“방법론에 대한 책자인데 개념 설계라는 것이 있어서 그냥 이것대로 흉내를 내보는 겁니다.”

“방법론? 그런 게 있어?”

“저도 얼마 전에 교육 가서 알게 되었던걸요.”

“나중에 나에게도 보여줘.”

“이 작업 마치는 대로 드릴게요.”

“고마워.”

민수는 책자를 보면서 메모를 계속 작성한다.


일하고 있는 민수 허리춤의 삐삐가 진동한다. 삐삐에 찍힌 전화번호를 확인한 민수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르려다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간다.


회사 건물 안의 공중전화에서 삐삐에 찍힌 전화번호를 보며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선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응, 나야.”

“많이 바빠?”

“응, 조금….”

선영이 재희와 관련하여 말할 것이라고 짐작하는 민수, 재희와 관련된 일은 피하고 싶어서 애매하게 대답한다. 

“그럼, 나중에 통화할까?”

“아니, 지금 말해.”

“이번 주 금요일 시간 돼?”

“잘 모르겠어.”

민수의 반응에 선영이 놀리듯 말한다.

“뭐지? 이 느낌? 삐졌어?”

속마음을 들켜버린 민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묻는다.

“무슨 일인데?”

“응, 재희 유학 가기 전에 금요일에 친구들 한번 보려고?”

민수는 당황한 듯 오른팔로 머리를 감싸며 묻는다.

“벌써? 한 달 후에 가는 것 아니야?”

“미리 만나는 것도 좋잖아, 그때 가서 바쁠지도 모르니까….”

“재희는 유학 가는 게 좋대?”

민수는 본심을 숨기지 않고 말을 내뱉는다.

“당연히 좋겠지.”

선영은 말을 해놓고는 당황한 듯 말을 멈춘 후 다시 잇는다.

“아, 그건 재희에게 물어봐, 그래서 오겠다는 거야, 안 오겠다는 거야?”

민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가야지. 당연히.”

“그래, 당연히. 그런데 너 심정이 아주 복잡하지?”

“내사 모르겠다.”

민수가 장난스레 한탄하자 선영이 그런 민수에게 묻는다.

“재희가 야속하지?”

“세상이 야속한 거지… 안 오던 어드미션이 왜 갑자기 온 거야….”

“재희를 붙잡으면 되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자이 원하는 것인데.” 

“그렇지, 종로에서 친구들하고 만나던 그 집이야, 금요일 퇴근하고 와.”

“알았어.”

수화기를 내려놓는 민수는 재희가 정말로 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슴이 싸리 해져 온다.


민수는 자리에 힘없이 앉아 있다. 그러다가 A4 이면지 묶음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 그 위에 네모 칸을 여러 개 그려가며 끄적거린다. 이면지를 넘겨가며 그림을 그린다. 잘못 그린 부분을 펜으로 줄을 긋고 다시 그려가며 억지로 일에 집중한다.

전화기가 울리자 민수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정보시스템실 이민수입니다. 네…, 지금요, 그러시죠.” 

수화기를 내려놓은 민수는 영길을 향해 말한다.

“팀장님, 정동훈씨가 회의하겠다고 올라온다는데요.”

그 말을 들은 영길이 민수를 쳐다보며 묻는다.

“내가 없어도 되지?”

예상치 못한 영길의 말에 민수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영길은 민수를 핀잔하듯 말한다.

“회의를 정하기 전에 나한테 회의할 시간이 되는지 좀 물어봐 줘.”

“죄송합니다.”

영길의 뼈 있는 말에 민수는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후 동훈이 보험서비스팀으로 다가오며 영길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민수는 다가오는 동훈을 보며 쭈뼛거린다. 그리고 영길의 눈치를 살핀다. 영길의 심술에 처지가 난처한 민수는 테이블 위의 메모지를 챙겨 들고서 동훈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저쪽 회의 탁자로 가실까요?”

민수와 동훈은 회의 탁자로 가서 앉는다. 민수는 메모하던 이면지의 페이지를 넘기며 동훈에게 말한다.

“일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네요.”

민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동훈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 부서 안을 가져왔어요.”

“뭔데요?”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어떨까 해서요?”

“지금 개발하려고 하는 시스템과 무슨 연관이 있죠?”

“고객이라는 개념의 시스템이니까, 불만 처리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나요? 아 참, 팀장님이 함께 들어야 할 것 같네요.”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영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팀장님, 아무래도 팀장님이 결정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고객 불만 처리시스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 많이 복잡해?”

“아직은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민수의 부탁에 영길이 은혜라도 베푸는 양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수는 영길과 함께 회의 탁자에 다시 앉는다. 영길이 동훈에게 묻는다.

“어떤 일인데요?”

“예,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화면을 만드는 것인데요, 고객이 전화로 민원이 들어오잖아요, 민원 중에 불만성 민원도 많아요, 그 민원을 시스템에 입력해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민원 내용을 입력해서 처리하는 것이네요.”

“네, 고객이 말하는 불만을 입력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죠.”

동훈의 적극적인 설명에 민수가 나서며 우려스러운 점을 지적한다.

“불만 내용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인데, 고객의 불만을 자세하게 타자 치듯이 입력할 사원이 있을까요? 다른 일 하기도 바쁜데.”

“업무인데 입력하겠죠?”

“글쎄요, 전화를 끊고 난 다음 시스템에 접속해서 입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고객정보시스템에 이런 것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스템 개발 방향의 갈피를 못 잡는 민수는 혼란스러운 듯이 말한다.

“당초에 고객 단위별로 계약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는데,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영길은 동훈의 편을 들며 말한다.

“민수씨, 안 된다고만 말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봐.”

민수는 동훈의 편을 드는 영길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동훈이 이어서 말한다.

“그래요, 하는 쪽으로 생각해 주세요.”

민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숨기려는 듯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말을 멈춘다.

“민수씨, 한번 해봐.”

영길의 말에 민수는 마지못해 냉랭하게 대답한다.

“예.”

뜻을 이룬 동훈이 웃으며 민수에게 말한다.

“부탁합니다.”

약이 오른 민수가 그런 동훈에게 사무적으로 말한다.

“안은 언제까지 주실 겁니까?”

“어떤 안 말입니까?”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안을 주셔야죠.”

“저가 말한 것이 다인데….”

“그것으로는 구체적이라 할 수 없죠….”

동훈을 쪼아 붙이는 민수, 영길도 거든다.

“안을 보내주세요.”

두 사람의 공세에 동훈이 잠시 망설이다 말한다.

“내일까지 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치자 민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영길은 걸어가는 민수의 뒷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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