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51화 - 프랜드
모니터에 집중하던 민수가 문득 전화기를 바라본다. 전화기에 눈을 꽂은 채 잠시 생각에 잠긴 민수, 그러나 이내 포기하듯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린다.
명선은 출근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민수에게 한마디 한다.
“민수씨, 말 좀 해.”
민수는 명선을 바라보며 씩 웃고는 다시 모니터를 주시한다.
명선은 소라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소라는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곁눈으로 그들의 모습을 본 민수는 모니터에 눈을 꽂은 채 웃으며 말한다.
“다 보여요.”
“다 봤어?”
명선이 무안해하며 말하자 민수는 ‘우웃차’ 하고 소리 내면서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 모습을 본 명선이 민수에게 묻는다.
“담배 피우러 가는 거?”
“아뇨, 미국 갑니다.”
민수는 웃으며 밖으로 걸어 나간다.
모니터에 프로그램 코딩 화면에서 온라인 테스트 화면으로 전환된다. 이어서 그 화면에 키보드 치는 소리와 함께 이름과 생년월일이 입력되고 고객별 계약정보가 전개된다.
“이제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네,”
민수가 개발한 화면을 본 명선이 말한다.
“이제 겨우 테스트 시작하는걸요, 손 볼 때가 많아요.”
“맞아, 테스트하면서 수십 번 수정해야 화면 하나가 완성돼.”
“그런 것 같아요, 지금 몇 번 수정했는지도 몰라요.”
“그 정도면 다음 주에 완성하겠네?”
“이것과 링크(Link:연결)되는 프로그램도 수정해야 하고, 다음 주에 마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민수는 그 화면에 나타난 내용을 보며 종이에 뭔가를 적는다. 그리고 다시 화면을 전환하여 종이에 쓴 메모를 보며 프로그램을 코딩한다.
오후에도 모니터를 바라보며 코딩 작업에 빠져 있는 민수, 문득 창밖을 본다. 한참을 우두커니 창밖을 보다가 명선의 눈과 마주친다. 민수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 친구 생각하는 거지?”
속으로 움찔하는 민수는 명선의 말을 애써 부정한다.
“가는 사람 생각하면 뭐 해요?”
명선은 민수를 다독이듯이 말한다.
“보내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한번 만나봐.”
“글쎄요, 그 친구는 미안해할 거고, 나는 섭섭해할 거고. 만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안 만나고 그냥 보내면 나중에 후회할 텐데.”
“만나면 뭐 해요, 마음만 아플 텐데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런데 그 친구 언제 떠나?”
“다음다음 주에 가요,”
민수는 눈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다시 프로그램 코딩 작업에 몰두한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간다.
모니터 화면에 완성된 어플리케이션 화면이 차례대로 전개된다. 계약자의 이름과 주민번호로 계약 사항들이 나열되고 그중 한 건을 선택하자 개별 계약 화면으로 바뀐다.
민수는 개발화면 최종적으로 점검한 뒤 전화를 들고 고객서비스부에 전화한다.
“예, 안녕하세요, 정보시스템실 이민수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고객 관련 시스템을 다 만들었거든요, 테스트 한번 해보시죠,”
“테스트 양식에 맞추어서 해야 하나요?”
“처리계 시스템이 아니니까 테스트 양식은 필요 없고요, 그냥 한번 보시고 조회 항목이 정확한지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민수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채 몸을 한껏 뒤로 젖힌다. 명선은 민수의 그런 모습을 보며 묻는다.
“다 마쳤어? 뿌듯하겠다.”
민수는 대답 대신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민수의 전화가 울린다.
“예, 정보시스템실 이민수입니다.”
“민수야, 나 재희야.”
예상치 못한 전화에 민수는 당황한다.
“어. 재희니?”
서먹하게 대하는 민수에게 재희는 일부러 장난스러운 투로 말을 건넨다.
“그래! 나 재희다!”
손바닥을 이마에 대며 어쩔 줄 몰라하는 민수, 잠시 그대로 있다가 말한다.
“그래, 잘 지냈어?”
“그래, 잘 지냈다!”
속상한 민수의 심정을 아는 재희가 일부러 과장되게 말한다. 그러고는 이내 진지한 투로 말을 이어간다.
“음, 좀 바빴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아, 그랬구나.”
할 말이 없어서 어쭙잖게 말하는 민수, 재희가 묻는다.
“너는 어떻게 지냈어?”
“그냥 일만 하면서 지냈어.”
민수의 대답에 재희가 섭섭하다는 듯이 민수를 조심스럽게 몰아붙인다.
“그래도 전화 좀 하지… 하긴 내가 미운데 전화할 마음이 나겠어?”
“아니야, 그게 아니야.”
속마음을 들킨 민수가 과장되게 부정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하게 보인다. 그런 민수에게 재희는 사투리를 써가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뭐 이런게 다 있노?”
민수는 예전에 자신이 재희에게 해주었던 말을 들으며 웃는다. 그리고 대뜸 묻는다.
“언제 가?”
정말로 묻고 싶지 않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 민수, 말을 해놓고 후회한다.
“모레 아침에 출발해.”
민수는 숨기려던 섭섭한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다.
“아…, 가는구나.”
“그래서 오늘 시간 되니?”
“응, 시간 돼,”
“내가 그리로 갈게.”
민수는 모니터를 보고 있는 명선의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응 그래, 내가 너 쪽으로 갈 수도 있는데….”
“아냐, 내가 갈게.”
“그래, 알았어. 일찍 와도 돼.”
민수는 전화를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명선은 그런 민수에게 말한다.
“민수씨, 커피 한잔할까?”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명선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며 민수에게 말한다.
“거봐, 연락해 보라고 했잖아… 남녀 간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민수가 자판기 버튼을 누르며 말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떠난다고 하니 막막하고 허전하네요.”
민수는 힘없이 한숨을 쉰다.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야, 유학 간다고 헤어지는 것이라 속단하지 마,”
민수는 씁쓸히 웃으며 커피를 마신다.
“오늘 만나는 거야?”
“예.”
“언제 출발한대?”
“모레 간대요.”
“얼마나 좋을까? 나도 유학 가고 싶다.”
명선은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던지 민수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말을 바꾼다.
“... 시스템 개발은 다 끝난 거야?”
민수는 무안해하는 명선을 보며 말한다.
“예…. 나도 유학 가고 싶어요.”
장난투로 말하는 민수의 말에 명선도 함께 웃는다.
민수 자리에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응, 알았어.”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민수는 PC를 끄고 상의를 입은 후 자리에서 일어선다,
민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회사 1층 로비에서 기다리는 재희에게로 간다.
“왔어?”
재희는 민수의 얼굴을 바라본다.
“많이 바빴나 봐? 좀 야위어 보여.”
“그런가?”
민수는 자신의 심정을 숨기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그리고 앞장서서 회사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한다.
민수는 일식집 테이블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자기 심정을 말한다.
“여기가 조용해서 좋아, 그리고 멀리 가기에는 우리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전에 한번 왔던 곳이잖아, 여기 좋은 곳 같아.”
민수는 메뉴판을 집어 들며 재희에게 묻는다.
“갈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짐은 얼추 꾸려놓았고, 이제 비행기만 타면 돼.”
“몇 시 비행기야?”
“10시 비행기.”
“아, 정말 가는구나….”
탄식하듯 말하는 민수를 핀잔하는 재희.
“아, 왜 그래… 아주 가는 것도 아닌데….”
민수는 염려하듯 말한다.
“무섭고 그렇지는 않아?”
“때로는 그런 기분이 들지만,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종업원이 물 잔과 물병을 들고 온다.
“뭐로 드시겠어요?”
“모둠 초밥하고 문어 초절임,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 주세요.”
종업원이 돌아가자 민수를 추궁하는 재희.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했어?”
“글쎄.”
“이게 글쎄로 그냥 넘길 일이야?”
따지듯 말하는 재희에게 민수가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냥 바빴어.”
“흥!”
코웃음 치는 재희에게 민수는 쓸데없이 자랑을 늘어놓는다.
“멋있는 온라인 시스템을 만드느라 내가 정신이 없었거든, 화면이 얼마나 삼삼한데.”
재희는 핑계를 대는 민수에게 서운한 듯 말한다.
“그래도 전화 좀 하지. 아무리 내가 야속해도….”
졸지에 속 좁은 인간으로 낙인찍힌 민수. 재희의 예리한 지적에 민수는 눈을 크게 뜨며 변명한다.
“아냐,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전화하지 못해 미안해, 나도 바빴어, 허둥지둥. 그냥 마음만 바빴나 봐. 너에게 전화하기 미안하기도 했고.”
재희의 말에 민수도 수긍하듯 말한다.
“모든 게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 같아. 지금 이 시기가…, 그래서 적응하기가 어려워.”
“그렇지….”
서로의 변명을 다정하게 수긍해 주는 웃기는 인간들, 민수와 재희.
음식점 종업원이 소주와 맥주 그리고 유리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민수는 재희의 잔에 맥주를 따라준다. 그리고 민수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우려고 하자 재희가 소주병을 낚아채서 민수의 잔에 소주를 따라준다. 민수는 소주를 채워주는 재희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잔을 들어 말한다.
“재미있는 유학 생활이 되길….”
“놀러 가는 게 아니거든!”
“이왕 유학하는 거 재미있게 해야지.”
안주가 나오고, 둘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시간이 흐른다. 재희가 작정한 듯 민수에게 말한다.
“나, 너에게 줄 게 있는데.”
재희는 가늘고 긴 종이 상자를 민수 앞에 내놓는다. 재희의 선물을 예상치 못했던 민수가 당황하며 말한다.
“선물? 아, 선물….”
“넥타이야.”
“지금 매어봐도 돼?”
“맘대로.”
민수는 넥타이를 갑에서 빼내서 넥타이를 어눌한 손놀림으로 맨다. 재희는 그 모습을 깊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민수는 넥타이를 맨 후 말한다.
“색상이 좋네, 고마워.”
“너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옛날에 너가 나에게 선물 줬던 거 생각난다.”
민수의 말에 재희가 궁금한 듯 묻는다.
“어떤 선물?”
“가시나무새 카세트테이프.”
“아, 그거….”
“나는 그 노래 가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받고 싶은 선물은 아니었어. 처음에는 LP 레코드판으로 내게 줬잖아. 내가 LP 플레이어가 없다고 하니까 너가 굳이 카세트테이프로 바꿔서 내게 선물하더라고….”
민수가 섭섭했던 그때의 심정을 말하자 재희가 새삼 미안함을 드러낸다.
“내가 좀 짓궂었지.”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아 너에 쉴 곳 없네’라는 가사…. 너가 나에게 준 그 노랫말처럼 된 것 같아.”
재희는 말을 못 하고 가만히 있다, 민수는 아차 싶어서 얼른 말을 바꾼다.
“먼 길 가는 너에게 내가 선물을 줘야 하는데…. 내가 생각이 못했네.”
“그런 말을 하지 마, 너는 언제나 나에게 항상 마음을 선물했잖아, 친구 마음.”
민수가 한탄하듯 말한다.
“아…, 나는 그 친구라는 그 선을 넘으려고 무척 노력했는데… 나는 바보인가 봐.”
“하하, 그래, 너 바보 맞아.”
“오늘 선을 확 넘겨?”
“하하, 바보.”
그러면서 재희는 민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그럴까?”
예상치 못한 재희의 대답에 민수는 순간 당황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희와 관계를 가진다면 민수 자신이 더 초라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재희의 미안한 마음을 이용하는 자신이 부끄럽게도 느껴진다. 그래서 민수는 얼른 말을 돌린다.
“아냐, 농담이야.”
“칫! 나도 농담이야.”
재희가 웃자 민수도 따라 웃는다. 그렇게 둘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수와 재희는 지하철 개표구 앞에 선다. 민수가 재희에게 미안한 듯 말한다.
“모레 아침에 공항에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아냐, 회사 출근해야 하는데 무엇하러. 오늘 즐거웠어, 갈게.”
민수는 재희가 개표구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친다.
“어이, 프랜드! 잘 가.”
계단을 내려가려던 재희가 잠시 멈춰 서서 민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프랜드…? 그래, 프랜드, 고마워.”
재희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지자 민수는 표정을 숨기며 반대편 개표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