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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Dec 25. 2024

유학

연재소설 : 러브 코딩 50화 - 유학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는 민수를 누군가 나직이 부른다.

“민수씨.”

일을 하던 민수가 고개를 들자 일환이 민수에게 나가자는 턱짓 한다. 민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계를 본다. 6시 40분. 민수는 메모하던 이면지를 테이블 한쪽으로 치우고 의자에 걸쳐 놓은 양복 상의를 집어 든다. 그리고 일환을 따라 조용히 사무실에서 벗어난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말이 없는 민수에게 재현이 묻는다.

“낮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던 것 같던데요?”

“뭐 그렇지, 안 해도 될 일을 만드니, 전산 일 하는 사람만 죽어나지.”

“정동훈씨가 실적을 챙기나 보죠? 이제 고과 심사하는 시기도 다가왔잖아요.”

“자기밖에 모르는 돌대가리들하고 일한다는 것에 나는 비애를 느껴. 나도 유학이나 갈까 봐.”

민수는 그렇게 말하며 쓸쓸히 웃자 일환이 위로하듯 묻는다.

“그렇게 힘들어?”

“회사 일 마치고 집에 가면 마땅히 할 일도 없고, 그래서 매일 술이나 마시다가 집에 가고…. 뭔가 바뀌어야 하는데…. 아, 유학이나 가고 싶어요. 그런데 유학 갈 건덕지가 있어야지….”

“요즘 MBA 하러 유학을 많이 가잖아요?”

재현의 말에 민수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목적 없이 막연히 유학 가기도 그렇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내 인생도 그렇고…, 전산 키보드를 치는 것보다 딴따라 따라다니면서 기타를 치는 인생이 훨씬 좋을 것 같아.”

민수는 그렇게 말하며 소주 한 모금 입에 털어 넣는다. 



다음 날 아침, 민수는 어머니가 목소리에 잠이 깬다.

“민수야 회사 가야지?”

7시 20분. 민수는 이부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출근 채비를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밥을 국에 말아서 후루룩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머니는 민수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렵게 말을 뗀다.

“요즘 무슨 일 있나?”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 민수는 어머니가 책상 위에 올려둔 와이셔츠를 입고, 책상 위에 던져둔 넥타이를 목에 맨다. 그렇게 출근 준비를 마친 민수가 문을 나서며 인사한다.

“다녀올게요.”

“술 먹지 말라는 말을 못 하겠고, 술 좀 적게 먹어라.”

“오늘,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요.”

“조금만 마셔래이.”

“예.”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민수가 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민수는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마음에 안 드는 듯 한 페이지를 넘겨 다시 그린다.

“민수씨, 많이 바빠?”

명선이 민수에게 묻는다.

“딱히 바쁜 것은 없어요.”

“커피나 한잔할까?”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명선을 따라간다.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명선이 민수에게 묻는다.

“민수씨, 요즘 일하는 게 힘들어?”

“아뇨, 일이 힘든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침체되어 있어? 말도 통 안 하고?”

“그래요? 티가 많이 나요?”

명선은 민수를 격려하듯 말한다.

“팀장 때문에 그런 거지? 그래도 버텨.”

“그것도 그렇지만…. 그 친구가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유학 포기하는 것 아니었어?”

“미국의 대학교에 입학 허가 편지가 왔대요.”

“어머, 어떡해….”

안타까워하는 명선과는 달리 민수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본인에게는 잘된 거죠.”

“그래서 그렇게 말이 없구나…, 힘내고…, 뭐라 할 말이 없네.”

민수가 쓸쓸히 웃는다. 명선은 민수에게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커피를 마신다.


전화기가 울리자 민수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정보시스템실 보험서비스팀 이민수입니다.”

“민수니? 나 재희야.”

예상하지 못한 재희의 전화에 민수가 당황한다. 

“응, 재희구나.”

“내가 전화하면 회사에서 퇴근하기 쉬울 것 같아서 전화했어.”

재희 말에 민수가 웃는다.

“이런, 깜찍한….”

“호호호, 나도 여우가 다 되었나 봐.”

재희가 민수에게 살갑게 대하지만 민수는 왠지 재희가 이제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 지금 출발할게.”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민수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볼 것도 없이 PC를 끄고 유유히 사무실에서 나간다.



음식점에 들어선 민수는 일행이 앉아 있는 곳을 보고는 손을 들어 인사한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재희와는 대각선으로 떨어진 곳에 앉아 친구들과 반갑게 안부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재희를 아무렇지 않은 듯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축하해, 드디어 어드미션이 왔네.”

재희는 그런 민수를 바라보며 인사한다.

“고마워.”

“바라던 대로 되어서 무척 좋겠다.”

“미안해.”

재희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 민수와 재희의 관계를 모르는 친구들이 재희의 말에 주목한다. 당황한 재희가 서둘러 다시 말한다.

“너희들을 두고 내가 떠나게 되어서 미안해.”

선영이 재희를 핀잔하듯 말하며 재희를 감싼다.

“얘들은 너 없이도 잘 놀아. 오버하지 마, 제발, 자, 한잔해,”

민수도 재빠르게 나서며 수습한다.

“아냐, 나는 재희 없으면 잘 못 놀아.”

재희는 민수의 말에 맞장구치며 선영까지 끌어들인다.

“선영에게도 미안해.”

선영이 재희를 장난스레 다독인다.

“괜찮아, 괜찮아 이년아.”

옆에서 말을 듣던 도형이 웃으며 말한다.

“놀고들 있네.”

친구들끼리 왁자지껄하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철호가 민수에게 묻는다.

“너는 회사에서 잘 지내고 있나?”

“괜히 전산 일을 했나 봐. 이제 재미가 없다.”

심드렁하게 말하는 민수를 동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철호.

“전산은 밤새는 일도 많다던데?”

“일 나름이지, 밤에도 컴퓨터 작업이 도는데, 작업 프로그램이 에러가 나면 밤에도 고치러 나가야 해, 그것도 고역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도형이 끼어들며 말한다.

“영업은 더 힘들어, 관리자들에게 영업 실적 때문에 시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그래서 매일 술 먹어.”

“나도 매일 술 먹어, 영업은 판공비로 술을 마시겠지만, 전산 일 하는 우리는 생돈으로 술을 마시지.”

그 말을 듣고 있던 재희.

“회사 생활이 장난이 아니구나….”

“너는 유학 잘 가는 거야, 너는 대학원도 다녔잖아, 학교에 남아, 그게 편해.”

부러운 듯이 말하는 도형에게 재희는 학교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듯 말한다.

“학교에 남는 것이 쉬운지 아니? 노예 생활을 해야 학교에 남을 수 있어.”

철호가 동의하듯 말한다.

“그래, 교수 앞에서 납작 기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미국은 안 그렇겠지?”

재희는 예전에 민수가 말했던 것을 흉내 내며 말한다. 

“내사 모르겠다.”

모두들 재희의 말투에 웃는다. 

민수는 재희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재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재희도 민수를 보며 둘의 시선이 부딪힌다. 재희는 시선을 피하지 않지만, 민수는 소주잔으로 시선을 돌리고 소주잔을 비운다. 뒤이어 재희도 소주잔을 비운다.

철호가 묻는다.

“몇 년 생각하고 유학 가는 거야?”

“3년 생각하고 있어.” 

“3년 더 걸리는 경우도 많던데…. 그리고 유학하러 갔다가 거기서 눌러앉아 사는 사람도 많잖아.”

철호의 말에 재희는 민수를 도발하려는 듯 말한다.

“글쎄, 거기서 어떤 놈 만나 결혼할지도… 흐흐.”

그렇게 말한 재희는 딴청을 부린다. 도형이 그런 재희를 보며 말한다.

“거참 징그럽게 웃네.”

모두들 도형의 말에 웃지만, 민수는 소주잔을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민수를 떠보려고 슬쩍 말한 재희는 가만히 있는 민수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마음이 사무친다.

“그곳에 가면 어디서 생활할 거야?”

도형의 묻는 말에 민수도 무심한 척 재희의 대답에 귀를 기울인다.

“홈스테이 하려고… 지금 알아보고 있어, 그곳 생활에 적응하려면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재희가 가는 것을 실감하는 민수는 아무 말 없이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모임을 끝내고 음식점 앞에 모인 친구들. 철호가 재희에게 말한다.

“가기 전에 식사 같이해, 연락할게.”

“그래, 그러자.”

아쉬운 도형이 친구들에게 묻는다.

“한 잔 더 안 할래?”

도형의 말에 친구들은 호응이 없다. 그러자 철호가 말한다.

“야, 나중에 봐,”

“그래, 다들 잘 가.”

민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간다. 재희가 그런 민수를 부른다.

“민수야,”

가던 길을 돌아서서 재희를 본다.

“만나서 반가웠어.”

민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재희를 향해 한 손을 들어 보이고는 돌아서서 간다.

재희도 방향이 같은 친구들과 함께 돌아서서 걸어간다.


달리는 지하철이 정차하는 역마다 문이 열리고 닫힌다. 지하철 안에서 민수는 무표정하게 서 있다. 



서부장 자리 옆에 민수와 영길이 앉아 있다. 서부장은 민수가 가지고 온 어프리케이션 구축 설계안을 찬찬히 살펴본다.

“여기 고객 불만 처리는 뭐야? 이게 왜 들어와 있지?”

서부장이 민수에게 묻지만 영길이 나서서 대답한다.

“현업에서 낸 안입니다.”

“이것은 아니지…, 원래 목적은 고객의 복수 계약을 쉽게 조회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것은 아니야.”

영길이 변명하듯 말한다.

“현업에서 강하게 요구한 거라….”

“이런 일은 차원이 달라요. 이것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일 설계부터 해야 하는 규모야, 이것을 하려면 현업에서 정식 공문으로 요청해야지.”

영길이 변명하듯 얼른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별로 쓸 사람도 없어, 무늬만 요란하지,”

기회다 싶은 민수는 영길을 무시하고 서부장에게 묻는다. 

“그러면 이 부분을 빼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이 부분을 빼고 화면을 만들어봐.”

민수는 영길 들으라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민수와 영길의 관계가 점점 꼬여만 간다.


민수는 자리에 앉아서 프로그램을 짠다. 집중한다. 가끔 양손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바치고 화면을 보다가, 창밖을 본다. 그리고는 다시 몰입한다. 퇴근하는 사람이 오버랩된다. 남준이 규섭과 함께 민수에게 와서 꼬드기자 민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양복을 들고 퇴근한다.


동기들과 술을 마신 후 지하철로 향하던 민수는 공중전화부스를 바라본다. 한참을 서서 공중전화부스를 바라보던 민수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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