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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리뷰

by 시순 Jan 30. 2025

<저스티스 리그>는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됐다. <맨 오브 스틸>이나 <배트맨 v 슈퍼맨>처럼 혹평을 받더라도, 잭 스나이더의 색채가 온전히 담긴 상태로 공개됐어야 할 작품이다. 그리고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저스티스 리그’로 자리 잡았어야 했다. 코믹스 기반 영화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반지닦이’처럼 ‘정의닦이’라는 조롱만 기억할 뿐, 스나이더 컷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잭 스나이더와 조스 웨던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2021년 3월, 이 작품이 공개되었을 당시 내 주변에서는 그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화를 소개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DC는 좀…"이었다. 그래서 나는 배트맨과 슈퍼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의 존재를 알리고자 DCEU 세계관 리뷰를 시작했다.


조스 웨던 컷과 잭 스나이더 컷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먼저, 웨던 컷과 스나이더 컷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조스 웨던의 연출은 이야기를 보다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전체적인 색감은 연한 회색 톤으로, 깔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만큼 이야기 전개가 부드러워 관객들에게도 쉽게 다가간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단점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웨던은 처음부터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출한 것이 아니다. 잭 스나이더의 스타일로 제작되던 작품에 조스 웨던의 색을 덧씌운 결과,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잭 스나이더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띤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흥행만을 고려해 잭 스나이더의 후임 감독으로 조스 웨던을 기용한 워너 브라더스의 판단은 아쉬움이 남는다.

예고편을 비교한 영상을 한 번 살펴보자. 잭 스나이더의 예고편은 진지함을 넘어 처절한 분위기의 음악과 연출을 선보인다. 외부의 위협을 막기 위해 지구의 강자들을 찾아다니는 장면은 웨던 컷과 동일하다. 하지만 슈퍼맨의 죽음과 그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슈퍼맨의 처절한 죽음과 그 울림이 원더우먼의 고향 데미스키라와 아쿠아맨의 고향 아틀란티스에까지 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팬들은 경악했다. 고작 2분짜리 예고편에, 우리가 2시간 동안 본 장면보다 더 의미 있고 기대되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웨던 컷에서는 메인 빌런인 스테판 울프가 왜 지구에 오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웨던 컷에서는 스테판 울프가 왜 지구에 왔는지, 그의 배후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에 대해 단 한 문장, 'for the Darkside'로만 설명한다. 웨던 컷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다크사이드'는 마블 인피니티 사가의 최종 빌런 타노스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정도로 생김새와 목적이 비슷한 캐릭터다. 짧은 예고편에서도 원더우먼이 두려움에 떨며 찾아간 고대 벽화 속 그의 모습, 그리고 슈퍼맨이 없는 상태에서 저스티스 리그를 단신으로 쓸어버릴 정도로 강한 스테판 울프가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통해 다크사이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또한, 그와의 전투가 얼마나 처절할지 암시한다.


웨던 컷과 스나이더 컷은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이 비슷하다. 슈퍼맨이 죽음으로써 마지막 남은 크립톤인의 울림이 인간 측 마더박스, 데미스키라, 아틀란티스에 있는 슈퍼컴퓨터 마더박스에 전해진다. 이 울림으로 마더박스에 균열이 생기고, 그 신호를 받은 스테판 울프가 지구로 찾아온다. 그리고 전작에서 이를 눈치챈 배트맨이 모은 영웅들, '저스티스 리그'가 이에 맞선다.


플래시와 사이보그

혼자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혼자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이보그와 플래시다. 위의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 저스티스 리그가 모이는 이유는 '혼자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웨던 컷에서는 슈퍼맨이 부활하는 순간 긴장감이 사라지고, 이야기가 급격히 마무리된다. 다른 영웅들의 활약 없이 슈퍼맨 혼자 스테판 울프를 쓰러뜨리고, 마더박스를 분해하며, 정체불명의 방사능 피폭 지역에 사는 수십 명의 사람을 구한다. 하지만 스나이더 컷에서는 아무리 강한 슈퍼맨도 '혼자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1. 플래시, 배리 앨런

플래시, 배리 앨런플래시, 배리 앨런
플래시 전용 'At The Speed of Force'

플래시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캡틴 부메랑을 체포하는 장면에 잠깐 등장했었다. 그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초보 티를 벗지 못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원작 코믹스에서 플래시는 젠틀하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려 깊은 캐릭터다. 물론 옆 동네 거미맨처럼 진중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이긴 하지만, 웨던 컷에서의 배리 앨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된다. 웨던 컷의 자막에서는 그가 반말을 하거나 예의 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스테판 울프 사태 당시, 플래시는 영웅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웨던 컷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뛰어다니기만 한다. 그가 가진 유일한 능력인 '속도'마저 슈퍼맨에게 따라잡힌다. 또한 방사능 피폭 지역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에서도 트럭 하나를 겨우 옮기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외칠 뿐이다. 반면, 슈퍼맨은 거대한 건물을 통째로 옮기며 플래시를 압도한다.


스나이더 컷에서도 플래시는 능력을 얻고 영웅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에서는 주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래시는 엄청난 속도와 움직임을 통해 마블의 또 다른 스피드스터인 퀵실버와는 차별화된 연출로 관객들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아직까지 웨던 컷과의 큰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은, 슈퍼맨의 강한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미 끝나버린 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그는 스피드 포스를 통해 시간선을 뒤틀며, 이를 '플래시 포인트'라고 한다. 웨던 컷에서 플래시는 달리다가 원더 우먼의 가슴에 머리를 박고 당황하는 장면이 전부였다. 하지만 스나이더 컷에서는,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 플래시가 스피드 포스를 이용해 시간을 되돌린다. 그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이보그에게 전달하며, 결국 스테판 울프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2. 사이보그, 빅터 스톤

사이보그, 빅터 스톤사이보그, 빅터 스톤

웨던 컷에서 사이보그는 플래시보다도 더욱 비중이 적다. 웨던 컷에서 사이보그의 역할은 거의 없다. 그는 마더박스를 통해 탄생한 기계적 존재로서 마더박스를 해제하려다 다리가 부서진다. 이후 슈퍼맨이 마더박스를 해제하고 스테판 울프를 쓰러뜨리자, 그는 다른 멤버들과 함께 바닥에 누워 자신의 잘린 다리를 보고 웃는 것이 전부다. 사이보그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로 인해 그는 아버지와 깊은 갈등을 겪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자신을 살리려 한 결과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그는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아버지가 스테판 울프 사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마무리된 후 사이보그가 갑자기 아버지와 화해하며 함께 웃는 장면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스나이더 컷에서 마더박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은 사이보그, 즉 빅터 스톤의 아버지인 사일러스 스톤 박사다. 스톤 박사는 이미 마더박스를 추적하는 존재가 있음을 감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아들과 대화하려 한다. 그러나 마음을 닫아버린 사이보그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회피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아들의 눈앞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마더박스의 코어를 달구고 산화해 버린다. 스나이더 컷에서, 마더박스를 통해 탄생한 사이보그는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지구 유일의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슈퍼맨을 부활시키기 위해 마더박스를 활성화하는 순간, 그는 엄청난 슈퍼 컴퓨터인 마더박스를 통해 멸망한 세계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마더박스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세 개의 마더박스로 지구를 초기화하려는 스테판 울프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또한, 마더박스를 활성화할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스피드 포스를 사용하는 플래시다. 스나이더 컷에서 사이보그는 강제로 얻은 생명과 능력을 두려워하며, 기계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혐오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마더박스는 기계와 동화된 존재인 사이보그의 정신 속으로 침투해 그를 현혹한다. 그곳에서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인간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다. "내 불완전한 아들(broken son), 이제 너는 혼자가 아니야. 다시 온전해지자." 그러나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사이보그는 "I'm not broken"라는 단호한 외침과 함께 마더박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를 해체한다.



에필로그

사이보그의 이야기는, 스나이더 컷의 전체적인 서사와 함께 에필로그에서 스톤 박사의 '아버지의 두 번째 진심'을 통해 마무리된다. 이는 원래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을 에필로그로 배치한 것이기에, 사이보그는 이미 아버지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전쟁에 참여했을 수도 있다. 

이제 일어서야할 시간이란다. 싸우고, 발견하고, 치유하고, 사랑하고, 이기렴.
그 순간이 지금이란다.
- 빅터 스톤 박사 -
브런치 글 이미지 5

조스 웨던이 연출한 저스티스 리그는 원래 감독이었던 잭 스나이더의 비전과 전혀 다른 작품이다. 두 감독은 연출 스타일이 극명하게 다르며, 조스 웨던은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잭 스나이더는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추구한다. 애초에 어두운 톤으로 기획된 작품에 반강제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덧씌우려 했기 때문에, 극장판은 어떤 방식으로 편집하더라도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작품의 분위기 자체가 전혀 다른데,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스 웨던은 잭 스나이더의 작품 세계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으며, 그의 스토리보드를 무시하고, 원래 제작진과 배우들을 소모품처럼 대했다. 심지어 촬영 현장에서 부적절한 언행까지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어떤 창작자든 자신이 만드는 작품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애정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세계를 구한 것은 슈퍼맨의 ‘강력한 힘’만이 아니었다. 마더박스를 분해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플래시가 각성하며 스피드포스를 활용하고, 플래시 포인트에 도달한 것, 사이보그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더박스의 정신적 유혹을 견뎌내며 이를 해체할 의지를 다진 것, 슈퍼맨이 부활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준 원더우먼과 아쿠아맨, 그리고 이 모든 전투를 지휘하며 전략을 세운 배트맨— 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이번 전투에서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각 캐릭터가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며 ‘혼자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한다. 저스티스 리그는 단순히 강한 영웅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완전한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이것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진정한 ‘저스티스 리그’로 기억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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