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겁결에 veille de Noël, 크리스마스 이브

2025년 12월 24일 목요일 오전

by 파리외곽 한국여자

오전 8시 30분. 침상

나영이가 일어나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뜬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저렇게 스타카토, 그것도 빠르게 튀는 물방울처럼 비바체 속도로 저렇게 새 하루를 시작하는지..


아이들의 넘치는 활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날씨 앱을 확인한다.

오늘은 최저 0도 체감 영하 2도, 최고기온 5도.


특이점은 오후 서너시까지 바람이 강하게 분다는 거. 이 바람이 구름을 확실히 날려버리는 네시부터는 커다란 햇님만 방긋하게 남을 것으로 예보되어 있다. 이건 대한민국의 겨울과도 많이 닮아 있을 것이다, 오늘 오후에 나는 이곳, 타국의 어느 곳에서 고향의 그 겨울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온은 낮지만, 해가 떠있는 그런 그리운 계절.


그나저나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조용하다.

어제저녁에 이층에 자러 올라올 때,

아이는 내가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간다고 했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이의 랩탑이 테이블 위에 있었던 것 같다. 호블록스 인지 마인 크래프트인지 아이가 요즘 꽂혀있는 그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제 많이 아팠다.


며칠 전 부터 너도 나가서 돈 존 벌어오라며

나를 달달 볶아대는 제이를 피해

아이와 함께 오후 세 시경에 차를 끌고

스케이트장 근처지만

고속도로 진입 근처라

뭔가 휑한 맥도날드에 갔었다.

그때 한두 시간 앉아 있는 동안

몸에 바람이 들었는지

그날 저녁부터 비실대다가

어제는 정말 온몸이 덜덜 떨리고 뼛속까지 한기가 가시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기침도 나고 피곤하고 춥고..


그러다 보니 아이 케어를 잘 못한 듯하다.


물론 리모컨은 치웠지만 랩탑까지는 치우지 못한

그것으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점심은 제이가 해 주는 것을 굴욕적으로 먹었지.

물론 이 디테일을 다 적으면 좋겠지만 한정된 시간 동안 기본적인 것만 메모하는 상황이니 패스하기로 한다그리고 저녁은 점심때 남은 것과 달걀프라이를 아이에게 해주고 요거트 정도 챙겨 준 것이 다였다.


9시 30분 부엌.

일어나서 빨리 내려가 상황을 종료시키고 싶은데

몸이 너무 무겁다.

1시간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내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에

후다다닥 상황을 종료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계단 밑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반겨 준다.


주변에 일가친척 하나 없고, 이사를 와서 유치원 때부터 알던 친구들 혹은 그 커뮤니티도 없던 외동아이에게 '눈치 좀 챙기라'라고 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초반에는 '눈치를 챙긴다'와 '눈치를 본다'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 눈치를 보곤 하더라.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생각하는 건, 눈치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눈치를 보는 거‘라고 말했지만, 이 말을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였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이 행동은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라 눈치를 챙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의 일환 정도로는 보여서, 그리고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아이는 원래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애교가 없는 건가 싶었는데 너무 다행이고..

소리지르지 않음을 선택한 나의 행동도 잘 한 것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거가 맞다.


해야 하는 행동을 하고

해서는 좋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오븐의 온도를 170으로 예열한다.

나영이가 요즘은 croissant을 입에도 대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쨌든 3개를 냉동실에서 꺼내서 구울 준비를 한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홍차를 꺼내고,

우유 400 미리 정도 컵에 붓고 젖병 데우는 기계에 쏟기지 않게 조심스럽게 놓고,

충전 중인 휴대폰을 들고 AI에게 갑자기 떠오른 일 하나를 물어본다.



9시 40분.

답변이 생성되며 빠른 속도로 문장이 완성되어 가는 중에, 제이가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어 그리고 눈빛도 요 며칠과 전혀 다르다.


아침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정상인의 모습을 장착하기로 ‘지 스스로 선택‘한 거다.

어제까진 지 엄마집에 안 간다고 쌩쇼를 하더니만.

어제는 내 이럴 줄 알고 대꾸 자체를 안 해줬다.


지 엄마는 저렇게 행동하면 걱정을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녀처럼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매일 대면해야하는 인간이다. 인간? 상황에 따라 다르지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 술이 깰 때까지 피해있던가.


어항에 있는 달팽이들이
산소를 다 빨아먹는 것 같아.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 굵은 놈은 꺼내든가


승낙을 받은 듯 기분이 꽤 좋아져서는 한 마디 더하네


샐러드 이파리를 찢어서 물 위에 놓으면 모든 달팽이들이 위로 올라와서 꺼내기 쉬워진데.


그럼 냉장고 안에 신선실 위 왼쪽에 있어 쌀라드.


기뻐하며 봉다리를 집어 들고는 내가 묶어둔 매듭이 잘 안 안 풀리는지 다시 집어넣는다. 내가 봉지를 열어 주려고 하니 생각이 바뀌었다며, 달팽이들이 어항 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말도 엔간히 바꿔야지. 대꾸를 않는다. 매듭 못 풀어서 그런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브런치북 파리사리 1인지 파리사리 2에서 이 인간의 바캉스를 맞이하는 모양새가 어떤지 적어 놓은 적이 있던 거 같은 데, 2주간의 이번 노엘 바캉스에도 예외는 없었다. 지난 금요일 밤부터 어제저녁까지 해서 4일 5일 정말 사람을 어찌나 달달 볶아대었던가. 이번에는 동료들의 배우자가 노엘 바캉스 연휴비로 16,000유로를 받고, 자기 동료보다 더 벌어서 합하면 기본 월급만해도 1만유로라는 요즘 그가 자주 인용하는 이 소재를 날 볶아댈 때마다 기름 삼아 들이부었다. 보너스가 2천5백만원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고 거짓말 같기도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 여기는 프랑스니까,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이라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깐. 솔직히 그 배우자들 의사, 팔레 드 도쿄, 베르사유 교육청, 심지어 마크롱의 그 엘리제궁 등에서 일하는 거 나도 알고 있다. 수입도 좋고 바캉스도 즐기고.. 상위 계층 언저리에서 놀겠고. 돈의 속박에서는 진즉에 해방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죽 볶아대야지. 정말 암이 걸릴 지경이다.

바캉스 시작되던 금요일부터 5일을 고문하고 또 고문하더니.. 오늘 아침엔 취기 없이 깨끗한 착한 눈빛 장착. 몇 시간이 갈지, 언제 어느 구석탱이에서 주입할 지.


오전 11시 20분.

코치들에게 줄 쇼꼴라, 아이 물, 내가 마실 차, 아이 장갑, 빠땅, 맥북, 휴대폰.. 잊은 게 없나.. 일단 내일은 스타쥬가 없기에 늦지 않게 출발하려고 나서는데 제이가 자기도 간단다

그럼, 점심은 누가 해?

스타쥬를 마치고 오면 한시가 넘는다.

그때 점심 준비하면, 두시에 먹고 세시가 넘어야 출발하는데,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달리면 세 시간, 왠만큼 밀리면 네 시간이 넘는 거리다. 고속도로 올리기 전에 빠리 쪽 벗어나고 북쪽 일드 프랑스 넘어갈 때 이 마의 구간에서 사고가 있었던 어느 해엔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과, 밀폐된 공간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정말 정신병 걸릴 지경까지 몰아가는 그의 야만성에 내 심장은 아이에 대한 걱정과 뒤범벅이 되곤 한다.


이런 속은 아는 지 모르는 지 계속 함께 가고 싶어한다.

아이는 엄마랑 스타쥬 갈거라는데,
그럼 점심은 누가 하니?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무슨 티타임이라도 하는 줄 알고 자기도 데려가라고 나서는 폼에서, 벌써 한 잔 한 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한다. 저것이 흡수되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림을 감안하면, 절대적으로 당신은 우릴 따라올 수 없습니다.


오전 11시 45분 스케이트장 학부모대기실.

초대장 사건 아이의 엄마와 그녀의 둘째 아기와 유모차. 그리고 8세 이리나 엄마와 셋째 아이이자 둘째 딸 3세 아이, 어김없이 지정석에 단정하게 위치해있다.


언젠가 이리나라는 이름을 사전으로 찾아보았다.

너무 인상 싶어서. ‘어째 저래?‘싶어서.

‘최고가 되고 싶어 하고, 게으름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성실의 대명사‘

이름값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한 번도 지각을 하거나, 수업 중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이리나.


11-8-3-1살 아이 4명을 가진 엄마,

33세지만 네 아이의 엄마로 흔들림 없는 그녀의 셋째 아이가, 아나에의 동생 베베를 돌보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너무 사랑스럽다.


에밀리 아빠의 말이 에코처럼 들린다.

볼룸댄스 시간에 뒤에 앉아 있던 학부형들 사이에서 우리는 유독 찐친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쉴 새 없이 정신 놓고 하곤 하는데, 춤을 추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그가 한 말이다. 저기 저 아이들 보세요, 그다음 문장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꿈, 희망, 미래 이런 것 같다. 솔직히 이런 얘기에 백퍼센트 동의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보세요

이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련다.

오십이 다 되었지만 미혼인 친구도 많은, 고등학교 예술반 출신 여자로써 그리고 연애와 결혼 육아 등에 1도 관심없었던 나, 너무 아이 아이 아이 얘긴 하고 싶지 않고, 또 아이 인생과 내 인생은 철저히 분리한다.


오후 12시 50분 탈의실.

이리나 엄마, 아나에 엄마 그리고 에밀리 아빠와 노엘인사를 나눴다. 특히 서른셋인데 아들 둘 딸 둘 11-8-3-1살 아이들의 엄마에게는 수퍼마망이라고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니 나영이는 시작한 지 100일 정도인데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칭찬으로 응답해 주었다. 여덟 살 세 살 이 딸 둘이 아주 똑같이 생겼다. 엄마 판박이다. 이리나와 우리 집 딸내미가 볼룸댄스에서는 최후의 2인으로 계속 올라가서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엄마도 아이도 솔직히 참 사랑스럽다. 뭐 일단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일주일에 여섯번, 화 수 목 토 이렇게 4일을 보는 사람. 각 세울 필요가 뭐 있겠는가.


대기실을 나와 탈의실 입구에서 유모차를 끌고 딸내미를 챙기고 있는 띠동갑엄마를 만난다.

아나에는 금요일 보자 하니, 스키바캉스 떠난다고 한다. 초대장 사건 따위가 대수냐. 이 아이의 눈빛도 따수롭고 선하고 사랑스럽다.

“우와~~~ 정말 좋겠네! 그럼 월요일에 보자!! Joyeux Noël!” 초대장은 안줬지만 그래도 이쁜 아나에에게 오바하는 아줌마 모드로 성탄인사를 전했다. 예쁘긴 참 예쁘다. 지 할미가 어린이집 대신 키워줬다는데 정말 똘망이로 잘 키워 놓은 것이다. 그리고 초대장도 알고 보니 모두가 다 받은 것도 아니었다. 뭐 이렇든 저렇든 흘러간 과거일뿐. 하등 문제될 일 없다.


왼쪽 탈의실에 내 절친이 되어버린 듯 편안하고 에너지 드링크 같은 에밀리 아빠가 크디큰 미소로 우릴 반긴다. 나는 우선 금요일에 오는지 물어봤다. 그렇다고 한다. 부모남 열 살 많은 누나 형 그리고 중고등 대학생 조카들 다 근처에 살고 있어서 특별한 일 없음 스타쥬 온다고 한다. 옷은 언제 또 그렇게 사 입었냐니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게 하려고 하는데, 엄지 척을 안 해줄 수가 없다. 양손으로 해준다. 쌍엄지 척.

아이들이 선물에 대한 얘기를 하는 동안, 에밀리아빠는 귓속말로 이번에는 산타복장을 제대로 준비해서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고 한다.

동상이 아주 여러모로 이쁜 짓만 한다.

여하튼, 나이차이 많이 나는 형과 누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이 큰 명절에 가족이 다 쉽게 모일 수 있는 것. 이거 진짜 큰 복이다.

일단 나는 가야 할 길이 머니까.. 금요일에 봅시다.

주차장에서 또 만나서 빵빵거리기에 보니 에밀리도 지 아빠처럼 창문을 내려 우리 집 딸아이에게 Joyeuses fetes de Noël! 하고 있다.

‘우리는 점심 먹고 아이 할머니집에 가서 금요일에 올수도 있고 못 올 수도 있다 뭐 어찌되었건간에 Joyeuses fetes de Noë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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