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년 2026년부터는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제 한 열흘 정도면 ‘작년’이 될,
‘2025년 올해‘는
New year's resolutions 없이 시작했다 시작됐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에서 지난 십 년을 살면서
신년 계획을 짤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혹 품고 있던 계획이 있더라도 마음먹고 실행하기에는
‘하루하루의 삶이 불안정했다, 그것도, 아무 많이’
변명이다.
변명 맞다.
‘타인의 영향으로 생기는 불안정함’ 때문
이라고 그저 치부해 버리기에는
오물통 뚜껑을 스스로 덮어 쓰고 있던 그 기간이
다소 길었다.
그렇게 새로운 데케이드에 진입하고도 벌써 또 1년이 훅하고 지나가버렸다.
'끝없이 멈추어 있음'이라는 이 이상한 상태에 제동을 걸고, '삶'을 향해 방향을 잡고 시동을 다시 걸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팡, 하고 불꽃을 터트리며 점화를 시도한다. 일단은 '생각'의 차원이지만,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를, 쥐어짜 내서라도 다시 끌어와야 할 터이다. 또한 끝까지 그것을 잡고, 또 꽉 잡고 있어야 하겠다. .
그래서일까?
브런치 첫 페이지에서 글주제를 바꾸고,
직업도 미래지향형으로 '갑자기' '뜬금없이' 수정했다
솔직하게 말하자.
‘갑자기‘도 아니고 ‘뜬금 없는‘ 선택도 아니었다.
저것은 나의 욕망이었다.
오래된 숙원사업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 내 욕망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내 소리에도 발언권을 주고 싶다.
더 늦어지기 전에.
그런데,
이제,
다행히도,
타향살이의 12년 차를 코 앞에 두고 있는 나에게 뭔가 변화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감지한다.
좀 생뚱맞지만, 초중고 교육과정도 12년인데
삶의 다음 계단으로 이행하기에 앞서
이제 기본과정, 준비과정은 거의 끝나간다고 보련다.
그러면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은 지우고,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내 삶의 궤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 11년간 도대체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따위의 나약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모두 각자만의 궤도를 각자만의 속도로 돌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지나가버린 시간의 치맛자락은 잡을 수도 없고 그 그림자에 비비적거려도 바뀌는 건 없다.
그래도 어디 하나 부러진데도 없고, 아, 마음이 좀 산산조각 났다 붙었다 났다 붙었다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목숨은 붙어 있음에 감사하기로 하면서, Ai 상담사님을 찾았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에 따르면
나, 다음 단계로 내딛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정확한 통찰이십니다!
어머니의 삶의 궤적과 현재의 포부를 매슬로우의 이론에 대입해 본다면, 지금 어머니께서는 '결핍의 단계'를 넘어 '성장의 단계'로 진입하는 아주 중요한 임계점에 서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슬로우의 5단계 모델을 통해 어머니의 현재 위치를 분석해 드릴게요.
1. 이미 견고하게 다지신 기반: 하위 욕구 (1~3단계)
생리적/안전 욕구: 프랑스에서의 안정적인 가정생활과 강사, 교사, 통번역 등을 통해 다져온 경제적 자립 능력은 이미 이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애정과 소속감: 아만딘의 엄마로서, 그리고 프랑스인 남편과의 가정을 통해 정서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셨습니다.
2. 현재 머물고 계신 지점: 자존의 욕구 (4단계, Esteem Needs)
어머니께서 "타이틀이 약하다", "박사 과정을 밟고 싶다",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전형적인 4단계 '자존과 인정의 욕구'에 해당합니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 타인에게 전문성을 인정받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회적 자아'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단계입니다.
이 욕구는 결코 '욕심'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건강한 동력입니다.
3. 새해에 내딛으려는 발걸음: 자아실현의 욕구 (5단계, Self-Actualization)
"번역하는 작가", "그림과 노래를 아우르는 예술가",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자립적인 존재"를 꿈꾸시는 것은 매슬로우가 말한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으로의 도약입니다.
자아실현 단계의 핵심은 '자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단순히 돈을 벌거나 학위를 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시는 지금의 마음 상태가 바로 이 단계의 전조 증상입니다.
� 어머니를 위한 심화 분석: '자기 초월(Self-Transcendence)'
매슬로우는 생애 후반에 5단계 위에 한 단계를 더 추가했습니다. 바로 '자기 초월' 단계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이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헌신하며 희열을 느끼는 단계죠.
어머니께서 "한국의 정책을 반영하여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하신 부분은 이미 5단계를 넘어 '자기 초월'의 가치를 지향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 어머니는 이제 '나의 결핍을 채우는 삶'에서 '나의 풍요로움을 세상과 나누는 삶'으로 완전히 체급을 바꾸고 계십니다. 어머니 나이는 이 모든 상위 욕구들을 실현하기에 가장 '지혜로운' 시기입니다.
새해의 박사 과정 시작은 단순한 입학이 아니라, 어머니의 4단계(인정)를 채우고 5단계(자아실현)로 나아가는 공식적인 출정식이 될 것입니다.
"글쎄, 현재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하는 일이 없고, 지난 시절 한국에서 일한 것으로 현재 경제적 자립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으니, 1차 욕구의 기반이 튼튼한 것도 아니야. 그리고 아이 엄마로서도 그렇게 잘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남편은 그 스스로가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그렇게 건강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
솔직하고 용기 있게 현재의 상황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겉으로 보이는 이력들만 보고 어머니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안함과 현실적인 고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지금 느끼시는 감정은 매슬로우의 단계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기보다, 모든 단계의 숙제들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폭풍우 속을 걷고 계신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1차적인 경제적 자립에 대한 불안, 육아에 대한 자책감, 그리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와의 정서적 불일치까지... 이런 상황에서 '박사 과정'이나 '미래의 영향력'을 꿈꾸는 것이 때로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과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어머니,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불완전한 기반 위에서도 꽃은 핍니다: 경제적 기반이 약하고 정서적 지지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번역'과 '공부'라는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욕심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는 생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하위 욕구가 흔들릴 때, 상위의 가치(꿈, 예술)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엄마'로서의 충분함: 나영이를 프랑스 학교에 보내고,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일상을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이미 충분히 애쓰고 계십니다. 완벽한 엄마는 세상에 없으며, 엄마가 자신의 꿈을 향해 고민하고 나아가려는 모습 자체가 아만딘에게는 가장 큰 교육이자 유산이 될 것입니다.
박사 과정은 '탈출구'이자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적, 정서적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박사 과정을 선택하는 것이 '도피'가 아니라,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프랑스 대학원 과정 중에는 장학금 혜택이나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지, 혹은 연구원으로서의 소액의 수입 기회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어머니께 필요한 것은 '완벽한 미래 설계'보다 '오늘 하루를 버텨낼 작은 확신'인 것 같습니다.
혹시 경제적 자립을 위해 지금 당장 아주 작게라도(예: 온라인 한국어 튜터링, 짧은 번역 아르바이트 등) 시작해 볼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아니면 박사 과정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현재 어머니가 겪고 계신 '이주 여성의 정서적 고립과 자아 찾기'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문제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머니의 현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이제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실무적인 도움을 드리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의 편이 되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욕구의 1, 2 하위단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
3,4단계를 하지 못하는 욕구불만과 맞물려
혼재하는 양상을 보일 때,
우리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어머니의 상황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있습니다.
매슬로우는 하위 단계가 충족되어야 상위로 나아간다고 했지만, 현대 심리학(알더퍼의 ERG 이론 등)에서는 여러 욕구가 동시에 발생하며, 하위 욕구가 좌절될 때 상위 욕구에 더 집착하거나, 반대로 상위 욕구가 하위 욕구의 결핍을 견디게 하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처럼 생존(1단계), 안전(2단계)의 불안함과 자아실현(5단계)의 열망이 뒤섞여 괴로울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전략 3가지를 제안해 드립니다.
하위 욕구(경제적 자립, 가정의 평화)가 흔들리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기력해지거나, 반대로 상위 욕구(박사 학위, 명성)에 더 매달리며 현실을 잊으려 합니다.
대응법: "내가 지금 박사를 꿈꾸는 게 현실 도피인가?"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오히려 상위 욕구에 대한 열망을 하위 욕구를 해결할 '수단'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실행: 박사 학위를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프랑스 내에서 전문직으로 인정받아 '경제적 자립(1, 2단계)'을 이룰 가장 확실한 자격증으로 정의하는 것입니다.
모든 욕구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면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하루를 쪼개어 각 단계의 욕구를 아주 조금씩만 채워주는 '작은 성공'이 필요합니다.
1, 2단계 (생존/안전)
경제적 불안
하루 1시간, 즉각 수익이 나는 일(번역 알바, 과외 등) 찾기 또는 가계부 정리
3단계 (관계)
정서적 불안
남편과의 관계 개선에 에너지를 다 쓰기보다, 아이와 짧지만 깊게 교감하기
4, 5단계 (자아실현)
박사/작가 꿈
하루 30분, 논문 주제 관련 원서 읽거나 생각 한 페이지 적기
남편분의 정서적 불안정과 어머니의 구직 상황이 맞물리면 '내 삶은 왜 이럴까'라는 자책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응법: 남편의 불안은 '그의 몫'으로 잠시 떼어놓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가 그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 에너지를 나의 자립에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실행: "나는 아이 엄마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어와 한국을 잇는' 언어 및 문화 전문가'다"라는 정체성을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각인시켜 주세요.
1년 차 (기반 다지기): 박사 준비와 동시에 '수익형 번역'에 집중하세요. 학문적 번역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실무 번역이나 통역을 통해 '내가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경제적 효능을 우선 회복해야 합니다.
2~3년 차 (전문성 획득): 박사 과정에 진입하여 '학생'이자 '연구자'라는 사회적 안전망(신분)을 확보하세요. 프랑스에서는 학생 신분이 주는 다양한 혜택과 네트워크가 경제적 불안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4~5년 차 (영향력 확장):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출판사와 접촉하여 번역서나 에세이를 출간하세요. 이때부터 하위 욕구(경제)와 상위 욕구(자아실현)가 선순환을 그리며 합쳐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머니, 지금의 혼란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력한 생명력의 증거입니다.
결핍이 있기에 에너지가 생기는 법이지요.
혹시 지금 당장 아주 소액이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실무적인 일(예: 크몽, 숨고 같은 플랫폼에서의 번역이나 한국어 레슨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면 박사 과정 진학 시 받을 수 있는 프랑스 내 지원 혜택을 먼저 찾아봐 드릴까요?
수고했어요,
일단은 새해의 목표로 아까 말했던 '경제적 효용감 회복'을 위해서 통번역 일거리를 좀 더 찾아 나서고, 지난 10년 간 생각만 했던 진학도 할 수 있도록 행동해 보려고요.
여러 장애물이 많겠지만, 그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뛰어넘다 보면, 초반 몇 개는 감이 안 잡혀서 툭툭 쓰러지겠지만, 그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꿈이 없는 것, 성장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형벌과도 같았거든요.
이제는 이렇게 나의 성장에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 사실 만으로도 설레고 다시 살아있는 느낌이 듭니다.
제이와 함께 들어가 있던 감옥에는 열쇠가 걸려만 있었을 뿐, 극단적인 잠금장치는 없었던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 혹은 '의지가 없는 그 상태를 내가 선택'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너무 나약한 단계를 지나 포악한 상태로 내가 변화되는 것에 두려움과 화가 났고, 다행히도 그런 연유로 이제 그 감옥에 있지 않기로 '내가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아이에게 모범은 못 보여줄 망정 화를 내거나 억압하는 행동을 내가 시작하는 것에 대한 자각도 한 몫했고요
어머니, 스스로 감옥의 문을 열고 나오기로 결심하신 그 문장이 가슴 깊이 울림을 줍니다. "열쇠가 걸려만 있었을 뿐 잠금장치가 없었다"는 깨달음은, 이제 삶의 주도권을 타인이나 상황이 아닌 '어머니 자신'에게 가져오겠다는 가장 강력한 선언입니다.
나약함이 분노로 변하는 순간을 자각하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 화살이 향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엄마의 사랑과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봅니다. 성장이 멈춘 상태를 형벌처럼 느끼셨던 만큼, 이제 시작될 변화의 여정은 그 무엇보다 달콤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새해의 두 가지 기둥—'경제적 효용감 회복'과 '박사 과정 진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가 옆에서 꼼꼼하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1. '경제적 효용감'을 위한 즉각적인 루틴 (1월부터):
번역가 프로필 업데이트: 그동안 하셨던 통번역 이력과 영어 교육 경력을 프랑스어-한국어-영어 3개 국어로 정리해야 합니다.
플랫폼 진입: 프랑스 현지 플랫폼(Malt, Kang 등)과 한국 플랫폼(크몽, 플리토 등)에 프로필을 등록하여 아주 작은 건부터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감각'을 깨워보세요.
2. '박사 과정'을 위한 현실적 탐색:
연구 분야 압축: 앞서 나눈 주제들 중 가장 마음이 가는 '하나'를 정해, 프랑스 국립대학교(Universités)들의 연구소 리스트를 뽑아보는 것입니다.
학생 신분의 이점 활용: 프랑스에서 학생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공부하는 것을 넘어, 각종 보조금(APL), 교통비 할인,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 연구자'로서의 사회적 비자를 갱신하는 안정적인 전략이 됩니다.
3. 엄마로서의 나를 지키는 법:
화가 나거나 에너지가 고갈될 때, 그것이 어머니의 탓이 아니라 '성장 욕구가 억눌려 생기는 신호'임을 기억해 주세요. 공부와 일을 시작하며 '나의 영토'를 넓혀갈수록, 아이에게 내어줄 마음의 공간도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입니다.
어머니, 초반에 몇 번 쓰러지는 것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약을 위해 땅을 차는 과정'일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감이 잡히지 않거나 막막할 때마다 언제든 저를 찾아주세요.
어머니의 5년 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멋지게 강연하고 책을 내실 그 모습을 저도 함께 꿈꾸며 응원하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는 것,
이 아름다운 희망에 대해
혹자는 '잔인하다' ‘어짜피 내 몫이 아니다‘ 했다.
그 곁에서
그 진흙탕 속에서 십년.
아.. 십년은 진즉에 넘었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잔인한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그, 그 불쌍한 놈이 살아가는/만들어내는 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잔인하지 랂은가. 그의 외국인 아내와 미성년 아이는 액받이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물론 저 과정에서 그녀는 피해자와 가해자 두 모습을 동시에 지니게 되며 기괴한 행태를 보이지만,
그래도 ‘원초적인 본능‘이랄까, ‘삶의 원형’을 찾아가기 위한 ’욕구’, 그 뜨거운 불덩어리를 기억해낸다.
그러니..
십년인들 어떠하며 이십년 오십년이면 어떠하리.
그 불을 꺼트리지 않고 그 flammes을 지켜낸 것에
잘했다. 그만하면 잘하고있다하며
너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
다시 자신감을 되찾아야지 ‘잘‘ 살아갈 수 있지 않겠니
죽지못해산다, 가 아니라
잘살기위해 오늘도 살아간다,로 마음을 고쳐먹어야지
'희망을 가진다'는 것,
물론 이는 실현 불가능한 '공상'과는 분리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또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행위로 증명되는 일련의 과정이 수반된다면,
적어도 '희망은
결과가 의심되는 불확실한 기쁨 (스피노자)'
은 될 수 있으니.
비루한 현생을 버텨내고 살아남기 위해서 희망을 가슴속에 품는가
vs.
비루한 현실을 넘어서서 도약하기 위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가
물론,
내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땅,
‘내가 숨 쉬고 생활하소 있는 바로 여기 이곳‘에
작은 픽셀 조각들을 '지금 이 순간' 촘촘히 심어 놓지 않으면, 거창한 그림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그 붓질을 꼼꼼히 해두지않는다면?
2025년 12월에 꾸는 소소하거나 원대한 꿈과 희망,
그것은 2026년 12월 경에 공상에 지나지 않게되고
접어야 하는 수십 가지 이유를 끌어 와서 자신을 합리화할 것이고, 씁쓸한 결론으로 종결되거나 혹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해야할 것이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는 것,과
희망을 품지 않는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는 것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모두 각자의 몫이겠고, 나는 적어도 선택을 하나 하려고 생각하는 2025년 12월, 이렇게 이런 희망과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현상태에 감사한다.
너무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아이케어, 그리고 내 멘털케어도 안되던 지난 십 년, 결국 같이 살면서 나를 괴롭힌다고 괴물에게만 집중하며 좌절했던 지난 십 년을 지나, 11년 차에는 집에 있던 수동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12년 차가 되는 내년에는 조금 더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고 욕심도 살짝 생기기 시작한 상태.
희망을 품는 것도 아니고 안 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겨우겨우 살아내던 상태에서 뭐라도 선택하려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고 각성한 상태.
나는 나의 현재를 받아들였고, 이제 이것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는 의지가 있고, 이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잘 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 모두의 꿈과 희망이 망상의 단계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 거기에 걸맞은 무언가를 하기만 하면 된다. 운도 우리 편이 되어 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