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 일기 9.10.11일차

결근했던 금요일부터 계산하면, 남편은 휴가 3 4 5일 차

9.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제이가 어제 아침에는 9시에 일어났다. 이것은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감 게이지가 약간 올라간다.


어제부터 난 '내일 아침에 반드시 집에서 나가리라 기필코 해내리라' 다짐했다. 주일이고 아니고 날이 좋고 안 좋고 信者고 안신자고를 떠나서, 다행히 내일 오전에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갈 곳이 있어서 그냥 집만 나서기만 하면 된다.


특히 네가 아침 열 시에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침 열한 시에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있다는 것이고 오후가 되어도 여전히 그 확률은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괜히 그렇게 함께 있다가 아침부터 자체 엠바고에 걸릴 나는, 네가 가뿐하게 털고 일어나는 오후 즈음에는 이미 지쳐서 너에게 짜증 내는 꼴을 아이에게 보일 확률을 높일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아이의 불안도는 올라가고 자존감은 낮아질 확률을 높일 것이다. 그러니 나가야 한다. 그 어디든 가야 한다.



아이와 100세 생일 신부님 생일축하하러 가는 데 가보려고 생각 중이라 9시 30분까지도 안 일어나면 우리끼리 걸어서 교회에 가기로 한다. 11시 미사인데 10시까지 오라고, 중요한 메일이라면서 왔기에 지각하지 않고 가려고 했지만 9시 50분에 출발했고 10시 10분이 다 되어서 도착했다. 6명의 아이들이 이 생일파티에서 뭘 한다고 했는데, 3명만 도착해 있고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야 둘이 느긋하게 그들의 부모와 함께 들어온다. 전혀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냥 장미꽃잎을 뿌리는 그 정도의 일이었다. 난 단상에 올라가는 것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그래도 워낙 일찍 도착하였기에 저번에 못 받은 종이 쪼가리는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도우미 아이들을 위한 둘째 줄 지정석 바로 뒤에 앉았다.


아이가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2시간 반동안 앉아 있는 것은 곤혹인듯했다. 첫째줄에는 (인도) 인디언 가톨릭신자들이 무슨 등이 다 파진옷들을 입고, 반은 그렇지 않았지만 화장을 거의 무대화장 수준으로 하고 머리에는 금색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세팅까지 말고 아주 현란한 전통의상으로 앉아있다. 내가 프랑스 다민족 국가에 살고 있을지언정, 진정한 유교정신으로 똘똘 무장한 중년 여자라서 그런지 저 꽃띠 아이들.. 기껏해야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여자 아이들이라 해도 장소에 따라 좀 예를 갖추면 좋을텐데.. 물론 내가 너무 보수적일수도 있지만, 아이 도우미 활동 관련 메일에도 가능하면 흰색 옷을 입고 오라고 되어 있었고, 아무래도 주간이 주간이다 보니 신부들도 그렇고 모두 흰색을 입고 있는데.. 빨강 금색 등 강렬한 색이 주류인 거의 칵테일 드레스 수준의 등판이 훤히 다 보이는 옷에.. 끈으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그것은 툭 치기만 해도 스르르 풀릴 것 같은데.. 그렇게 권장할 모양새는 아니지 않는가. 그냥 전통이나 문화적인 부분의 차이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이제 그만 쳐다보기로 한다. 이 성당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데 문화와 색깔과 모든 것을 점령해 버린 것은 맞다. 적어도 오늘은. 프랑스가 그렇지 뭐.. 늘 이런 식이지. 음... 그래도 생일축하를 단상 위에서 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니.. 별 것도 아닌 것에 이렇게 불만이 길 이유가 있는가.. 내 심기가 오늘 영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하튼 아이 도우미 관련 메일에서는 엄청 중요한 임무를 맡기는 듯해서 참가를 결정한 건데, 결국은 저짝동네에서 준비해 온 각종 꽃이나 과일류 헌사하는 것이 훠얼씬 중요도가 높아 보인다... 아까부터 한 남매가 눈에 띄는데 그 엄마가 꼬맹이들 꽃잎뿌리는 차례에서 벌써 그 큰 아이들을 함께 보냈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더니.. 심지어 아이들 자리에 두 자녀를 착석시키기 위해 좋은 자리 위에 있던 가방을 저쪽 오른쪽 끝에 가져다 놓고 그 자리에 자기 아이들을 앉힌다. 결국 과일과 꽃을 헌사하는 시간이 왔고 그 인도 커뮤니티 가톨릭신자들은 줄을 서서 바나나 사과 오렌지 포도 꽃다발 꽃화분 꽃송이 등을 전달한다. 적어도 스무댓 명 되어 보이고 가장 마지막에는 묵주를 서너 줄 해서 목걸이 식으로 만든 금색과 빨간색의 천이 덧댄 처음 보는 그런 것이 자크 신부님의 목에 걸린다. 백세셔서 그런지 화려한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정말 표정이 아까 꽃이랑 과일바구니 받을 때와 천지차이다. 백세신데 정정하셔서 첨 뵙는 분이지만 보기가 좋구나.. 시장까지 와 있는 자리라 그런지 근처 동네 인도인들까지 싹 다 모인 이색적인 현장이다. 여하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인도엄마들 극성도 직관하고 나니..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의 교육과 문화 사회적인 뿌리를 저렇게 전 식구적으로 전커뮤니티그룹차원에서 지지하는 것을 보니 약간 쭈글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리 딸내미 잘 키워내고 싶다. 그런데 아이가 어찌나 adhd증상을 보이는지 참... 뒤에 앉아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산만한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너를 보니 참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구나.. 뭐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내가 정신 차리면 충분히 좋은 영양액을 수액 해주면 확 살아나고 꽃은 다 피는 시기가 다르지 않은가. 걱정 마, 튼실한 열매도 맺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믿기만 하면.



오는 길에 훈제 연어와 통밀빵 그리고 하겐다즈 캐러멜 아이스크림을 샀다. 13시, 아침 산책과 세상구경을 하고 집에 도착했다. 점심이 너무 늦어질까 봐 샌드위치를 바로 준비한다. 아보카도를 으깨고 딱히 소금이나 후추 크림버터나 마요네즈 등은 넣지 않았다. 아보카도만으로 충분히 맛있고 오늘은 왠지 최대한 담백하게 먹고 싶다. 훈제연어는 4장이 얇게 슬라이스 되어 있는데 두장만 꺼내고 냉장고에 다시 넣어둔다. 갈색 통밀빵은 빵집에서 슬라이스 해달라고 해서 꽤 얇다. 세 장으로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면 되겠다. 아이가 양상추를 넣으면 뺄 것 같아서 그냥 한쪽에는 눈부신 베이비그린색을 자랑하는 아보카도를 바르고 두 번째 장에는 오렌지색 훈제연어를 넣기로 한다. 혹시나 아이가 들고 있다가 훈제연어가 쭈르륵 떨어져 버릴까 봐 빵에 버터를 아주 얇게 발라서 풀처럼 이용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정원 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약간 남겼다. 그래도 아보카도를 듬뿍 넣었는데도 먹을 줄 아는, 먹어주는 모습에 감사하며 아까 산 아이스크림까지 가지고 오라고 해서 한 통씩 맛있게 먹었다. 간단하게 끼니를 한 끼 해결했다. 아이는 햇빛아래서 봉봉을 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에 충실하다.



그는 점심 저 간단한 샌드위치도 먹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 시간인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가 아빠를 찾는다고 돌아다니다가 '지하에 내려가볼까? 아빠 일하고 있는가 봐'라고 한다. 반지하에 그의 서재랄까 재택근무 방이 있다. 또 다른 방이 하나 더 있는데, 반은 바닥공사를 하지 않았고 또 반은 시멘트가 발라져서 완전히 창고로 쓰기도 애매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한 번씩, 그러니까 몇 달에 한 번씩 그가 사라지면 저곳을 그의 동굴로 사용하고 있다. 습하지는 않지만 어두운 그곳을 노숙자체험활동실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잊을만하며 엎어지고 잊을만하면 갈아엎고.. 진짜 간접적으로 나도 같은 체험 활동을 하다 보니 지친다. 정말..


빠빠! 빠빠!

왜? 왜 계속 불러?

왜 아빠 계속 안와? 아빠 어딨어?

조금 있음 올거야..

아빠 일하고 있어?

아니야 그냥 엄마랑 놀자..

오늘 일하러가는 날이야?

일요일이잖아..

아 맞네.. 그럼 어딨어..?

모르겠어.. 걱정하지 마

내려가볼까?

아니야, 엄마가 가봤는데 없었어.

아빠 보고싶어.

잠시 슈퍼마켓 갔나 봐.

같이 놀고 싶은데..

일루 와.. 엄마랑 놀자..



벌써 여기 이사온 지 2년이다. 세탁기가 지하에 있어서 빨래를 하러 지하로 가는 것에 당연히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이 인간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없어진 경우에 그를 찾으러 그 애매한 문을 열기 위해 가는 길은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이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이런 경우에 내려가서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었던 광경'들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와 짜디짠 파도처럼 훅하고 나를 덮치며 기선을 제압한다



저녁엔 무밥을 했다. 큰 무 한 덩어리의 허리 부분을 댕강 잘랐다. 남은 반은 종이재질로 감싸서 냉장고에 넣고, 남은 것은 잘게 채를 썰어 둔다. 쌀은 세 컵을 깨끗이 씻어 밥통에 넣는다. 그 위에 준비해 둔 무를 올리니 밥통의 max부분까지 꽉 찬다. 무가 쌀 보다 훨씬 많다. 소금도 뭐도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그냥 담백하게 먹고 싶다. 양념을 만든다. 마늘 여섯 조각과 파의 흰 부분을 저며서 볼에 담는다. 통깨를 다섯 숟가락 으깨서 여기에 추가한다. 간장은 진간장 네 숟가락 일본간장 두 숟가락을 넣는다. 며칠 전에 산 참기름은 숟가락 개량 없이 쭉 들이부었다. 에라, 아껴서 뭐 해. 모두 섞어서 맛을 본다. 후추와 생강가루 그리고 마늘가루를 아주 조금 섰는다.


쿠쿠 하세요~ 쿠. 쿠.


아.. 밥이 그새 다 되었다. 밥통을 열고 밥을 좀 풀어주고 한 김이 좀 빠지고 나서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생선을 세 마리 구웠다. 아이를 불렀다. 아이가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아빠가 아직 없다고 하자, 지하 사무실에 가볼게 한다. 아니야 내가 가볼게 하며 아이를 제지한다. 아이에게 못 볼 꼴 보게 해서 무슨 트라우마를 더 추가하려고..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고 아이가 들리도록 그의 이름을 불렀다. 딱 두 번만. 아이에게 아빠 볼 일 보고 조금 있다가 오는가 봐라고 했다. 그는 분명히 집 어딘가에 있다. 그의 엄마가 사준 신발과 내가 사준 신발이 저기 그대로 있다.



아이가 자야 하는 시간 저녁 9시가 코 앞이다. 아이와 함께 양치질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오늘은 인디언의 불이야기이다. 아이가 이해를 크게 잘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나부터 집중이 안되어서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굿나잇 인사 후 불을 껐다.


나오려는 데 아이가 아빠가 죽은 거 아니냐고 한다. 이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적잖이 당황했다. 저 콩알만 한 계집애가 하루 종일 지 아빠 걱정을 얼마나 했으면 저런 소리까지 하게 되었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푹 자라고 하고 꼭 안아 주고 무거운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여학생이 있다. 네일라. 그 아이의 이름이다. 같은 반인데 한 살이 많다. 키도 머리 하나는 더 크다. 진실은 모르겠지만, 아이말에 따르면 그 아이의 아빠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직접 그 아이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나와 동갑이다. 그래서인지 보면 친근하다. 근데 큰 아들이 벌써 스무 살이 넘었다는 대목에서는 많이 놀라기도 했다. 학기 중에도 자주 결석을 하곤 하는데 아이말에 따르면 파리 디즈니랜드에 갔다 왔다고 한다. 방학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주중에? 아무래도 사람들이 적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중이용권이 있나 보다 했는데.. 그녀의 마음이 쓸쓸한 걸까 남편이 진짜 자살을 한 걸까. 그런 사건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건가.. 진실은 오리무중이지만.. 일단 아이가 오늘 하루 아빠의 부재로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는지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웠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내려가서는 곧장 그가 있을 그곳으로 가서 무거운 철제문을 열었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흙과 시멘트 반반인 그곳에서 시멘트 쪽에 누워있다. 추운지 한껏 웅크리고 손을 반팔티셔츠 소매 안에 쑤셔 넣은 상태로. 일어나라고 두 번 말했다. 술을 마시고 늘어져 있는 폼이 이젠 너무 지긋지긋해서 화가 났다. 처음엔 걱정하고 슬퍼하고 왼팔을 오른팔을 잡아 올리려고도 해 보고 내 온몸을 지렛대로 삼아 일으켜보려고도 하고.. 그랬다.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해가 되었다. 이곳으로 찾아들어온 것은 대여섯 번이다.


처음으로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로 돌연 결심한다. 오늘 난 널 끌어올리려고 완전히 축 늘어져 있을 너를 위해 애쓰고 또 나까지 엎어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10-1.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새벽


오전 다섯 시 반, 동물의 포효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것은 분명 좋은 신호가 아니다.

지난 밤 자신을 왜 건져내주지 않고 너는 잠이 오느냐, 나는 이렇게 너무 힘들고 외로운데 이건 공평하지 않다는 듯, 길고 강하게 지속적으로 울부짖는다지난 십 년간 한 번도 이렇게까지 외면해 본 적은 없으니 더 서러울 것이다. 십년차 결혼기념일을 며칠을 앞둔 이 시점에 나는 어떤 심정이겠니..? 그래, 난, 이런 밤과 낮을 살고, 또 이어질, 반복적으로 찾아 올 이런 밤과 낮을 맞을 생각에 마냥 두근대고 설레인다.그치?


오전 여섯 시. 짐승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부엌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5분도 되지 않아 이층으로 올라오고 있다.


식탁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저녁밥을 보았겠지. 랩으로 깔끔하게 덮여 빼꼼히 얼굴 내밀고 있었을 무밥과 함께 고소한 양념친구들. 구운 생선도 냉장고에 있었다 이놈아.. 이제야 네 존재감을 확인받은 느낌이니? 좋으니? 이제 다 토해내고나니 마냥 가볍고 뿌듯하니?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해야 그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희미하게 감지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화도 나지만 제대로 풀지 못했던 너는 게임에만 빠져들었고 지금도 마음 표현 훈련이 제대로 안되어 마흔이 넘어서도 흔들리고 작은 부딪힘에도 휙휙 넘어지는구나. 누구나 그렇겠지만.


삐그덕 삐그덕. 심지어 조심스럽게 밟기 위해 애쓴다는 느낌이 저 나무 계단에서 전해진다.


쿵쿵쿵. 이 소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소리. 쾅 철퍼덕. 이소리는 어딘가에 부딪혀서 넘어지는 소리이다. 이 새벽에 저 두 소리가 들렸다면 상당히 곤란하다. 아침이지만 벌써 피곤한 나는, 너를 부축하거나 살피러 내려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가 너무 힘들다. 제말 저 소리만은 이 새벽에 들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너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무밥에게도 감사하다.


여섯 시 삼십 분. 온 집안이 조용하다. 방문을 조심해서 닫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난 후 아직까지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어중간한 데.. 아이와 함께 긴 하루를 보내려면 한 시간이라도 더 자야 하나 싶기도 하고…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아이에게는 아빠가 또 자는 이유를 뭐라고 해야 하나. 몇 시간 뒤에 우리가 어딘가로 나가기 직전에 일어나면 그를 데리고 가 야하나. 기다려줘야 하나. 함께하는 순간에 난 마음속에 생긴 불안 초조 화 분노 실망 걱정 등의 감정을 그에게 표현하지 않고 아이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눈이 따갑다

어깨도 뻐근하고..

어디로 갈지는.. 최대한 빨리 집을 나선 후에 생각하기로 한다.


온몸이

온 마음이

참.. 무 겁 다..

무언가가 꾹 누르고 있는 것 같다


이 아침 댓바람부터

주책맞은

이 눈물은 뭐시다냐..


아..

눈물이 나오니

눈이 덜 따갑다

이런 거였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엄마..

왜 그렇게 벌써 다 늙어버려 가지고..

할매. 신경 쓰일까 봐..

나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나 이렇게 참고 있는 거

혼자서 울음 삼키고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거..

말도 못 하게


아..

눈물이 방울방울

베개 위로 떨어진다

뚝뚝뚝

후드득후드득 줄줄


수도꼭지가 열려버렸다.

이건 좋은 신호가 아니다


그래도

지금

집 안에 울리던 곡소리

짐승의 시간은 끝이 났다.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하다.


6시 57분..

눈이 따갑다

조금만 눈을 감고 있다가 내려가서

오븐을 예열시켜야겠다.

밤새 2차 발효되었을 크루아상을 구워야겠다.

세 사람의 작은 상차림을 준비해야지.

아이가 걱정하면 안 되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에겐 그냥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뱃속에서부터 익숙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거라..



이번에는 왜 또 지하실로 기어내려가서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바닥에 뻗어 버렸을까요?


지난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 제이는, 주차문제로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우리 집 앞에 공간이 세 개가 있는 데 다른 차들이 있어서 십여 미터 뒤의 집 앞에 차를 대고 나오는 데 거기 집주인이 여기 자신의 자식들이 놀러 오면 대야 하니 다른 곳에 주차하라고 왜 당신 집 앞에 주차하지 않냐고 했다네요. 지난 연재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회사스트레스가 바캉스직전에 한계점을 찍다가 바캉스기작하는 그날밤에는 항상 최고조예요 그 상태에서는 이런 작은 스캔들이 생겨도 거의 발작 수준으로 감당이 안되나 봐요. 그래서 그의 공간인 반지하로 내려가죠. 보통 거기서 일도 하고 컴퓨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하는데 상태가 안 좋은 날은 저기서 정신줄을 놓아버려요. 제가 이 줄을 잡아당겨도 보고 다시 묶어주기도 하고 했었어요 그때그때. 바로바로. 지난 십 년간. 근데 작년부터는 텀을 조금 두고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했는데 지난밤엔 아예 그냥 둬버렸어요. 지하 바닥에서 자는 퍼포먼스에 신경은 쓰이고 또 감기라도 걸려서 콜록콜록 기침이라도 하면 그때마다 지하광경이 떠오르며 기분 상할 것 같았지만 그냥 뒀어요. 끌어올려도 그냥 둬도 제 마음은 불편하지만 뒀어요. 그러니까 알아서 기어올라와서 우리 방, 지금은 자기 혼자 자는 방으로 조심스럽게 올라와서 킹사이즈침대에서 쿨쿨 자고 있어요.. 소심한 울보가 바캉스에 지하에 내려가는 이유는 바른 방법을 몰라서인지.. 구원자를 기다려서인지..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그래도 내버려 둬 버리니깐 알아서 기어올라오네요. 자기 엄마를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는 것을 받아들인 게지요.. 초반에는 너무 놀라서 그의 엄마에게 전화하면 오기도 하는 데 대개 상황이 종료되면 도착해서 그냥 하루 이틀 자신의 아들이랑 놀다가 가거든요.. 아. 요기까지.



10-2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아침


그 많던 무밥은 누가 다 먹었나


냉면그릇 한가득 남아 놓은걸 싹싹 다 비웠네 설거지통에 빈그릇도 개 큰 볼과 영념종지 부엌에서 잠시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소리를 들은듯한데 그 짧은 순간에.. 다 먹은 게 맞는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짐승도 감사함은 안다더니 그래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오려고 노력했던 게 맞는구나. 그래도 난 덕분에 거의 밤을 지새운 거나 진배없다. 고맙다.


7시 40분 아이가 후두두두둑 계단을 뛰듯이 내려온다 방학이라 8시 30분까지는 최소 자면 좋을 텐데.. 아.. 우리 때문인데 어디서 이유를 찾아..


벌써 일어났어? 왜 좀 더 자지 않구

그냥.. 무슨 소리가 나서 잠이 깼는데 첨엔 악몽인지 알았는데, 아빠소리라서 꿈이 아닌 거 알게 됐어

그래? 그래서 깼구나..

엄마도 그래서 깼어?

어? 나도.. 피곤하진 않겠어?

괜찮아, 우리 오늘은 어디 가?

어.. 생각해 보자. 네 아빠가 실내암벽등반 놀이센터에 너 데리고 가고 싶어 했는데.. 혹시라도 오늘 점심 전에 일어나면 거기 가고, 아님 기차 타고 또 파리나가던가하자..

아빠는?

좀 쉬게 두자

알았어..


넌 지금 자고 있구나

오늘 오후나 밤이면 다 털고 일어나겠지

난 피곤해 아주 많이.. 긴 하루가 아직도 대기 중이고.


너랑 하루 같이 있음 지치고 이틀이 지나면 녹초가 되고 그 이상 지나면 일어날 힘도 없게 된다.. 난 잠도 못 자고 이렇게 이미 시작된 하루를 버텨야 하고 아이밥을 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내일이면 넌 조금은 가볍게 일어나

공원이나 어딘가로 가자하겠지

난 네가 미워서 함께 안 나가고 싶을 예정인데

그런데 아이는 보고 있고

왜 나에게 항상 이런 선택지를 주는 건데

왜 왜 왜



10-3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늦은 아침


11시 20분 그의 방문이 열리고 1층으로 내려오는 삐걱삐걱 소리가 들린다.


벌써..?


지난 십 년의 케이스 스터디로 봤을 때 오후 3시경을 예상 기상시간으로 봤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지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많은 박물관들이 문을 닫았다. 루브르는 열지만 이미 티켓 마감이 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공원을 갈 수도 없다. 오후에 비바람이 예보되어 있다. 스케이트장이나 수영장의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오늘 새벽 나흘이나 일찍 그분이 오셔서.. 어제저녁부터 스트레스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수면도 부족하고 어딜 가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하고 그래서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나 좀.. 힘든가 봐..


그는 내려오자마자 부엌으로 직행해서 자기 접시에 담긴 크루와쌍을 한 입 베어 먹고, 전기주전자의 버튼을 눌러 물을 데운다. 그리고 차를 우리면서 주스를 컵에 따라 놓고 티비를 켜놓고 휴대폰을 보면서 단숨에 거덜내고 씻으러 욕실로 향하겠지. 따로 본 적도 없고 기억하려고 마음먹은 적도 없는데, 왜 나는 너를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는가. 왜 이렇게 작은 디테일까지 알아버리고 마는가. 이것 말고 너의 말과 행동 그리고 눈빛 표정까지 우리는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가. 얼마나 닮아버리고 말았을지..


아무래도 저렇게 빨리 일어난 것은 무밥의 덕도 큰 것 같다. 무을 쌀양보다 더 넣고 물을 조금 줄여서 밥통에 넣었는데, 비빌 때 딱 느낌 좋은 정도였고, 입 안에서도 착착 감기면서 잘도 넘어갔었는데.. 그 많은 무를 다 먹었으니.. 무가 소화를 잘 되게 하니까, 아침에 다시 식욕이 확 돌았겠지, 그래서 점심 전에 내려왔나 보구나.. 아이랑 내가 12시경에 점심을 먹고 바로 나갈 것을 직감하고 그전에 지 죄를 자연스럽게 묻으려고 한 듯한데.. 일단, 그 얼치기 없는 행동들에 화가 나지만, 일단 지금은 너를 살려주겠다. 어제 재워놓은 소불고기를 굽는 시점에.. 음식 앞에서 큰 소리를 내기도 싫고 아이도 있고, 또 지금 너는 어제의 그 연약에 쩔어 포효하던 몬스터가 아니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냐. 내 속만 썩어 문들어지고 말게. 소 귀에 경읽기라는 명언은 도대체 어떤 이가 만들어 냈는지 정말 세대와 시대를 막론하고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너에게 경전을 읽어 준 들 무슨... 어휴.. 말을 말자. 아.. 그나저나.. 가슴이.. 명치 쪽에 뭔가.. 작은 돌덩이 같은 것이 딱 걸린 막힌 그런 느낌이 묵직하게.. 아.. 오늘도 사리 하나가 생긴 것인가...



10-4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오후



11.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나는 오늘 이틀차 손님맞이 중이다. 무슨 새 생명 잉태를 매 달 준비시키시는지.. 오십이 다 된 마당에 그리고 각방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생뚱맞게 이 손님을 맞아 들고 신성하게 모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아침에 아침밥 먹고 점심에 점심밥 먹고 저녁에 저녁밥 먹는 것처럼 중요하지만 또 무한반복되는 그 의식이 귀찮기도 하다. 제게 무엇을 상기시키고 무엇을 기대하며 살게 하시는지 그 의미 찾기 하기엔 정신이 너무 메말라있다. 삼십 년을 찾아온 이 손님이 나를 찾아올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전박대는 하지 말고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지는 않아야 하는 데, 몸이 차가워지고 기운이 떨어지니 버선발로 나가서 맞이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당신은 오셔서 당신 볼일 보시고 그냥 조용히 가소서. 내 몸은 허락하리다. 그것이면 됐지 않소.


어제저녁에는 크루와쌍을 꺼내서 2차 발효를 해 두지 않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냥 어제 통밀식빵 사다둔 것으로 프렌치토스트를 했다. 배도 계속 살살 아프고 다리에 피가 다 빠져나간 느낌에 컨디션이 꽝이다. 그래서 실수를 했다. 달걀을 풀면서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버렸다. 원래는 소금 간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입 안에 감도는 짠맛이 무척 성가시고 불편했다. 그냥 먹었다. 뭐 한오백년 살라고 하니 그냥 이제 좀 무난하게 살아. 아이는 그리 짜지 않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프랑스에서 먹는 빵과 버터는 확실히 한국보다 낫다. 김이 올라오는 밥에 맛있는 쌈, 산나물, 나물, 미역줄기 무침.., 사각사각 김치 몇 점의 아침식사를 어찌 빵 따위로 아침을 때우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크루와쌍도 이제 딱 떨어졌으니 또 슈퍼를 가야 한다. 배는 아프지만.. 장보기는 며칠에 한 번하지 않으면 항상 무언가가 하나씩 없다. 당장 치약과 퐁퐁도 떨어진 상황이고... 저번에 탕형제들과 파리스토에서는 장을 대충 본 수준이라, 마늘 애호박 양파 땅콩호박이나 늙은 호박 등 야채와 귤 키위 레몬 등 과일도 더 사야 한다. 도서관에 아이 예약도서로 2024년 최신 만화책 두 권 포함 11권이 도착해 있으니 거기도 가야 하고..


10시 20분. 제이가 일어나서 내려왔다. 꿀잠을 잤는지 피부에서 빛이 난다. 이제 마흔 언덕에 갓 들어서서 그 젊음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도 마누라가 자신을 품어주지 않는 것도 자신이 늙어가며 미모를 잃어가고 있어서라고 생각하며 애꿎은 머리에 뜨거운 드라이기 바람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댄다. 가뜩이나 머리숱 걱정이 마를 날이 없는 놈이 제정신이 박혔으면 모발단백질을 저렇게 구울 일이 당최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마누라와 딸내미 그리고 몇 점이 아쉬운 지 머리카락을 저렇게 학대하고 고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짜 모르는 모양이다. 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에 집중하여 내면은 강하고 말과 행동은 유연하되 격식을 갖춘 그런 세련된 삶은 개 따위나 줘버리고, 주야장천 유아기적 결핍요소로 무장을 하고 항상 고통을 찾고 기다리고 평생의 친구처럼 곁에 두려고 하는 건지. 문제는 나도 기본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인간과의 동행으로 내 약점은 변이를 거듭하며 더 강력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다. 뭐 여하튼 남자답게 딱. 이렇게 하자. 하면 나도 따라 줄 의향이 있는 데, 저 인간은 그냥 나의 결정과 나의 요청과 요구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릴 뿐이다. 그래, 그렇다면..


좀따 아이랑 도서관 가서 예약도서 좀 가져와. 10시에 열어서 12시에 닫으니까 얼른 준비하고.

행동이 즉각적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아는 거지.


갑자기 또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겨울바람이 분다.




요 며칠 짹짹짹 짹 하면서 어찌나 존재감을 나타내는지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었던 작은 새 한 마리, 얘는 이 추위 속에서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봄일까, 겨울일까.. 꽃은 있는데 춥고, 추운데 나무에 새싹이 움트고.. 인간만이 무엇이든 규정하고 정의 내리고 분류하고 그러는 것일까. 그래, 쟤네들은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춥다고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진 않을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너희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해석할 수는 없지만, 혼자서든 여럿이든 이 나무든 저 나무든 허리를 쫙 펴고 곧은 자세로 온몸으로 노래를 피워내는 모습이 위대하다. 작은 두 날개를 쫙 펴고 날아올라 바람 따라 흐르고.. 흐르고 또 자유로운.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항상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알고
널 만나본 적도 없지만,
왠지 좋은 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오늘 내 아이의 이 방학 일지를 너의 이야기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해.
이 행성에 며칠을 살다가던 네 삶은 성공적이다,라고 감히 단언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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