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따르는 사람, 순리를 따르는 사람
범인은 생각을 따라 살고 깨달은 사람은 순리를 따라 산다.
천하의 명산 가야산에 위치한 절에 주지스님은 근방에서 엄청난 신망을 얻고 있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심지어 멀리 서울과 경기북부 지역에서도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러니 당연히 이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스님이 되고 싶어 하는 스님들이 넘쳐났고 줄을 설 지경이었다. 주지스님께 한마디라도 더 듣고 가까이서 모시며 배우면 한 소식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들을 많은 스님들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지스님은 상좌로 나이 든 스님은 일절 받지 않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 이하의 동자승만이 주지스님을 모실 수 있었다. 총무처에서 주지스님께 후진 양성을 위해 젊은 다른 스님을 추천해도 주지스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 날 주지스님께 손님이 찾아왔다. 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남자였다. 주지스님은 주변을 다 물리고 헤어밴드 남자를 맞이했다. 그 자리에서 수발을 할 수 있는 것은 동자승밖에 없기에 다른 스님들은 그 동자승에게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를 물었다. 주지스님과 독대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궁금하고 그리고 뭐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동자승을 찾았다. 다행히 동자승은 천재였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기억했다.
헤어밴드 남자가 절에서 돌아가자 젊은 스님들이 모여 동자승을 불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대화를 듣고 배우기 위함이었다. 헤어밴드 남자에게 무슨 가르침이 주어졌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자리에 불려 온 동자승이 말했다.
"주지스님께서 그 남자분께 생각을 따르는 것과 순리를 따르는 것의 차이를 물으셨습니다."
젊은 스님들 중에 리더로 보이는 스님이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분이 뭐라고 하시더냐?"
동자승이 대답했다.
"그 당시 상황을 제가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주지스님
"지난번에 생각을 따라 사는 것과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 다르다고 하셨죠. 그래서 그 차이를 여쭈어보았는데 스스로 깨쳐보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오면 알려주신다고요.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정리를 하기에는 부족하기에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
헤어밴드 남자
"생각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씀하는 업, 바로 그 자체입니다. 생각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업인 마음에 갇혀서 그것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시겠지만 업에 묶여사는 그 삶은 고통뿐이고 지옥입니다. 깨달음도 진리도 없고요 "
주지스님
"그렇지만 사람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따라서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을 따르지 않고 살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헤어밴드 남자
"사람은 생각을 항시 놓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죠. 그러나 생각을 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생각을 다 버리면 생각이 끊어지는 경지도 있고요. 그때가 되면 자기의 생각을 벗어나 세상의 이치인 순리를 볼 수가 있죠. 이것이 지혜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과 사안의 가볍고 무거움 그리고 급하고 급하지 않음을 살펴보고 인과를 다 알고 판단을 하니 순리를 알고 따르는 것은 과거에 묶여있고 감정에 묶여있는 생각을 따르는 것과 천지차이가 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귀영화의 삶을 좋아하고 호의호식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싫다는 사람은 대부분 위선적인 사람이죠. 그런데 이것을 삶의 목표로 추구하는 사람과 순리의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그냥 좋아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욕심을 가지고 추구하는 사람은 욕심인 그 생각에 갇혀 삶의 주인이 바뀌어버립니다. 생각인 마음이 주인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 사람은 그것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됩니다. 돈을 마음에 가진 사람은 돈의 마음속에, 명예를 마음에 먹은 사람은 명예의 마음속에 갇혀버리죠.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이건 희생을 해야 목표가 달성이 되니까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도 희생시키게 되는 겁니다.
물론 그 일관된 방향 설정과 행동이 있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한 것은 맞는데요. 목표 달성을 위해 희생을 시켜야 했던 것이 알고 보면 훨씬 더 소중한 것이고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순리를 벗어난 막대한 삶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삶의 중간에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때 그런 자기의 상황을 재정비하고 돌아볼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인데요. 정말 운이 좋은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성공을 하면 사람은 오만해지고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욕심의 길을 고집하고 고통 속에 살다가 결국 무덤으로 가는 겁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자기가 성취한 모든 것은 놓고 가야 하고 진짜로 중요한 자기를 살릴 기회를 잃어버린 것을 후회해도 늦어버리죠."
주지스님
"그럼 업인 생각을 따르지 않고 순리를 따르는 삶은 어떻습니까? 보다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 차이를 알려주시지요."
헤어밴드 남자
"겉으로 보면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과 순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비슷합니다. 겉모습으로는 구분을 하기 어렵지요. 다만 순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의 업인 욕심의 마음을 다 버리고 텅 빈 하늘과 같은 깨끗한 참마음에서 순리를 감지합니다.
그 사람은 순리를 따르지요. 때로는 자기의 입장에서는 싫은 것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좋아하는 행복이 오는 것을 즐겁게 누리기도 하고 똑같은데요. 다만 마음이 없으므로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하늘의 뜻인 순리를 따라 그 삶을 삽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생각을 벗어버리고 마음 밖에서 그때그때 순리가 무엇인지 판단을 합니다. 자기의 생각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순리를 따라 행하는 거지요. 이렇게 자기를 벗어나고 자기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이렇게 살 때 인간의 모든 번뇌를 벗어나고 하는 일에서도 하늘과 땅이 따르고 사람들도 도움을 줘서 성공을 하게 됩니다. 하늘의 뜻을 알고 따르니 만큼 마치 미래를 알고 사는 것처럼 인생의 길이 활짝 열리지요 "
주지스님
"그렇군요. 오늘 정말 큰 것을 배웠습니다. 저도 저의 명예를 제 마음속에 숨기고 그것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생각을 따라 살면 안 되니까요."
헤어밴드 남자
"스님께서는 순리를 아시는 분이시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순리는 세상의 이치에 고개 숙이고 따른다는 뜻이죠. 하늘의 뜻이라면 마음 없이 행하는 것이죠.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순리를 감지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살피는 것이고, 그 순리의 삶에 돈과 명예가 있다면 과분하고 영광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늘의 은혜로 누리는 것을 알지요. 순리를 아는 분들은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아는 지혜를 갖춘 분들이니까요. 이것이 순종이고 겸손입니다. 그 순종과 겸손으로 영혼이 성불을 하고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동자승이 이렇게 두 사람 간의 대화를 젊은 스님들에게 말했을 때 젊은 스님들의 무리는 혼란에 빠졌다. 주지스님이 헤어밴드를 한 남자에게 오히려 가르침을 구하는 대화였기 때문이었다. 외부인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도 모자라서 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남자라니 더욱 마음에 안 들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젊은 스님들 중에 리더에 해당하는 스님이 동자승에게 말했다.
"너는 우리 말고는 누구에게도 이 얘기를 전하면 안 된다. 특히 이번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오시는 장관님과 국회의원님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알았지? 너를 가끔 따로 불러서 물어보시니 말이야."
동자승은 대답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주지스님께서 스님들이 불러서 가게 되면 있었던 일들을 다 얘기해 주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주지스님께서 얘기를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그놈들은 정작 중요한 내용은 못 알아듣고 엉뚱한 것만 단속하려고 할 거다"
라고 하시면서 스님들께서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바로 따르면 안 되는 생각이고 버려야 할 마구니라고요. 지금 무슨 생각이 올라오는지를 돌아보라고. 좋은 연줄을 찾고, 깨달음을 욕심내는 대신 그 마음에 갇혀 사는 자기를 돌아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젊은 스님들 중 지혜로운 일부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자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잘못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머지 스님들은 이 소문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니까 그전에 크고 유명한 다른 절의 학승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님들은 유명한 큰 절은 신도들의 시주를 많이 받아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들어가면 돈을 많이 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연줄이 있는 절의 높은 스님들에게 줄을 대고 들어갈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