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부른다. 교통사고!
마음인 인과의 인이고 세상이 인과의 과다.
삼십 대의 전도유망한 사업가 바로 씨는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팔다리도 깁스하고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있는 상태로 병실에 입원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마침내 이웃이 생겼다.
옆 병상에 새로 사람이 들어온 것인데 그나마 바로 씨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그는 다리가 부러진 사이먼 씨였다. 사이먼 씨도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바로 씨에게 경찰들이 와서 조사하고 갔던 것처럼 사이먼 씨도 조사를 받고 경찰들을 돌려보내고 나니 한가한 모습이었다.
바로 씨가 사이먼 씨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개를 잘 돌릴 수가 없어서 이대로 인사를 드립니다. 앞에 밖에 못 보거든요.
요새 정말 바빴는데 꼼짝 못 하고 이렇게 몇 달은 보내야 한다네요. 선생님은 금방 나가시겠죠?"
바로 씨의 말을 듣고 사이먼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정말 불편하시겠네요. 몇 달을 어떻게 이렇게 보내실지 모르겠네요.
큰 사고를 당하신 것 같은데 죽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자위를 하시는 수밖에 없겠어요.
그래도 불편한 게 죽는 거보다는 낫지요.
저도 다리가 부러져서 갑갑한 상황인데 선생님을 보니까 불편하다고 말할 처지도 못되네요."
바로 씨는 사이먼 씨의 얘기를 듣고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씨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딱딱하게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저는 자위 같은 거 안 합니다.
제가 어디를 봐서 자위를 할 사람으로 보이나요?
그런 건 세상에서 실패하는 실패자들이나 하는 거지 저는 자위 같은 건 안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걸 극복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버리지, 이따위 교통사고가 뭐라고 자위 따위를 하겠습니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절 잘 모르시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심지어 성행위도 자위 따위는 안 합니다.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해결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위 따위는 안 한다고요.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지 기분 나쁘네요."
사이먼 씨는 깜짝 놀랐다. 교통사고 환자를 모아놓는 병원인 줄 알았는데 혹시 여기가 정신병원이 아니었나 확인하기 위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오정도 아니고 말 뜻을 똑바로 못 알아듣고 갑자기 성질을 부리며 급발진하는 바로 씨를 보며 사이먼 씨가 말했다.
" 워워, 이거 진정하세요. 말 표현 하나에 너무 의미를 두시는 거 같네요.
그냥 좋게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스스로 위로하시라고 자위라고 표현한 건데, 표현일 뿐이니까 너무 의미 두지 마시고요.
제가 볼 때는 선생님께서는 마음이 아직도 이리저리 부딪히고 계시는 상황이네요.
힘드셔서 그러겠지만 사고 현장에서 몸만 나오고 마음은 아직 못 빠져나오신 거 같아요.
근데 그거 아세요? 그런 마음으로 계시면 또 다칩니다.
저도 제 명상 선생님께 배워서 명상을 하다가 알게 된 건데요. 마음속에 부딪힘을 가지고 있으면 사고도 날 수 있고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도 명상을 하면서 그 마음을 없애고 있었는데요. 다 못 없애고 잠깐 성질이 올라온 사이에 이렇게 교통사고가 나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한심하게도 가족들과 제 명상 선생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 여기서까지 또 싸울 수는 없어요.
저는 사고는 한 번이면 족하거든요.
선생님이 정 못 참겠으면 제가 병실을 옮겨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싸우고 싶으면 다른 싸움 상대를 찾아보세요."
바로 씨는 사이먼 씨의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고 당시에 실제로 바로씨의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부딪힘이 있었다.
머리에서 폭발음이 들리는 것 같은 열받은 상황이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바로씨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사고가 마음 때문이라고?
바로씨는 음색을 부드럽게 바꾸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던 거 같아요. 사업 스트레스 때문에 가끔 그러거든요.
분노 조절장애가 좀 있다는데. 하여튼 죄송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는 혼자 나는 게 아니잖아요? 상대편 운전자도 있는데 그 사람은 그럼 뭡니까?"
사이먼 씨가 대답했다.
" 제 명상 선생님인 헤어밴드님이 말해 주신 건데요.
내 마음이 부딪힘이 있을 때, 저와 같은 부딪힘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고 조건이 맞으면, 플러스마이너스 자석이 당기듯이 서로 당겨서 '빵'하고 터진답니다. 결과가 나오는 거지요.
마음이 인이 되고 조건이 맞으면 세상이 과가 되는 거라던데.
하여튼 뭐가 부서지고 깨지던지 싸움이 나서 터지던지 교통사고가 나던지 그렇게 된다네요.
마음이 부딪히고 깨지는 게 현상으로 나오는 거죠."
바로 씨는 기억을 떠올렸다.
다른 일로 성질이 잔뜩 나 있는 바로 씨의 차를 위험하게 추월하면서, 미친놈처럼 위협 운전을 하던 운전자가 있었다.
그 운전자는 1차선에서 2차선 차량과 나란히 가던 다른 차가 길을 비켜주지 않자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했다.
차들이 추월을 막으려고 하다가 서로 엉기면서 사고가 났다.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붙어서 뒤따라가던 바로 씨의 차까지 한꺼번에 엉기고 부딪히며 크게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 당시 사고가 난 차들의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사고가 나도 좋다는 식이었다. 마치 치킨게임을 하듯이 막무가내로 양보 없이 위험하게 버티며 운전을 했다.
부딪히고 싸우고 분노하는 마음들이 끓어 올라 무슨 일이 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바로 씨는 그 장면을 돌아보면서 자신을 휩쓸고 지나다니던 분노의 감정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부딪힘의 감정이 살그머니 비워지는 것을 느꼈다. 늘 들끓었던 마음속이 오랜만에 조용해진 기분이었다.
바로 씨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선 더 큰 사고도 날 수 있었다는 것을.
이만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영문도 모르고 죽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로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이먼 씨에게 말했다.
"명상이라고 하셨죠? 좋은 걸 하시네요.
말씀만 들어도 마음이 비워지는 거 같네요.
저도 퇴원하면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저도 사고로 죽기 전에 살려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저에게도 그 명상 선생님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이먼 씨가 반갑게 대답했다.
"아, 그러잖아도 제 명상 선생님께서 병문안을 오신다고 했어요.
이번에 근처에 홍보부스도 여신 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은 몸이 불편하시니까 홍보부스로는 못 가실 거고, 여기 병문안 오셨을 때 그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바로 씨는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이먼 씨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아까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미친놈 같이 운전하던 상대편 운전자를 탓하고 저주하며 욕을 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다르게 보였다.
항상 끓어오르던 분노 때문에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던 부분도 이번에 해결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어느 날은 너무 성질이 나서 상대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도 났다.
그러고 보면 지금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사이먼 씨의 명상 선생님이 병문안을 왔을 때 바로는 명상가인 헤어밴드맨을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잠시의 대화 시간이었지만 바로는 정말 뭔가 있구나, 진짜로 변화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날밤 희한하게도 바로 씨는 명상 선생님과 얘기를 마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편안하고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분노에서 벗어나 밝고 평화로운 꿈을 꾸며 잠을 잘 수 있었다.
그것이 희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명상가 선생님의 에너지 덕분인지 바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씨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 편안해졌고,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씨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장 힘들고 불행한 상황에서 가장 큰 희망이 생겼네, 새옹지마라는 말이 정말이었네.
인생 참 모르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