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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곰 Oct 02.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10)

9장: 가난과 공부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마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 했다. 집에 돌아가면 책을 탐독하던 아이. 책 속의 세계는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줬고, 수업 내용을 익히고 복습하는 것만으로도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땐 그게 공부의 전부라 생각했었다. 그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였던 시절, 공부란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첫 수업이 시작된 날, 나는 교실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따라가려 애썼다. 그러나 점점 수업 내용이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다. 머리 위를 스쳐 가는 어려운 단어들, 그리고 그걸 너무나 쉽게 이해하는 주변 친구들. 나는 마치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수업 내용을 선생님이 말하기도 전에 알고 있었고, 곧장 다음 문제로 넘어가곤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미 선행 학습이라는 것을 해왔고, 학원에서 학교보다 몇 단계 앞선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중학교 수업은 도전의 장이었지만, 그들에겐 그저 한 번 더 복습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결과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시험지에 적힌 점수는 처참했고, 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날, 집에 돌아가 펑펑 울었다. 그토록 서럽게 울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엔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내가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다. “왜 그러니?”라는 물음에, 나는 모든 걸 토해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다 했어요. 학교 수업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고요. 저만 따라가지 못해요. 저만…”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국민학교만 마치고 곧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분들이었다. 공부라는 것이 중요한지는 알지만, 그저 교과서만 펼치면 되는 줄 알았던 부모님은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때 나는 그분들께 원망의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부모님을 원망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자라온 환경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다. 그저 ‘공부’라는 것이 그들에겐 너무도 낯설고, 그 너머의 세상은 어둡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께서 작은 희망을 안고 내게 말씀하셨다. “고향 친구가 학원을 운영한대. 너를 좀 싸게 봐줄 수 있겠다고 하더라.” 학원… 그 단어는 나에게 있어 무언가 특별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부모님의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차로 한참을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 학원에 갔을 때, 나는 그곳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반마다 나뉘어 수업을 듣는 아이들, 칠판을 가득 채운 복잡한 수학 문제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부에 몰두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내게는 마치 새로운 세계 같았다. 나는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처음엔 그저 따라가기 급급했지만, 학원의 수업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 그리고 조금씩 점수가 오를 때마다 느끼던 뿌듯함이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학원 선생님께서 내게 말했다. “1등 반으로 올라가면, 학원비를 면제해 줄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부모님께 학원비를 부담시키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욱 악착같이 노력했다. 새벽까지 교재를 펴고,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문제를 풀었다. 모든 수업에 두 배, 세 배의 집중을 기울였고, 머릿속에서 복잡한 수학 공식을 그리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내게 주어진 목표는 단 하나, 1등 반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나는 1등 반으로 올라갔다. 그날 부모님께서 내게 “이제 학원비를 안 내도 된다고 하더라”라고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 순간 눈물 대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중학교 교실에서 느꼈던 절망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비로소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때의 경험은 내게 가난이란 그저 돈의 부족함이 아니라, 환경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꿈을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이 편하게 가는 길을 나는 돌아가야 했고, 때로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었다. 절망의 순간도, 눈물의 기억도 모두 내가 이겨낸 증거다.


그때 내가 가졌던 절실함과 끈기는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가난이라는 족쇄를 조금씩 풀어가며 나는 스스로의 길을 열어갔다. 가난은 때로 상처가 되고 절망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내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맞섰던 그 절망이, 결국 너를 강하게 만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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