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곰 Oct 02.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9)

8장: 가난은 상처이자 나를 단단하게 한 기억

"꼬마곰님은 억울하지 않나요?"


첫 취업의 최종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질문의 배경엔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있었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문장 사이에 보이지 않게 떠돌았으리라. 그들이 보기에, 내 인생은 남들처럼 스펙을 쌓는 대신 생계를 위해 살아야 했고, 원하는 배움보다는 필요한 일들을 해야 했던 시간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 질문은 그런 내 과거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전혀 억울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나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모든 경험이 내 삶의 굳은살처럼 나를 지탱해 준다고. 스펙을 위해 보낸 시간만큼이나, 나는 그 시절의 내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 한 마디가 면접관의 얼굴에 흐르던 의문을 지우고, 그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렇다. 시간이 흐르며 어른이 된 나는, 삶의 또 다른 단면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나를 억누르지 않았지만, 그 단어가 지닌 무게와 쓰라림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난은 마치 누군가가 내 어깨에 붙여둔 보이지 않는 꼬리표 같았다. 그 꼬리표가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게 만들었다.


집안 형편이 나빠졌을 때 학교 급식비마저 몇 개월 밀려있는 상황에서 나는 차마 학교 준비물조차 달라 말하지 못한 채 어린 마음으로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단돈 500원짜리 색종이가 필요했을 때, 어머님께 말씀을 드리니, 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셨다. 그 눈빛엔 미안함과 슬픔이 뒤섞여 있었고,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옆집에 가서 500원을 빌려보렴." 그 순간, 나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힘겹게 꺼내셨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님가 그토록 미안해하셨던 그 500원. 그것이 내게 가난의 첫 번째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가능하면 부모님께 손을 내밀지 않으려 했다. 나와 내 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근처 가게들을 돌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고, 벌어들인 몇 푼의 돈으로 준비물과 책을 샀다. 아무도 몰랐고, 지금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비밀이었다. 그 작은 손으로 움켜쥐었던 전단지들이 우리의 자존심이었다. 가난의 상처를 내 손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은 단순히 물질의 결핍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존심을 끌어내리고, 나의 존재를 작게 만들던 감정이었다. 나는 내 옷이 낡았다는 것을 의식했고, 친구들이 새 학기 때마다 새 신발을 신고 올 때마다 내 신발의 때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렇게 가난은 타인의 삶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선명해졌다. 때로는 밥을 배불리 먹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으니 "내가 정말 가난한 걸까?"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난의 낙인을 지우기 어려웠다. 가난은 마치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내 삶을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그 시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 부모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 애쓰셨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 그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주식 실패와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떠안고도, 부모님은 꿋꿋하게 버티셨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배웠다. 부모님은 실패를 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노력하는 법’을 배웠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배웠다. 가난이 나에게 준 것은 아픔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단단하게 하고, 내 삶을 지켜내는 뿌리가 되어주었다.


가난이란 상대적인 것이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사람의 삶에 스며든다. 누군가에게는 가난이 그저 ‘덜 가지는 것’ 일뿐이지만, 나에게 가난은 ‘덜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빈 주머니에도 품을 수 있는 자존감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가난은 더 이상 나를 상처 내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가난을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가난은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나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누군가의 질문처럼, 억울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더 이상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


가난은 나의 과거이자, 나를 이루는 일부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과거를, 내 삶의 일부로 품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